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더 많은 ‘허승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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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끝난 지도 3주가 흘렀다. 여러 평가 속에서도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하는 사태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대구·경북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국민의힘 내에서도 선거제도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32명 시의원 중에 20명이 무투표 당선되는 건 대구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대구CBS <뉴스필터>에 출연한 정태옥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의 말이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같은 말에 더 보태서 “중선거구제로 바꿔야 대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도 알고 있지만, 기득권을 내려놓기란 어려운 법이다.

정치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이 주장한 대선거구제 시범 도입도 바랐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3인선거구는 이미 존재했기에 중대선거구제 시범 도입이란 말은 개념부터 틀렸다.) 4인, 5인선거구 각 1곳씩 도입된 대구 수성구의원 선거결과, 5인선거구에서는 국민의힘 4명, 민주당 1명이 당선됐고, 4인선거구에서는 국민의힘 3명, 민주당 1명이 당선됐다. 5인선거구에 진보당 후보가 나섰지만, 득표율 1.79%에 그쳤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출마예정자가 적은 소수정당 출마자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대구 기초의원 후보자 181명 중 정당이 공천한 후보는 무소속 34명을 제외하면 147명이다. 이 중 민주당이 42명, 국민의힘이 96명이다. 다른 정당 후보는 모두 9명(정의당4, 진보당3, 녹색당1, 독도당1)에 불과했다. 경북 기초의원 후보자 490명 중 무소속 177명을 제외한 정당공천 후보는 313명이다. 이 중 민주당 63명, 국민의힘 243명을 제외한 다른 정당 후보는 7명(정의당3, 진보당3, 녹색당1)에 불과했다.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 후보는 단 1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3선의 정의당 김성년 수성구의원도 득표율 13.35%로 지난 선거보다 1% 더 받았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정의당은 지방선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대구·경북 정의당 후보 중 4년 전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한 건 김성년 수성구의원과 경산시의원 3선을 지내고 경북도의원으로 출마한 엄정애 후보가 유이했다. 새로운 인물을 발굴했다고 평가하면 좋겠지만, 지속적으로 정치할 사람이 없거나, 지원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안동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녹색당 허승규 후보가 낙선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허승규 페이스북]

그런 면에서 진보정당은 녹색당 허승규를 눈여겨봐야 한다. 녹색당으로 안동시의원 선거에 첫 출마한 2018년 득표율 16.54%, 4위로 낙선한 허승규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18%, 3위로 낙선했다. 4년 전에 없었던 민주당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 11.75%로 허승규 후보에 못 미쳤다. 2인 선거구 탓을 할 법도 한데, 허승규 후보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힘은 소수정당 정치인이 현행 제도를 뚫고 당선됐을 때 가능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첫 낙선 후 4년 동안 안동에서 청년단체를 꾸리고, 시민과 함께 했다. 예산감시 학교를 운영하고,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시민을 만나 버스노선 불편사항을 수합해 안동시 버스노선 개편에 반영토록 했다. 2018년부터 지역구 정하동 우회도로 건설로 인한 소음 피해 문제가 제기되자 안동시가 주민 요구사항을 반영하도록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낙선 후에도 좌절의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낙선 인사와 주민협의체-안동시장 당선인 현장방문에 동행했다.

진보정당에는 허승규 같은 정치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 사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보수정당에도, 대구·경북에도 더 많은 허승규가 필요하다. 33세 녹색당 정치인 허승규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청년이 지역을 떠난다고 걱정하는데, 돌아온 청년이 지역에서 잘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허승규는 돌아온 지역 출신 청년의 한 표본이다. 허승규처럼 견제와 감시는 물론, 지역에서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을 청년 정치인이 늘어나는 건 지역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