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을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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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가 선정하는 제7회 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민주시민상을 받은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장은 상을 함께 받아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으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20년 동안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증진 활동을 해온 김헌주 센터장은 “한 번도 손 벌린 적 없는데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농사를 지어서, 박봉의 활동비를 털어 센터를 도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육성으로 수상 소감을 들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차별 없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중요하다는 따뜻한 결론에 이르렀다.

시상식 후 선정위원들은 김헌주 센터장에게 농촌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물었다. 김 센터장은 “경북 농촌지역을 다니면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주거나, 임금을 떼어먹는 양X치 같은 고용주는 거의 없다. 농민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쁜 고용주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솔직한 이야기다.

농촌 이주노동자는 단기 계절근로자 제도로 한국에 들어온다.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비자 만료 후 다른 곳으로 ‘불법체류’ 상태로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조금이라도 일당을 더 주는 곳으로 옮겨다니기도 한다. 3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도시의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 미친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 불평등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꿈꾸는 힘은 따뜻한 사람 속에서 나오지만, ‘이주노동자는 시키는 일만 하고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인구소멸, 지방소멸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는 저마다 인구유입 대책을 세우지만, 수도권 집중화를 부추기는 제도 때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 독점 문제도 그렇다. 일당이 독점하고 있어 대구, 경북에 활력이 없다는 말은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등 당을 가리지 않고 꺼낸다. 선거를 치르면 교체 가능성이 있는 부산, 충청은 정치인이 유권자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도 술자리 단골손님이다. 상대적 다수가 특정정당을 지지한다고 유권자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구, 경북의 정치 독점은 선거 결과일 뿐이다. 20~30%, 어떤 지역은 40%까지도 다른 선택을 한다. 그래도 결과는 같다. 대구에서 비(非)국민의힘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부겸, 홍의락을 언급하지만, 독특한 사례에 불과했다.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면 ‘대구경북은 경쟁이 없어서 어렵다’, ‘대구경북은 늘 한 정당만 찍어줘서 답답한 동네다’ 등의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대구경북 시민 100%, 아니 90%가 한 정당만 찍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없다. 유권자는 잘못이 없다. 비례성을 무시하는 단순 소선거구제로 인한 결과일 뿐이다. 제도를 방치한 이들이 결과를 내지 못한 유권자를 비난하는 건, 이주노동자 인권 증진 활동을 한 김헌주 센터장에게 농촌 이주노동자 일손 부족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다. 대구경북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파워풀 지방시대를 열려면 선거제도 개혁이 시작이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