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 ② 40만 미등록이주민 시대,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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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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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우리는 이주가 보편화된 시기에 살고 있다. UN은 1965년 총회에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을 채택하였고, 1978년 한국도 비준했다. 한국은 재외 교포가 760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4번째의 송출국이자, 입국 이주민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나 2006년 한국 정부는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한국이 필요해서 초청한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민들은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혈통·언어·영토’라는 세 가지의 동질성은 이주민에 대한 경계로 나타난다. 백인에 대한 태도와 달리 유색인종,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태도에는 배타성이 짙다.

한국에 사는 이주민은 지난해 그 숫자가 203만 6,075명이었다. 이 중 미등록이주민은 39만 2,196명으로 대구에 9,500여명, 경북에 1만 8,00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로 더 불리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체류 허가 요건을 위반하거나 체류 기간을 넘겨 체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적발 시 강제퇴출 당한다. 신분상 불안정함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강제추방을 피해 음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모든 면에서 궁지에 놓여있다.

일부 악덕 고용주들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낮은 임금을 주거나, 임금체불을 일삼으며, 잔업수당, 휴일수당 없이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인권과 노동권, 건강권의 불모지대에 처해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유령의 존재이면서, ‘불법’이라는 부정적 딱지까지 덧씌워져 있다.

실제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다문화, 외국인 등 이주민 관련 단어를 포함하는 트위터 1만 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의 연관 단어로 ‘동남아, 비하, 반대, 혐오, 추방’ 등이 추출됐고, ‘불법체류자’ 연관 단어로는 ‘저학력, 새끼, 혐오, 결사반대’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국가인권위는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 등 법률에 규정된 ‘불법체류’라는 용어를 지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러한 용어는 외국인들을 법적, 제도적인 보호에서 제외시켜 인권침해에 취약한 집단으로 만들고, 우리 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 대부분은 노동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며, 특히 육체노동자의 수급이 매우 어렵다. 도시 제조업, 농촌의 들녘과 하우스, 축산업, 어촌 양식장까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노동력을 이들이 메꾸어주고 있다.

우리가 먹는 식탁의 여러 먹거리조차 이주노동자들의 땀과 노동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한국 경제가 이주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주지의 사실이다. 이주노동자의 기여에 의해 한국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에서 수없이 만나는 이주노동자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체류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숨죽이며 노동하는 이들, 투명 인간 취급받는 이들에게도 ‘사람이 먼저다’는 보편적 가치에 맞게 안녕을 물어야 한다.

김용철 성서공단노조 노동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