[이보람의 앞으로 Afro] Mamady Keita 서거 1주기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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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21일, 그러니까 거의 일 년 전, 나와 팀 원따나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후원하는 문화순회사업인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을 위해 전라남도 완도에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작스런 비보가 내가 속해있는 국제젬베교육기관 TTMDA(TamTamMandingueDjembe Academy)의 교사들이 모인 왓츠앱 메신저 채팅방에 전해졌다.

‘마마디 선생님이 몇 시간 전 돌아가셨습니다.’

Mamady Keita 젬베의 거장. 전 세계에 젬베와 만뎅리듬의 씨앗을 뿌린 전설 같은 큰 어른이자 스승님이 벨기에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향년71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Mamady Keita (1950.8-2021.6.21.)

사실 그 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으셔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고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회복한 모습으로 TTMDA 온라인 미팅 때 얼굴을 비춰 주시고 언제나 유쾌하고 위트 있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격려하고 조언해주셨기에 돌아가시기 전날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언제나처럼 이겨내실 줄 알았기에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그의 시신은 벨기에에서 기니로 옮겨졌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기니를 방문하였다. 기니에서 그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고, 고향인 발란두구에 안치되셨다. 젬베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슬퍼했다.

곧 그의 서거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나와 마마디 선생님의 인연을 떠올려본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일본 남단의 이오지마섬에서 열린 마마디 케이타의 워크샵에서 였다. 클래식 타악기 연주자를 병행하며 젬베를 공부하던 나는 다니던 김천시립교향악단에 사표를 썼다. 본격 젬베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 회차에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워크샵에 참가해 마마디 케이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운 좋게 내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선생님과 비슷해 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의 이름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젬베를 가르치게 될 줄은 몰랐지. 일본에서 그와 함께한 첫 워크샵에서 이 위대한 스승이 어떻게 서아프리카 만뎅리듬을, 젬베를 국적과 관계없이 널리 알리며 존경받았는지 납득이 갔다. 그는 서구권 음악체계에 익숙한 타 국적의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리듬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잘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는 각 리듬 안에 있는 문화 이야기를 매우 강조했으며 젬베 본연의 연주법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하지만 그 존중 안에서 젬베는 고집스런 전통악기가 아닌 자연을 경외하고 인간을 아우르는 인류애 가득한 악기였다.

“The djembe has no borders the djembe doesn’t care if you are man or woman, the djembe doesn’t care about your status in society( 젬베는 국경이 없다. 젬베는 당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사회에서 당신의 지위가 어떤지 상관하지 않는다.)” -젬베폴라 마마디 케이타

▲첫만남. 미시마 캠프에서

그를 만나고 그의 제자이자 그를 대표하여 싱가폴과 일본에서 젬베를 가르치는 TTMDA 선생님들을 만난 후 나는 어떤 강한 끌림에 이끌렸다. 나 또한 그를 따라야 하겠다는 강한 신념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5년, 멕시코 와하까라는 도시에서 열린 마마디 케이타의 워크샵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두 번째로 그를 만난 그곳에서 마마디 선생님은 워크샵 내내 나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유럽과 미국에는 나의 훌륭한 여성 제자들이 많다. 아시아에는 아직 없다. 아시아 최고의 여성 연주자가 되어라. 너는 정말 좋은 소리를 가졌어. 많은 아시아 여성 연주자들이 너에게서 영감을 얻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그렇게 될 수 있다.”

그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이 세계적인 거장이 나에게 보내는 무한 격려와 믿음은 그 후 역경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거름과 뿌리가 되었다.

▲멕시코 와하까에서, 손가락으로 어떻게 하트를 만드는지 알려 주는 나

멕시코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그를 따르기로 했다. 마마디 선생님의 커리큘럼과 철학을 배우고 그의 젬베학교 TTMDA 교사 중 한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마마디 선생님과 각국의 TTMDA 선생님들은 내가 그들의 식구가 될 것이라 직감했고, 내가 그 절차를 밟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마디 선생님과 무대 위에서

2016년 중국 베이징에서 TTMDA의 큰 행사가 열렸다. 마마디 케이타 선생님을 비롯해 전 세계의 TTMDA 교사(Certified Teacher)들과 강사(Instructor)들이 베이징에 모였다. 베이징에서 마마디 선생님을 다시 뵐 때까지 1년 동안 완전히 몰입하여 모든 커리큘럼을 다 마치고 마마디 선생님 앞에서 볼 최종 인증교사 시험만을 남겨 두었다.

▲시험을 통과하고 그에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조언을 듣고 있는 모습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그는 축하와 함께 앞으로 자신의 미션을 대신 수행할 책임에 대해 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제부터 너는 나를 대신할 한국의 마마디가 되어 나의 유산을 잘 전하여야 한다.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대 위에서 공식적으로 인증교사 자격을 수여받는 모습
▲마마디 선생님, 그리고 일본, 중국, 미국, 벨기에, 인도, 싱가폴 그리고 한국의 TTMDA 인증교사들

그 후, 나는 공식적으로 한국의 TTMDA 교사로서 그의 커리큘럼을 가르쳤고 TTMDA의 국제적인 활동에 참여했다. TTMDA 교재에도 내 사진이 실렸다.

코로나19가 터지고 국제적인 만남은 불가능해졌지만 TTMDA는 한 달에 한 번 줌으로 마마디와 온라인 세션을 가졌고, 그의 새로운 리듬들을 전수 받았다.(마마디 선생님은 그의 일생동안 취득한 만뎅문화권의 현대역사 및 자신의 일생에 영향을 준 많은 것을 리듬창작으로 기록하였다. (가령 기니의 국립 무용단의 전신인 발레아프리카를 창설한 Fodeba Keita를 기리는 리듬, 그의 고향 발란두구에 있는 작고 무서운 언덕 Kuruni 리듬, 위대한 연주자를 기리는 리듬 등. 역사의 산증인이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흥미로웠다)

그는 평생을 젬베 연주자이자 스승이자 메신저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셨다. 젬베를 통해 전 세계에 그들의 전통리듬과 문화의 가치가 존중받고 젬베와 음악이 가진 힘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젬베라는 악기, 서아프리카 만뎅악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물. 그와의 인연이 없다하더라도 젬베를 한다면,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절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그가 돌아가신 후 일 년, 그동안 쌓인 코로나19의 피로감, 일과 육아,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삶의 고단함으로 무기력해질 때쯤, 이 글을 쓰느라 그를 떠올리니 그가 내 마음속 깊이 심어둔 씨앗이 다시금 나를 움트게 한다.

“존중 없이 행해지는 모든 것은 가치가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 자연,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 -젬베폴라 마마디 케이타

이보람 burst84@naver.com
‘공연예술가. 상세히는 서아프리카 공연단체인 원따나라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또한 타악기 연주자로 공연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젬베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명감으로 교육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살인 에너지 끝판왕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