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벼농사 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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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책 없는 군바리.”
“미군 앞잡이 물러가라.”

3년 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로 가는 길목에서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단체가 서로 옳다고 입씨름이 벌어졌다. 이때 국방부의 협력 업무를 맡은 필자(군인)가 담당 경찰과 함께 이를 말리려다 각 단체에게 들은 말이다.

무엇이 저분들을 저렇게 분노하게 했을까. 원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풍조’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라고 생각한다. 이 불신은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 자란다. 때문에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워야만 불신을 몰아낼 수 있다.

필자는 사드배치 갈등의 현장에서 힘들 때마다 성주 들녘을 거닐다가 ‘무너진 신뢰를 세우는 방법’을 벼농사에서 찾았다. 벼농사는 못자리, 논갈이, 모내기, 벼 가꾸기, 벼 베기 과정을 거친다.

▲[사진=농촌진흥청]

못자리는 벼농사를 시작하는 첫 단계다. 이때가 제일 힘들다. 먼저 농사 규모와 볍씨를 결정해야 한다. 봄철이라 물까지 차갑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토양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무너진 신뢰를 세우려면 먼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때가 못자리 만들 때처럼 힘들다. 불신이 있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논갈이는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심기 위해 겨우내 묵혀 있던 논을 갈아엎는 일이다. 농부는 풍년을 기원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준비한다. 이처럼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려면 긍정적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신뢰회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다.

모내기는 벼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요즘은 기계로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이웃과 함께 모내기를 했다. 줄을 설치해 가지런히 심어야 하므로 최소한 2명 이상이 필요하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모내기하며 이웃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더 각별해지듯이 소통과 협력은 신뢰의 씨앗이다.

벼를 가꾸기 위해 농부는 불철주야로 관심을 갖는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살충제와 살균제를 잘 구분해서 쳐야 한다. 비료도 마찬가지이다. 물도 때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신뢰회복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소통과 협력을 해야 한다. 무너진 신뢰는 저절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벼농사의 마무리는 벼 베기다. 거의 7개월간 농부는 시도 때도 없이 벼를 살펴왔다. 뿌듯한 이 성취감으로 이웃과 함께 추수를 하며 더욱 돈독해진다. 신뢰가 구축될 때 벅찬 희열도 추수하는 농부의 심정일 것이다. 기억할 것은 신뢰의 바탕에는 규범이 있다는 것이다. 규범을 어기면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벼농사 과정처럼 무너진 신뢰를 세우는데도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자기성찰을 통해 자기긍정을 하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하나하나 쌓아가야 한다. 이 과정은 실제 지속적이고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불신풍조를 몰아내기 위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가 오면 불신은 저절로 나갈 것이다. 서로 신뢰하므로 일 처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되어 경쟁력을 확보한다. 갈등관리 비용이 확 줄어든다. 생각만 해도 벅차다.

우리 모두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자기 주변에 무너진 신뢰를 함께 다시 세웁시다. 벼농사 짓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