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운동 현재적 의미를 찾아가다···대구MBC, ‘1960대구, 민주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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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2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 유세장에 학생들이 가지 못하도록 대구 8개 공립학교가 일요일 강제 등교 방침을 내리자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3월 15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야당 부통령 후보 유세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에 반발한 학생들은 저항했고, 이는 4·19혁명으로도 이어졌다. 그 시절 한국 민주화 운동의 뿌리로 평가된 2·28 운동은 지금 대구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대구MBC>가 창사 60주년 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1960 대구, 민주의 봄>을 통해 2·28 운동을 다시 조명한다. 제작진은 여전히 연구하고 새롭게 조명할 면모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료 부족 또는 지역 언론의 무관심 때문에 2·28 운동이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며 제작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방송된 1부 ‘보수의 심장에 묻힌 화석 2·28’은 달서구 두류동 2·28민주운동기념탑에 적힌 2·28민주운동 결의문부터 시작한다. 작성자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이 결의문은 고(故) 하청일 선생이 작성했다. 제작진은 1부에서 하청일 선생의 동생 하청호 대구문학관장의 기억을 통해 2·28 운동을 살펴 본다.

이어 제작진은 2022년 2월 열린 2·28민주운동 기념 특별 사진전에서 1960년 2월 28일 당시 경찰에 연행되는 여학생 사진을 발견하고 추적한다. 당시 교복을 물색해 경북여고 학생으로 확인하고, 경북여고에서 2·28운동을 주도했던 신구자 선생을 조명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호주로 이민 간 신구자 선생을 찾아 직접 인터뷰한 장면도 나온다.

▲신구자 선생. (사진=대구MBC)

1부 끝에서는 2·28 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운동임에도, 지금 대구에서는 2·28 운동이 화석처럼 박제됐다며 그 이유를 살펴 본다. 다큐멘터리 말미, 국부로 일컬어지는 이승만에 대한 저항 운동이라는 점이 현대 대구의 주된 정치 세력에게 “어색함을 발생하게 했다”는 평가가 제시된다.

한편 제작진은 오는 25일 10시 30분 2부 ‘쓰레기와 장미’에서 2·28 운동을 보도한 외신기사를 최초로 발굴해 공개한다. <The Times>가 1960년 3월 15일 발행한 신문에는 당시 대구의 시위 장면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분위기가 묘사된 기사가 실렸다.

이번 다큐 연출을 맡은 윤창준 PD는 “지역이 지역의 역사를 탐구하지 않으면 누가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사료의 빈약함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새로운 탐구와 추적이 전무했다”며 “새로운 사료 발굴과 더불어 2.28 민주운동이 현재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치를 재조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