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서애 유성룡, 이순신을 천거한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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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14개월 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에 보직되었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7계단 승진이다. 현재로 보면 육군 대위에서 해군 제독으로 파격 승진한 것이다. 공직에선 전무후무한 사례이다.

서애 유성룡은 당시 좌의정 겸 병조판서로서 이순신을 7품계까지 승진시켜 가면서 천거했다. 서애의 통찰력이 이순신을 알아본 것이다. 당시 조선은 동인, 서인으로 나누어져 연일 싸우고 있을 때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애가 이순신을 천거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를 두고 서애 리더십을 연구한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위대한 만남이다”고 극찬했다.

이순신 장군의 통찰력은 동시대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국내외 정세를 꿰뚫어 보았다.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건조했다. 거북선을 타고 실전 훈련까지 마친 그 다음 날 왜적이 부산 앞바다로 쳐 들어왔다. 이순신은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 결과, 세계 3대 해전의 하나로 꼽히는 한산대첩에서 학익진으로 대승을 거둔다.

명량에선 거북선 없이 13척의 배로 기적 같은 승리를 창출했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으나 장렬히 전사한다. 서애는 자신이 천거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날, 영의정에서 파직되었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다.

필자는 우리 역사상 인물 가운데 서애 유성룡을 가장 존경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이순신을 천거한 통찰력과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쟁을 총 지휘하며 조선을 지켜낸 것과 처참했던 이 전쟁을 후세에 알리고자 ‘징비록’을 남긴 것이다. 이 중 이순신을 천거한 서애의 혜안에 탄복하고 감탄한다.

▲필자가 찾은 안동 옥연정사

그저께 서애가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기준은 무엇일까’ 고심하면서 옥연정사(안동시 풍산면)를 찾았다. 옥연정사는 서애가 영의정에서 파직된 후 6년에 걸쳐 징비록을 집필한 곳이다. 때마침 길목에서 뜻밖에 프랑스 여행가 ‘베노아 코드롱(Benoit caudron, 65세)’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 환대하다가 몹시 부끄러웠다. 프랑스에서도 찾아오는데 필자는 옥연정사에 첫걸음이었다. 강 건너 하회마을만 찾곤 했다.

▲옥연정사에서 만난 프랑스 여행가 베노아 코드롱(Benoit caudron, 65세)과 함께.

서애는 임진왜란 발발 1년 전부터 일본의 침략을 확신하고 대비에 서둘렀다. 조선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찾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목숨 걸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수호할 애국충정 인물! 전쟁을 승리로 이끌 통찰력과 통솔력을 갖춘 강인하면서 당쟁에 휘말리지 않게 청렴하고 백성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수군 근무 경력이 많지 않았음에도 바다를 지킬 장수에는 이순신을(이순신은 1580년 전라도 고흥의 발포 수군만호로 근무한 것이 임진왜란 전 유일한 수군 경력이었다), 지상에는 문과 출신인 권율을 천거했다. 사심 없이 사력을 다해 오직 나라만을 위해 헌신하며 왜적을 물리칠 능력자를 찾으니 이순신과 권율이 보였을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서애는 가감없이 징비록에 기록했다. 징비록(국보 132호)에는 처참했던 임진왜란을 다시는 겪지 않아야 한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이 담겨있다. 나아가 ‘전쟁을 잊으면 또다시 겪는다’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시대를 초월하여 준엄하게 일깨워 준다.

특히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후 30년과 40년 뒤 발발하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대한 대비책도 있다. 300년 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외세에 대해서도 예견한 듯하다. 그러나 당시에 그 누구도 징비록을 펼치지 않았다.

▲[사진=위키피디아 @Jocelyndurrey]

징비록 내용대로 대비했더라면 병자호란과 일제강점기는 없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당시보다 일본은 더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한제국에는 서애 같은 통찰력이 뛰어난 인재가 없었다. 서애가 혼신을 다해 징비록을 쓰고 세상을 떠난 지 415년이 지났다. 징비록은 오늘 날, 국내외 어려운 사정에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어젯밤 수도권에 폭우가 물폭탄처럼 쏟아졌다. 11년 전 7월 말,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상황과 비슷하다. 집중호우가 되풀이 되고 있다. 철저히 대비한다면 그 피해는 확 줄일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거두자, 서애는 무릎을 치며 선조에게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고 상소문을 통해 주장했다. 승리의 여세를 몰아 왜적을 섬멸하고 무너진 조선을 재건하기 위함이었다.

서애는 415년 동안 말하고 있다. “지난날을 반성하여 후환이 없도록 대비해야 한다.” 징비록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