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내가 홍준표 시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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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이라 일주일에 두어 번 장을 본다. 여유가 있으면 대형마트에 가고, 급하면 동네 마트를 이용한다. 사실 출퇴근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일상 속에선 온라인 식품 거래 플랫폼을 애용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평일이든 주말이든 내 삶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대구시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선발주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8개 구·군 전체를 관할해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이 논의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건 대구시와 마트노동자다. 법 조항은 해석의 여지를 둬, 마트노동자를 논의의 이해당사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구·군의 역할로 미뤘다. 마트노조는 “이해당사자인 우리를 논의에서 배제시켰다. 마트노동자도 주말에 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법적 해석, 포괄적 논의의 필요성을 떠나 제도 자체만 두고 보자. 10년 전 의무휴업일을 도입할 때만 해도 전통시장의 위기는 누가 봐도 대형마트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선이 다르다. 최상위 포식꾼이 되어 버린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모든 오프라인 업체를 밟고 올라서고 있다.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논의에서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가 ‘배송’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유통업체의 새벽배송, 실시간 배송에 대항해 버틸 수 있느냐가 생존을 결정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 행태,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 분위기는 점점 더 빠른 배송 중심으로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대형마트의 새벽시간·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실 진짜 전쟁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 이제 거대한 전환 속에서 지자체의 역할을 얘기해보자.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위해 힘쓰는 것, 마트노동자의 목소리를 ‘자기들 문제’라고 외면하는 것, 빠른 추진력으로 전국 뉴스에 나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실무자인 구청 담당자가 말했다. “단체가 아닌 개별 상인, 구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마트노동자 이야기까지 세세하게 듣는 게 우리 역할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더라도 가능한 모든 의견을 듣는 것, 그게 지자체의 역할일 테다.

내가 홍준표 시장이라면 바뀐 전선에서 대형마트·소비자에게 크게 티 나지 않는 협약에 힘을 빼기 보단 마트노동자를 위한 거국적 선택을 하겠다. 이를테면 “마트노동자도 일요일엔 쉬어야지 않겠습니까.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일요일 의무휴업을 방침으로 만들겠습니다. 대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연계를 강화하고 시민의 불편함이 없도록 고민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쓰겠다. 이게 진짜 티 나는, 시민을 위한 파워풀 시정의 방향 아닐까.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