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우리의 소원은 ‘OO’, 공동급수구역으로 ‘육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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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에서 벌어진 남북 초소 군인들의 소동. 누군가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고지전>처럼 분단의 비극을 떠올릴 것이다. 분단의 현실은 둘로 나뉜 민족의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57억 원 로또종이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간 이야기를 그린 <육사오(6/45)>는 코미디로 일관된 분위기를 띤다. 어설픈 교훈과 신파는 과감하게 쳐낸다.

사실 남북 분단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중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를 던져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태극기 휘날리며(누적 관람객 1,174만 명)>가 유일하다. 한국전쟁을 다룬 반공영화의 프로파간다 메시지에 대중이 질렸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의 참상과 형제애에 초점을 맞췄다. <쉬리(693만 명)>와 <공동경비구역 JSA(579만 명>가 흥행한 까닭은 당시 참신한 설정과 소재를 모험적으로 다룬 덕분이다.

<육사오>의 누적 관람객 수는 197만 명(2022년 8월 24일 기준)이다. 손익분기점(약 165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 요인은 코미디라는 장르에만 집중한다는 점이 꼽힌다. 영화는 남북 분단을 이용해 민족의 비극으로 귀결하거나 통일의 당위성을 설파하려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설정 도구로 활용하고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교훈처럼 던지지 않는다.

말년병장 천우(고경표)는 최전방 감시초소(GP) 위병소에서 로또용지를 줍는다. 이 종이는 주류업체에서 홍보 목적으로 술집 고객을 대상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바람을 타고 천우의 곁까지 오게 됐다. 무표정한 얼굴로 만사를 귀찮아하던 그는 당첨을 확인하자,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다닌다. 그런데 경계 근무 중 순간적 실수로 책에 꽂혀 있던 로또용지가 바람에 날려 철책선 너머에 떨어진다. 책의 제목은 <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하는 북한군 용호(이이경)은 우연히 로또는 줍고, 로또를 줍기 위해 몰래 철책을 넘은 천우와 마주친다. 용호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처럼 휘파람을 분다. 천우와 용호의 조우를 남한군과 북한군이 서로 알게 되면서 남북은 DMZ에서 당첨금 분배를 위한 ‘남북 회담’을 연다. 장소는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이 아니라 ‘공동급수구역(Joint Supply Area)’이다.

당첨금 57억 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양쪽이 풀어야 할 문제는 너무 많다. 당첨금 수령부터 적정한 분할까지 안 들키고 해결해야 모두가 만족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다 죽는 거야”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남북은 필사적이다.

영화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 이야기를 다룬 여러 영화를 패러디했다. 비무장지대에서 남북의 군인이 조우하고 경계 근무 도중 용변이 급한 병사의 장면과 한밤의 불꽃놀이 같은 사격 장면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바꿨다. 남북이 서로 섞이게 된 건 <만남의 광장>과 닮았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 군인의 이야기를 해프닝으로 풀어낸 건 영리한 전략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에 적절하게 군대 유머와 화장실 개그 등을 섞어 패러디 콘텐츠의 B급 매력을 높인다. 주제의 맥락이 현 세대와 상황에 절묘하게 맞고 뻔한 교훈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도 않는다. 예측을 뒤엎는 반전으로 상투적 결말을 피해 가는 흐름을 만족해하는 관객도 많다.

박규태 감독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되뇌기보다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살 수 있을지 유쾌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다. 당첨금 57억 원의 행방을 따라가면 신나게 웃을 수 있고 잠시나마 각박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