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열린 대구 N맥페스티벌···닭을 똑 닮았는데, 닭이 아니네?

지역 환경 활동가 중심으로 ‘N맥페스티벌’ 두류공원에서 열려
비건 안주 시식, 자유발언대, 퍼레이드 진행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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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대구 시내 곳곳엔 선그라스 쓴 닭이 그려진 현수막이 걸렸다. 6일부터 5일간 대구 두류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치맥페스티벌을 홍보하는 현수막이다. 현수막 속 닭들의 이름은 치킹과 치야다.

“동대구역 광장에 가면 치맥페스티벌을 홍보하는 닭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어요. 거기엔 세계 3번째로 설치했다고 자랑하는 기후시계도 있잖아요. 기후위기 메시지와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주는) 더 많은 육식을 소비하는 행사 홍보가 같이 이뤄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 N맥페스티벌 참가자들이 닭볏을 본뜬 모양의 머리띠를 하고, 비건용 안주를 시식하고 있다.

오유진 ‘다움’ 활동가는 닭볏을 본뜬 머리띠를 하고, ‘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피켓을 목에 건 채 말했다. 오 활동가 뒤로도 까만 옷을 입고, 닭볏 머리띠를 한 비슷한 또래 청년들이 여럿 보였다. 이들은 치맥페스티벌이 시작된 6일 오후 같은 곳에서 또 다른 페스티벌을 기획한 지역 환경운동활동가들이다.

N맥페스티벌.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 조장 등 동물권 문제 및 과다한 쓰레기 발생 등 치맥페스티벌의 환경적 문제를 지적하는 대안 행사는 올해 처음 열렸다. 지역 환경활동가들은 지난 주 기자회견을 열고 N맥페스티벌 개최 소식을 알렸다. (관련기사=“치맥 축제 대신, 아무도 죽지 않는 N맥 축제 오세요”(‘22.06.30))

불과 몇 년 전엔 오 활동가도 치맥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번엔 사람들과 치맥페스티벌 행사장을 둘러보며 이 행사를 성찰하는 N맥페스티벌 ‘다크투어’ 안내를 맡았다. 그는 “치맥페스티벌이 그렇게 ‘힙한’ 축제가 아닌데 그렇게 비춰지는 것 같다. 인권활동 공동체에서 활동하면서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인식을 갖게 됐다”며 “통계로 도살된 닭 숫자를 찾아보고, 살아있는 닭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오늘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N맥페스티벌 기획팀은 2022년 1월부터 5개월 간 대구와 경북지역에 도살된 닭이 4,155만 1,738마리라고 했다. 이들은 대구 인구 240만의 17배가 넘는 닭들이 도살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마리’ 대신 목숨을 뜻하는 한자를 써서 ‘명(命)’이라는 단위를 썼다.

“이거 한 번 먹어보세요.”

‘비거니즘’, ‘동물권’, ‘제로웨이스트’, ‘기후위기’, ‘공존’, ‘채식’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린 부스의 시식대에 나란히 선 활동가들이 비건빵을 한 움큼 건넸다. 시식대에 있는 콩으로 만든 치킨도 권했다. “뼈가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뼈가 있을 수 없는 콩으로 만든 대체고기인데, 모양은 치킨과 다르지 않아서다.

시식대에 있던 활동가는 웃으면서 “뼈가 없다”면서, 마늘 소스와 양념 소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받아든 콩고기 치킨을 입에 밀어 넣었다. 고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잡내가 없었고, 물컹한 식감이 느껴졌다. 그는 “치킨 같지 않냐”고 물었다.

시식대 맞은 편에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자유발언대’도 진행했다. 일움(활동명) 대구청소년 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활동가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치맥이 흔히 일상적 행복으로 표현되는데, 그 행복을 깨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 육식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다”면서 “저도 비건을 선언하며 엄마와 갈등이 있었고, 비건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그럼에도 고기가 그만큼 싼 데는 이유가 있다. (도축된 동물의) 목숨이 값싸게 매겨지고, 공장식 축산의 규모와 도살 노동을 하는 노동력이 얼마나 착취되는 지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4시간여 동안 행사가 진행됐지만, 참여자는 많지 않았다. 준비한 비건 음료나 콩고기 등이 많이 남았다. 이재효 경북대 비거니즘 동아리 ‘비긴’ 회원은 저조한 시민 참여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 씨는 “치맥페스티벌 참여하려고 오신 분들은 별로 안 오셔서 아쉽다”며 “N맥페스티벌이 앞으로 대구의 상징적 행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페스티벌이 아니라도 너무 많은 육식소비를 하고 있다. 하루라도 육식 소비 안 하거나 대안적 행사가 대구시 차원에서 열렸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N맥페스티벌은 두류공원 야외음악당 주변에서 피켓팅과 함께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평소 채식하고 있는 김소은 씨는 함께 채식을 하는 지인들과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행사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초대가수 공연을 감상했다. 김 씨는 “지인에게 행사 소식을 전해들었다. 지역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해서 관심있는 분들과 같이 반가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면서 “채식을 가치있게 생각해서 30년 정도 채식을 해왔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신상헌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일찌감치 행사장에 와서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자리를 지켰다. 신 교수는 2019년부터 학교에서 3학점 짜리 교양과목인 채식주의(비거니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닭의 평균 수명이 8년인데 보통 30일 만에 죽는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지 않냐”며 “예전에는 비건이라는 개념이 더 생소했다. 이런 정보를 사람들이 더 접하게 되면 비건은 더 대중적인 개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자신의 핸드폰 바탕화면을 보여줬다. 쇠목줄을 하고 체념한듯한 원숭이의 흑백 사진이었다.

N맥페스티벌은 두류공원 야외음악당 주변에서 피켓팅과 함께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치킨 말고도 다양한 비건 안주도 있다고 소개하면서, N맥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된 행사 취지 등을 간단히 밝혔다. 잔디밭에서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은 시간이었다. 삼삼오오 치맥을 즐기던 시민들은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성당동에 사는 60대 남성 일행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편, 이날 N맥페스티벌은 비긴, 책빵고스란히, 대구기후위기비상행동, 대구환경운동연합, 채식평화연대, 지구당, 훌라, 더커먼, 녹색당 대구시당 동물권의제모임, 정의당 대구시당 환경위원회, 기본소득당 대구시당, 진보당 대구시당, 다양한 움직임 다움, 책방이층, 차방책방, 커피는책이랑, 나쁜페미니스트 대구, 산과보롬,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 녹색소비자연대 등이 참여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