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인정 판결, 뒤집힌 이유는?

■쟁점 1. 아사히글라스의 지휘 명령
■쟁점 2. GTS 사업의 실질적 편입 여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주심 판사 태평양 출신,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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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최근 아사히글라스(AGC화인테크노한국, AFK) 불법파견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자 해고자를 포함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심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했고, 해고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도 1, 2심 모두 아사히글라스와 해고자들 사이의 근로자 파견 관계를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앞선 판결과 달리 항소심 판결에서 무죄로 뒤집히자 법조계에서도 현장 검증을 여러 차례 한 원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어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앞서 대구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이영화·문채영·김아영)는 지난 17일 아사히글라스의 파견법 위반 혐의에 대해 하라노 다케시 아사히글라스 당시 대표이사, 하청업체 대표인 정재윤 전 지티에스(GTS)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관련기사=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항소심, 무죄로 뒤집혀···허탈한 해고자(‘23.2.17))

사내하도급 사업장에서 파견법 위반 문제가 있을 때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례에서 제시된 5가지 기준을 통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따져 판단한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 2심 재판부와 파견법 위반 1심 재판부는 아사히글라스가 해당 5가지 조건을 모두 어겨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재판부는 5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 ‘도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는 5가지 기준 중 법원은 ▲제3자(원청)가 하청 노동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공동작업을 하는 등 원청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여부 2가지를 비교적 더 중요한 요소로 판단한다.

나머지 3가지 요소에는 ▲하청업체가 하청 노동자의 선발, 교육 및 훈련, 휴가 등 결정을 독자적으로 하는지 ▲하청 노동자의 업무가 구별되고 그 업무에 전문성과 기술성이 있는지 ▲하청업체가 독립적 기업 조직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가 있다.

■쟁점 1. 아사히글라스의 지휘 명령

형사1심(김천지원 형사1단독)과 민사1심(김천지원 제1민사부), 2심(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 재판부는 아사히글라스가 GTS 노동자에게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를 했다고 판단했다. 아사히글라스가 형식적으로 생산지시서, 작업요청서 등 서류를 꾸며 GTS 관리자에게 전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GTS 관리자가 아사히글라스의 지시를 독자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었고 소속 노동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뿐으로 판단했다.

실제 작업의뢰서에는 작업 방법, 수량, 작업 시 아사히글라스의 입회 확인 권한이 적혀 있으며, 작업자 지정, 라인가동방법 등 내용도 포함된 경우가 있었다. 이에 대해 형사1심 재판부는 “아사히글라스가 정한 작업내용 안에서 아사히글라스 지시에 따라 생산한 것이고, 도급의 목적물이나 그 품질 담보를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위의 서류가 작업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표시한다 해도 이는 기술적 기재라고 판단했다. 또한 GTS가 아사히글라스의 지시를 변경할 권한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발주 조건을 임의로 변경할 경우 아사히글라스가 고객으로부터 품질클레임을 받게 된다”며 “서류 내용을 변경할 재량 여부를 지휘명령 판단 징표로 삼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작업의뢰서 외에도 아사히글라스가 긴급히 GTS의 업무에 개입하는 KTX 업무나 생산 시작 시각, 종료 시각 등을 기재한 확인표 등에 대해서도 “도급인의 지시권 행사 일종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지시권이란, 법률이 명시적으로 정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판례에서는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일의 완성을 위해 주문할 수 있는 권한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다른 재판부는 아사히글라스의 지시가 도급 목적물이나 품질 담보를 위한 것(지시권)을 넘어서는 업무 지휘 명령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작업 수행 과정에서 GTS의 작업 수행 재량은 없었고, GTS의 현장관리인이 소속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사히글라스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하거나 그 지휘·명령이 제3자에게 통제된 것에 불과하다고도 판단했다.

민사 2심 재판부는 “GTS 근로자들은 위 생산지시서류를 현장 게시판에 그대로 부착한 채 이를 기초로 작업을 실시하였는데, 위 생산지시서류에 기재된 것과 다른 설정값을 적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하였다”고 판시했다.

민사 1심 재판부도 “GTS 한 과장은 수사과정에서 지티에스의 독자적인 작업수행 권한은 사실상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이 법정에서도 GTS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아사히글라스에 문의하여 아사히글라스가 가능하다고 하면 할 수 있다고 하였는바, GTS는 아사히글라스의 지시와 달리 생산일정을 정할 권한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22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쟁점 2. GTS 사업의 실질적 편입 여부 

항소심 재판부는 GTS의 업무가 아사히글라스의 업무와 대체로 물리적, 기능적으로 단절된 곳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해 아사히글라스의 사업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된 사업을 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GTS 노동자 다수가 근무한 GUT(구트) 공정이 다른 공정과 분리된 공간에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구트 공정 내 정수공사 등 일부 혼재작업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GTS가 아사히글라스의 설비를 사용하는 이상 불가피한 혼재작업으로 봤다. 그 외 COLD(콜드) 공정에서는 장소적 혼재는 발생했지만 작업 내용은 구분했다고 아사히글라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GTS 사업이 아사히글라스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어 파견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글라스 생산이라는 단일한 목적 아래 아사히글라스와 밀접하게 연동된 작업을 했다”며 “콜드 공정 거친 제품 40%가 구트 공정을 거치고 이후 콜드 공정을 거친 제품과 같은 세부공정이 진행되므로 구트 공정 근로자도 글라스 생산이라는 단일한 목적 아래 아사히글라스와 연동돼 작업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민사 재판부는 아사히글라스가 일방적으로 GTS와 계약을 해지한 후 그 자리에 자회사 소속 정규직 직원들을 곧바로 채운 점을 보아서도 해당 업무가 실질적으로 아사히글라스의 업무에 편입된 것으로 봤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주심 판사 태평양 출신, 공정한가”
법조계 “원심이 현장 검증한 사실관계 뒤집을 사정 있는지 의문”

형사 항소심 판결 후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앞선 재판에서 입증된 증거와 사실관계를 모두 부정했다. 이외에도 현대기아차, 현대제철, 포스코 등에서도 판결 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 금지를 확인한 다른 판결까지도 모두 뒤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항소심 재판부의 주심 판사가 로펌 태평양 출신인 점을 비판했다. 현재 아사히글라스의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은 김앤장이, 민사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태평양이 수임하고 있다. 주심을 맡은 김아영 판사는 이른바 ‘후관’이다. 김 판사는 2012년 54회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2015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후 2020년 10월 법관으로 임용됐다. 2021년 3월부터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법복을 입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형사소송법상 제척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회피하는 쪽이 바람직했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이번 판결과 관련해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 판단을 뒤집을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주심 판사가 태평양에 재직하던 당시에도 태평양이 아사히글라스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사건은 김앤장이 수임해 태평양 출신 판사의 법적인 제척 사유는 없지만, 스스로 회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는 “결국 도급인지 불법파견인지가 문제 되었던 건에서 도급을 인정한 사안인데, 과연 원심에서 현장검증을 여러 차례 해서 확인하였던 사실관계를 항소심 재판부가 뒤집을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대법원 앞에서 열리는 대구지법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하며, 22일 금속노조도 대구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