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75세인가요, 그만 죽는 게 어때요?” ‘플랜 75’

10:03
Voiced by Amazon Polly

“75세인가요, 그만 죽는 게 어때요?” 멀지 않은 미래의 일본, 만 75세부터 생사의 선택이 주어진다.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존엄사의 조건이 아니다. 후생성 인구관리국 소속 공무원들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한다. 죽기로 결심하면 콜센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고 장례도 치러준다. 10만 엔(약 96만 원)의 위로금도 준다. 이 돈으로 노인들은 죽기 전 마지막 온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목덜미에 패치를 붙이면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옴니버스 일본영화 <10년>의 첫 편 <플랜 75>의 내용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돌입한 일본에서는 ‘플랜 75’라는 제도가 시행된다. 인구구조의 급속한 노령화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자, 75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일본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가 거셌다. “사회에 도움이 안 되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가?” 하지만 일본 사회는 ‘플랜 75’를 차츰 받아들인다. 의료비와 사회보장비 등 노인 부양비 부담이 폭증하고 경제성장도 노동력 부족으로 심각하게 둔화된 현실 때문이다. 인구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온한 정책에 순응하고 말았다.

당사자는 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 속 노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플랜 75’를 받아들인다. 오히려 정책을 반가워하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되고, 재취업은 어렵고, 살던 집에서조차 내쫓기는 탓이다. 사람의 생명은 생산성으로 계산되어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다. 사회의 시선은 냉정하다. 영화 초반 노인들이 연이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아닌가.”

불온한 상상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이어지자, 국민연금 기금 고갈시기를 놓고 청년들은 자기가 번 돈으로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정적 생각을 한다. 끔찍한 ‘노인 혐오’는 현실이 돼버렸다. 온라인에서는 틀니 소리를 빗댄 ‘틀딱’, 연금을 축낸다는 뜻의 ‘연금충’, 시끄럽게 말하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할매미’라는 노인 혐오가 당연시된다. 전국 곳곳에서는 노인병원과 요양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진다. 자신도 늙고 병들 것을 알면서도 병든 노인을 혐오하고 배제한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서 26%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했다. 경제상태가 나쁘다고 답한 노인(43.2%)과 건강상태가 나쁘다는 노인(39.1%)일수록 자살을 생각해본 비율이 더 높았다. ‘고독사를 우려하고 있다’고 답한 노인 비율도 전체의 23.6%에 달했다. 또 83.1%는 ‘존엄사를 찬성하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안전망은 취약해 빈곤과 절망 속에 살고 있는 한국 노인들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미래 한국 사회를 둔 같은 상상도 가능하다. 2018년 출간된 박형서 고려대 교수의 소설 <당신의 노후>에선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연금을 타는 노인을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한다. 초고령화사회를 앞둔 한국에서 정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은 아닐까? 노인을 사회경제적 위험요인으로 보는 2030세대는 2060년의 노인이다. 스스로가 노인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고려장이 없어진 유래를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정부는 ‘플랜 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65’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아나운서가 전달하는 소식은, 다음 순번이 당신이 될 거라는 걸 암시한다.

<플랜 75>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10년 후의 일본 & 미래는 어떨까?’라는 주제로 총 5편을 실은 옴니버스식 영화 <10년>을 제작했다. <플랜 75>는 지난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 언급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