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개같이 벌어도 한 푼도 못 쓰는 시대 / 심순경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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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서 ‘0원 쓰기 챌린지’가 유행이다. 하루, 일주일 기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은 무지출 상태로 지내며 돈을 절약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각자의 0원 쓰기 팁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건 옛말이다. “개같이 벌어서 아무것도 안 쓰는” 시대다. 2023년 최저시급 9,620원, 한 달 월급으로 환산하면 200만원 가량. 청년의 삶을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임금의 최저선은 물가인상률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년들은 결국 단념한 채로 덜먹고 덜 즐기기를, 돈이 필요하다면 더 오랜 시간 일하고, n잡 뛰기를 택했다. 지금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만 보아도 2024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최근 SNS에서 ‘0원 쓰기 챌린지’가 유행이다. 하루, 일주일 기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은 무지출 상태로 지내며 돈을 절약하는 것이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건 옛말이다. “개같이 벌어서 아무것도 안 쓰는” 시대다. (사진=대구청년유니온)

청년유니온은 10년 전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다’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란 슬로건은 유효하다. 아르바이트∙인턴∙현장실습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로 일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최저임금은 사실상 최고임금이다. 특히 임금수준이 전국 최하위권인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대구청년유니온에게 ‘최저임금’이 가지는 의미는 조금 더 무겁다. 임금수준이 최하위권에 속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이 80%를 웃도는 지역 특성이 소득 수준이 낮은 ‘청년’이라는 정체성과 만났을 때 최저임금 투쟁은 ‘대구 청년들의 임금투쟁’이 된다.

소득 수준이 낮은 청년, 아르바이트∙인턴∙현장실습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로 일을 시작하는 청년, 노동조합을 통한 임금협상이 어려운 미조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거의 유일한 ‘임금 협상’이다.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 또한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의 판도를 뒤엎을 ‘차등적용’이 지난해 최저임금 위원회에서 논의되었다. 공익위원의 요청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기초자료 연구가 이뤄졌고, 당해년도 최저임금 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말 그 자체로 모순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연구용역의 배경은 음식∙숙박업 등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 최저임금보다 낮게 임금을 정할 수 있는 차등적용의 근거를 연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주로 업무 강도가 높은 직종에 더 높은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사측의 지급능력을 운운하며 벼룩의 간을 빼먹는 식의 차등적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역별 차등적용을 시행하고 있지만 지역격차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으며 지난해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특정 유럽국가의 경우 연령에 따른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차별의 소지가 있다며 차등적용을 줄여가는 추세이다. 있던 차등적용 제도도 없애는 형국에 퇴행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이 적용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하청간의 임금격차는 더 커지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아울러 ‘업종별 구분적용’은 사실상 ‘지역별 구분 적용’과도 다름없다. 3차 산업(서비스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구시 평균 임금은 더욱 낮아질 것이며, 대기업이 밀집된 수도권의 평균 임금과는 전보다 훨씬 큰 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청년들은 자연스레 지역을 떠나 더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갈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최저임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다.

힘든 시대다. 청년들이 ‘0원 쓰기 챌린지’에 동참하며 돈을 모으는 것이나, ‘영끌’이라며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해 불로소득을 만들려는 행위나 모두 임금노동으로는 나의 미래가 상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까. 청년들의 삶이 안정적으로 영위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시작은 2024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용자 측이 최저임금 지불 능력을 운운한다면 최저임금이 노동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노동자의 작디작은 지분을 빼앗아 그것을 사측에게 바치고 충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되어서는 안된다. 2024년의 최저임금은 청년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임금으로 결정되기를 바란다. 대구청년유니온 또한 ‘최저임금 투쟁은 모든 청년들의 임금 투쟁’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

▲심순경 대구청년유니온 사무국장(사진=민주노총 대구본부)

심순경 대구청년유니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