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이 더듬거리는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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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고전적이고 장중하다(두 단어는 동어반복이다). 이 시집은 비극적이고 숭고하다(두 단어는 동어반복이다). 노태맹의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한티재,2021) 고전적이고 장중하며, 비극적이고 숭고한 것은 이 시집이 애도에 바쳐진 까닭이다. “물 아래 가라앉은 저 배는 이제 물의 질료(質料)에 가깝게 되었나이다. 기억의 갑판에 들러붙어 있던 해초와 딱딱한 껍질의 슬픔도 물의 형상(形相)에 거의 가깝게 투명해져 있나이다.//[…]// 보소서, 물 아래 가라앉은 저 배는 이제 물의 노래에 가깝게 되었나이다. 기억의 갑판에 들러붙어 있던 해초와 딱딱한 망각의 막막함도 물의 물에 가깝게 둥글어지고 있나이다.”(「레퀴엠 1-3」)

맨 처음 실려 있는 이 시는 누군가가 “1980년 광주 학살 이후 최악”(황종연)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9ㆍ11과 강도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전규찬)다라고 말했던, 세월호 참사를 애도한다. 많은 시인들이 2014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시로 애도했지만,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는 시집의 거의가 세월호에 바쳐져 있다. 통째라고 말하지 않고, ‘거의’라는 부사를 붙이는 이유는 시인이 자신의 애도를 세월호 참사에만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소서! 금속의 뜨거운 화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무엇이 달라졌겠나이까? […] 금속의 뜨거운 쇳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기름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뛰어 오르는 순간처럼, 그가 보았을 마지막 풍경이 날카롭게 우리의 심장을 찌르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누가 그를 황홀이라 이름 하겠나이까?”(「레퀴엠 2-6」) 이 시는 2010년, 당진에 있는 환영철강에서 작업 중 용광로로 떨어진 청년 노동자를 애도한다. 이외에도 이 시집에는 제주 4ㆍ3 대학살과 광주민주화항쟁의 희생자들이 애도된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 중에서 숱한 희생자를 냈다.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면서, 그 모든 희생자들에게서 세월호 희생자와 동일한 사인(死因)을 발견했다. 그들을 죽인 것은 국가의 기만과 무능이다. “가련하여라, 저 머리가 부서진 농부여/ 가련하여라, 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화염이여/ 가련하여라, 저 숨 쉴 수 없는 초로구의 강이여/ 가련하여라, 자 쇳물에 녹아버린 나의 형제여/ 가련하여라, 저 길 위 저 굴뚝 위의 노동자들이여/ 가련하여라, 저 입 없는 검은 돌멩이들이여/ 가련하여라, 저 새끼 잃은 어미의 푸른 이마여/ 가련하여라, 저 도시의 죽게 내버려진 잉여들이여/ 가련하여라, 저 죽은 농부와 노동자를 부르는 시민들의 북소리여/ 가련하여라, 만장(挽章)을 든 분노의 손들이여”(「레퀴엠 2-7」)

역사가는 기록하고 시인은 애도한다고 말하면 너무 이분법적이다. 역사가는 기록하는 것으로 애도하고, 시인의 애도는 그 자체로 기록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역사가는 시인보다 좀 더 전문적인 기록자이고, 시인은 역사가보다 좀 더 애도에 뛰어나다 하겠다. 시인이 역사가 보다 애도 능력이 뛰어난 것은 시인이 노래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말한다. “살아남은 나는 바닷가에 서서 가수”(「레퀴엠 2-5」)가 되었다고, “우리는 노래하고 또 노래하느니”(「레퀴엠 2-9 」), 천사여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소서!”(「레퀴엠 2-10」)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은 의고체(擬古體)로 씌어졌다. 시인이 의도한 의고체는 낯익게 느껴져서는 안 될 사건을 낯설게 만들고, 국가가 방치한 희생자에게 품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필수적이었던 이유는, 시인이 독자가 이 시집을 혼자서나 여럿이서 낭송할 수 있게 계획한 것이다. 의고체는 이 시집을 낭송하는 사람을 슬픔으로 고양시키고 정화한다. “죽지 않는 내가 죽은 나를 위해 울고 있나이다”(「레퀴엠 1-4」) 애도에는 이처럼 이기적인 속성이 있지만 모든 애도가 나만 위하지는 않는다. “기억하라/ 우리의 정치는 노래와 눈물이 떨어진/ 바로 이곳에서 시작하고 또 시작하느니”(「레퀴엠 2-7」) 권력은 공인되지 않은 애도의 힘을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