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벗, ‘가난한 김헌주’가 남긴 건 사람

제7회 대구경북민주시민상 수상···"이주노동자가 나를 구제했다"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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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죽거나 다치고,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도 못하기 일쑤인,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는 이주노동자들과 수십 년 함께 지낸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장은 가난하다. 이주노동자가 처하는 문제에 앞장서다보면 생활비 마련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플라스틱 제품 공장에서 일하다가 임금을 받지 못한 스리랑카 여성 노동자를 도와 임금체불을 노동청에 신고하고 거처로 돌아오던 그날. 김 센터장은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 무심결에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은데 돈이 없네.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멋지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차 안에서 그 말을 들은 이주노동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소장님은 사람 많이 벌었잖아요.”

가난하지만 이주노동자와 어려움을 함께하는 생활로, 이주노동자의 벗이 된 김 센터장이 12일 오전 11시 대구 남구 우리복지연합 사무실에서 2022년 대구경북민주시민상을 받았다.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장(오른쪽)

김 센터장은 수상소감을 밝히며 센터 활동에 도움을 준 노동운동가와 이주노동자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김 센터장은 “한 번도 손 벌린 적 없는데도 이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농사를 지어서, 박봉의 활동비를 털어 센터를 도왔다”며 “이분들을 대신해 이 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이주노동자가 내 인생을 구제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디서 이렇게 대접 받겠나”며 “이 상이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덧붙였다.

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민주시민상 선정위원회는 “김 센터장의 활동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활동의 좌절이 있겠지만 20년 이상 쉼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센터장의 신념 때문일 것”이라며 “고단한 삶이라도 가치 있는 삶으로 다시 보는 기회가 되길,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려 애쓰는 많은 활동가들이 주목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 센터장은 1980년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그해 5월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사태를 보고 자퇴했다. 그 후 대구에 온 김 센터장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대구기독청년협의회(EYC)에서 인권운동, 빈민운동을 했다. 김 센터장은 2007년 경산이주노동자센터를 설립해 지역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증진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아래는 김 센터장의 수상소감 전문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적어왔습니다. 오늘 이 상을 같이 받아야 할 분들의 이름을 적어 왔습니다.도청의 비정규직노동조합 지회장을 하면서 안동지역의 모든 투쟁에 열심히 함께 하는 전교탁 동지.
뜨문뜨문 들어오는 강의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면서도 치열한 환경운동가로 살아가는 송순옥 동무.
20년도 더 된 똥차를 몰면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면서도 안동의 모든 활동가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황지영 선생.
청소일을 하는 노동자이면서도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과 아픔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최종현 동지.
기초수급비로 살아가면서도 안동지역의 모든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아깝도록 휠체어를 몰고다니는 김준호 소장, 장미자 회장.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늘 이주노동자의 옆에서 누나 혹은 엄마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하고 있는 본인이 이주노동자인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안해영 소장.
알바로 생활비와 학비를 버는 학생이면서 안동지역미얀마관심이모임의 회장 역할을 맡아 아시아민중의 연대를 통해 해방세상을 꿈꾸는 안솔잎 활동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반상근 활동가로서 쥐꼬리만한 활동비를 받으면서도 경북북부지역의 모든 환경관련 의제를 도맡아 처리하는 서옥림 활동가.
녹색꿈을 꾸는 청년 정치가이면서 안동지역의 모든 현안에 함께 하는 허승규 위원장.
비리폭력재단 선산재활원에서 일하다 양심의 부름을 어쩔 수 없어 공익제보를 하고 이로 인해 해고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비리폭력재단을 해산하게 만든 지영화 선생.
귀농한 가난한 농부지만 이주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늘 함께 하는 영양의 김증근 동지, 보성의 정세동 동지, 구례의 신강 동지.
늘 배고픈 예술활동가로서 살면서도 연극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내겠다는 꿈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는 손병숙 선생.
자격증을 딴 이래 늘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활동가 엄진령 노무사.
저와 같이 이 일을 시작했고 저보다 더 박봉을 받으면서 늘 이주노동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형이자 동지인 성서공단노동조합 노동상담소 김용철 소장.
몸을 움직여야만 밥 한 그릇 값 벌 수 있는 건설노동자이면서도 노동해방의 꿈을 부여안고 동분서주하는 이정래 동지.
일원 한 장 벌이가 없으면서도 늘 이주노동자들의 곁에서 본인 지갑을 털어가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전 대구경북 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최선희 동지.
한국에서 20년이 넘게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청춘을 보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자 영화감독인 영원한 친구 섹알 마문 동지.

오늘 이 상을 받아야 마땅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알바를 하고, 혹은 농사를 짓고, 노가다를 하고 박봉의 활동비를 털어 그것도 아니면 빈 지갑을 뒤져서라도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의 곳간을 채워주시는 분들입니다. 저는 단 한번도 이분들에게 손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모두 자발적 가난의 삶을 선택한 훌륭한 분들이지요. 더 많은 분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어쩔 수 없이 생략합니다.
저는 오늘 이분들을 대신하여 이 상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주노동자들이 제 인생을 구제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데가서 이렇게 대접받고 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프라스틱 제품공장에서 일하다가 임금을 못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내고 같이 노동청에 출석하러 가던 차 안에서 스리랑카 여성노동자가 저한테 했던 말을 전해드리면서 제 인사말을 마칠까 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은데 돈이 없네,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멋지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던 그분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소장님은 사람 많이 벌었잖아요.’

고맙습니다.
이 상이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