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벚나무 같은 친구를 기리며

15:13
Voiced by Amazon Polly

만물이 소생하는 4월, 하루가 다르게 녹색으로 물들고 있다. 올해 유달리 일찍 활짝 핀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이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날아들었다. 군대에 청춘을 바치고 이제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하는데 떠나니 더 애달프다.

친구와 지난 2월까지 일상을 SNS로 공유했다. 병문안 다녀온 동기들이 “위독하다”고 알려와도 염려하지 않았다. 강철같은 그의 정신력과 체력을 믿었다. 지난 33년 동안 전후방 각지에서 불철주야로 우리 강산을 지킨 사나이가 아닌가. 나라를 지킨 사람이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할까.

우리는 1987년에 육군소위 계급장을 달고 뜻밖의 일로 사관학교 동기(同期)에서 뜻을 함께하는 동지(同志)가 되었다. 모 대학에 고교 동창을 만나러 같이 갔다가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의 외침을 들었다. 필자는 최루 가스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교실에 있어야 할 학생이 데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친구는 달랐다. “저들은 학생이다. 우리는 군인이다. 차이를 인정하자. 우리는 나라를 지키자”고 했다. 그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의 안목을 존경한다. 덕분에 분노하는 대신 군인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분발하였다.

군인은 국토방위는 물론이고 국가적 행사 때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88년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성공보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했다. 대한민국의 영광이 곧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친구는 군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입상한 선수처럼.

이렇게 매사에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친구가 올 새해 아침에 뜬금없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깨우친 것이다” 며, 앞날을 예고한 듯이 말했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친구는 ‘임무는 명쾌하게, 생활은 유쾌하게’로 정평이 난 인물이라 평소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정리해 본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자. 서로 소통하고 신뢰하자. 우리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리고 묵묵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자. 이분들이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계절 봄에, 꽃이 지는 이별의 아픔을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아픔을 승화시켰다. 친구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데 슬픔을 억누를 수 없다. 친구는 분명 봄에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다. 나무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벚나무 같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일찍 사라져가지만 정작 벚나무는 꽃이 떨어진 자리에 새잎을 키운다. 그리고 무성한 잎사귀로 자라 여름날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가을에는 푸른 잎을 붉게 물들인다. 공해에 강하여 가로수로 아름다운 거리를 꾸민다.

무엇보다 벚나무는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만든 팔만대장경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 졌다. 천년이 지나도 뒤틀림이 없는 것이 강점이다. 친구는 이런 벚나무와 닮았다. 그 어떤 나무보다 강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꽃으로 무성한 잎으로 또 단풍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본질은 변하지 않으면서 철 따라 변하는 벚나무 같은 친구여! 친구의 깨달음을 본받아 서로 소통하고 신뢰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거름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