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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씨부려대구 시즌2 세 번째 모임 시작합니다. 진행을 맡은 저는 뉴스민 김보현 기자입니다. 지금은 9월 19일 화요일 저녁 7시입니다. 오늘 주제는 ‘학교’입니다. 두 달이 지났네요. 7월 18일 서울 서초동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학부모 민원, 업무 과중 등 교사의 업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죠.
학교 안과 밖에선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듣기 위해 일곱 분을 모셨습니다. 어쩌다 보니 모임 구성원이 모두 여성입니다. 김나빈(29세, 분홍돌고래도서관), 김인혜(39세, 더폴락), 성민아(37세, 정의당 대구시당), 이설기(32세, 마케팅회사 퇴사), 박소영(43세, 전교조 대구지부, 고등학교 교사), 박효경(25세, 초등학교 교사), 오현주(42세, 학부모) 님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성민아: 정의당 대구시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범대를 나왔고 한때 교사를 꿈꿨습니다.
이설기: 직장을 쉬고 있습니다. 저도 교사가 꿈이었던 적이 있어요.
김인혜: 대구에서 더풀락이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오시는 분 중 교사가 굉장히 많으세요. 커뮤니티 모임에도 교사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오늘 모임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박소영: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올해부터는 전교조 대구지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효경: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나빈: 분홍돌고래도서관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현주: 학부모로 섭외됐습니다. 9살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지역에서 주거복지와 청년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사건 후 두 달···교사는 ‘우울감’, 사회는 ‘충격’
보현: 우선 지난 두 달간 각자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특히 교사들이 집단적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도 궁금하고요.
설기: 친구 중 간호사,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있거든요. 처음 소식을 접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걸 봤을 때 ‘친구들이 일하는 곳에서 또 큰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어요. 간호법 파업할 때의 느낌도 받았고요. 사건 당사자가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이었잖아요. ‘직장에서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뭘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학교 안의 곪아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걸까’ 충격을 받았어요.
효경: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선생님이 저랑 동갑이에요. 발령도 비슷한 시기에 난 걸로 알아요. 제가 발령 나고부터 지금까지 느꼈던 초등 교사로서의 고립감이나 부조리함 같은 걸 톺아보면서, 물론 선생님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많이 힘드셨을 거란 게 단박에 감이 잡히더라고요. 관련 기사를 볼 때 많이 울었고, 이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났어요.
초등 교사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기도 한데요. 저흰 대부분 교실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교무실을 같이 사용하잖아요. 교무실을 같이 쓰면 아무래도 학생이나 학부모 혹은 다른 이유로 힘들었던 걸 나눌 기회가 많은데 저흰 교실에서 학생들이랑 있거나 혼자 있으니 외롭거나 힘든 부분을 스스로 삼키게 돼요. ‘서이초 선생님도 그런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주: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한 인권 강의를 나가기 전날, 서이초 선생님의 일이 있었어요. 강의 도중 “교사의 교권, 인권을 지킬 안전망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게 생각나요. 저희도 기관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 기관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맞지 않을 때,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 기관에서 묵살당하게 되면 ‘이걸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있나’ 고민하거든요. 그래서 남 일 같지 않다고 생각했죠.
저희 아이 담임선생님은 ‘하이클래스’라는 앱으로 알림장을 주시거든요. 예전엔 아이들이 수기로 쓰거나 선생님이 출력한 걸 붙여 오면 학부모가 사인을 하는 방식이었잖아요. 요샌 알림장이 앱으로 와요. 여기에 언제부턴가 첫 번째 줄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오지 마세요. 개인적인 얘기는 쉬는 시간에 하세요. 수업권을 존중해 주세요’. 그때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느끼시는 게 조금 다르구나’라고 느끼게 됐죠. 선생님에게 여러 업무가 많다는 걸 아이한테 차분하게 설명을 하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진 잘 모르겠어요. 다각면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당장 저부터도 출근하면 서비스 제공자이지만 퇴근하면 일반 시민, 학부모가 되니까요.
인혜: 어린 시절 학교 다녔던 생각부터 났어요. 좋은 선생님도 많으셨지만 안 좋은 선생님도 있었거든요. 따귀를 맞았고, 돈을 안 가져온다고 따로 불려 가서 ‘왜 부모님이 담배 한 갑 안 가져오냐’는 말도 들었어요. 지금 분위기는 완전 역전됐죠.
이젠 학교의 역할도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어요. 제가 어릴 때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은 완전히 다른 것 같거든요.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게 많이 달라졌는데 교육과정은 거의 바뀌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외워야 하는 게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교육은 없고 ‘영어를 얼마나 더 빨리 배워야 하는가’에 머물러 있으니 여러 문제가 파생되는 것 아닐까요.
소영: 관료 조직은 어디나 변화가 더디죠. 학교는 관료 조직이고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멀리 보고 나아간다면 정말 좋을텐데, 보통 교육은 정부가 바뀌면 교육부 이름이 바뀌는 식으로 변화를 맞이했잖아요.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권의 시선에 따라서 바뀌었죠.
전 노동조합 활동을 하니까 교사들이 ‘세상의 일에 무감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상반기 건설노동자인 양회동 열사 일도 있었고, 계속해서 죽음이 있었잖아요. 언론에 나오지 않지만 학생들이 코로나19 시국이 끝난 후 더 많이 (극단적 선택으로) 죽거든요. 교육청에서 발표하진 않는데, 아마 예전 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이슈가 됐을 때 언론화된 걸 두고 안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선생님들은 카더라로 듣지만 교육청은 집계를 하겠죠.
그런 측면에서 ‘최근 교사들의 분노가 선택적 분노 아닌가’란 생각이 좀 들었어요. 당연히 인간이라면 나와 비슷한 부분에 공감하고, 저도 그 안에 있으니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요. 뭐랄까. ‘교사들이 이렇게 세상에 대해 모르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업인데 다른 노동자와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에서 오는 학교 밖의 충격도 있는 것 같아요. 활동가로선 요구를 안아서 행사를 하고 대응책을 고민하는데 마음 속에선 괴리감이 들어요.
보현: 맞아요. 어느 직업군이나 어려움은 있죠. 교사는 특히 안정적이란 인식이 강한 직업이기 때문에 사회적 충격이 강하게 온 것 같아요.
#학교는 여전히 권위적···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쌓여
소영: 2011년에 대구에서 학교 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학생이 있었고, 그 뒤 학교 안에 법이 밀려 들어왔어요. 학교폭력 대책이라 해서 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록을 하게 하고, 그 뒤에 교원지원법 등이 생기면서 10년이 흘렀거든요. 법은 응보적인 성격이 강해요. 처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학교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막혀 있거든요. 학부모도 학교에 가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사실 열린 공간이 아닌 닫힌 공간인데, 법이 들어오고 처벌만 강화되다 보니 소송전이 난무하게 됐어요. 2018년에는 대구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초등학생을 혼자 둔 교사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열렸어요. 그 시점부터 교육 전문 변호사가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렇게 쌓인 것들이 최근 분출구를 만나 터진 거죠.
민아: 페이스북 친구 중 밝은 글을 자주 올리는 초등교사가 있는데, 이번 사건 이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힘들었지만 교사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알리지 못했다’는 자기고백을 하더라고요. 외부에 안정적으로 보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어서 내가 부당한 대우를 겪는다는 걸 오픈하지 못하는 거죠. 공감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는 댓글이 엄청 달렸어요.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 편견일 수 있다는 말을 먼저 드립니다.
학교는 1등부터 30등까지 존재하는 공간이잖아요. 학창 시절 1~2등을 한 학생이 선생님이 되죠. 그게 사범대 재학 시절 저의 주요 화두였거든요. ‘규범을 잘 지키면 학교 다니기가 정말 편한데 쟤들은 왜 저럴까’ 저부터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어쨌든 학교에 가면 다양하고 많은 아이를 만나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교사가 되진 않았지만 대학생 시절 청소년 단체에서 봉사를 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사범대는 교직이수 과정 중 한달 간의 교육 실습 외에 실제 학교 현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교육학개론, 교육철학, 교육행정, 교육공학 같은 걸 배우는데 이런 걸로 2학점씩 따선 폭넓은 아이들의 현실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걸 고민하던 시점이 10년 전이니까 그사이 사회도, 아이들도, 학부모도 변했겠죠. 상황은 더 안 좋아졌을 테고요.
소영: 선생님들은 학생과 트러블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잘 못하세요.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거든요. ‘내가 그때 말을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학생과 논리적으로 싸우거나 대결하는 게 아닌, 학생을 교육하는 입장인데 내가 감당을 못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해야 할까요? 교사로서 자격 미달인 것 같다고 자책부터 하는 거죠. 정신과 상담에 가면 선생님들이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나 우울감을 쌓아놓는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로 ‘나도 그랬어’라고 얘기하게 되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봐요. 그런 분들 중에 특히 젊은 여교사가 많다는 점도 의미가 있죠.
민아: 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도 분명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초등의 경우 아까 효경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초년생일지라도 담임으로 발령받으면 독립된 공간에서 완벽한 전문가의 몫을 해내야 하는거 잖아요.
보현: 초등교사는 아이들하고 점심시간, 쉬는시간 상관없이 계속 함께 있어야 해서 그런 거죠?
효경: 그렇죠. 학생들 하교할 때까지 화장실도 웬만하면 참아요. 화장실에 갈 동안 교실 안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부재했던 교사에게 1차 책임이 있어서, 가능하면 참는 편인 것 같아요.
나빈: 처음 사건을 기사로 봤을 땐 ‘학교’라는 공간에 집중했어요.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건 강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단 거 아닐까요.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오래 했는데, 동네 아이들 열댓 명이 하교해서 돌아오면 봐주는 업무를 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과 지내면서 ‘선생님의 역할이 쉽지 않구나’ 느꼈는데, 어려움 중 하나가 흡연이었어요. 동네에서 밤에 흡연을 하려고 나가면 아이들이 있는 거죠. 전 선생님도 아니었고, 그저 마을공동체 한 일원으로서 아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건데도 ‘선생님이 그러시면 안 되죠’라는 말이 들려오더라고요. 이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어요.
#교권, 지금 필요한 건 ‘교육할 수 있는 권리’
나빈: 모임을 준비하면서 교권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어요. 교사의 ‘권위’라고 나오기도 하고 ‘권리’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둘은 굉장히 뜻이 다른 단어잖아요. 권위는 알아서 생기는 게 아닌, 다른 이들이 부여해 주는 위치잖아요.
설기: 기사 헤드라인에서 ‘교권 추락’이라 했을 땐 권위를 말하는 것 같고 ‘교권 침해’라 했을 땐 현장에서의 교육할 권리를 말하는 것 같아요.
소영: 저희 안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요. 예전엔 헌법에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가르칠 의무가 있는 교사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생기는 거라고 했거든요. 좁은 의미에서 교권은 그래서 권위주의적으로 해석되어 왔어요. 이젠 더 이상 이 해석이 맞진 않죠.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서 얘기해야 하는 교권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교육할 권리를 뜻한다고 봐요. 최근에서야 교사에게 노동자의 권리가 없다는 게 사회문제화된 거죠.
권위주의 시대의 교권은 교사도 학생도 바라지 않아요. 지금 필요한 건 교사들의 ‘교육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싶어요. 정해진 교육과정이 있고, 그 안에서 시험문제가 나오고 그에 따라 입시를 거쳐 학벌사회로 연결되는 구조가 공고하잖아요. 교사 개인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거죠. 그렇다 보니 ‘내가 교육과정을 짜서 학생을 교육하겠다’는 권리가 다 잘려져 있는 상태예요.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교권에 대한 개념이 아직 정리되진 않았어요.
#학교의 변화, 소비자주의 영향일까
설기: ‘악성민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지금의 주요 화두잖아요.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왜 사고가 발생했나’, ‘위험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정의를 미뤄뒀던 게 지금 막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여요.
소영: 맞아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맞았거나 성추행을 당한 경우 소송으로 번지면 (해결이) 오래 걸리거든요. 선생님에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어보면 학생에 대한 마음은 나중에 이야기를 하면서 풀린다고 해요. 아니, 오히려 학생에 대한 건 마음에 남아있지 않대요. 진행 과정에서 관리자의 태도, ‘나 몰라라’ 하는 교육청 때문에 힘든 거죠.
교육활동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리자들이 교사를 지원하고 케어하는 게 전혀 안 돼요. 관리자들도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 때문에 어떻게든 조용하게 잠재우려고 하는 측면이 강하거든요. 다른 노동현장과 마찬가지죠.
보현: 여기저기서 ‘학교가 변했다’하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변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학교 변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소비자주의’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소비자로 변모하면서 학교에 차별과 혐오, 소송, 폭력이 늘었다는 지적이 인상 깊었거든요.
인혜: 주변에 어린이집 교사가 많은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부 학부모가 어린이집에서 하던 민원을 초등학교로 가져간다더라고요.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들은 어리니 부모가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학부모도 어린이집 선생님과는 상담을 엄청 많이 하고, 선생님도 아이들 한 명 한 명 노는 걸 사진 찍어서 보내주는 식으로 관리를 하거든요. 그런 경험을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로 넘어가서도 비슷한 걸 요구하는 거죠. 실시간으로 연결이 가능한 스마트폰 영향도 있겠고요.
어린이집은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다 보니 서비스적 마인드가 좀 더 강하다고 해요. 돌봄 서비스에 대해 내가 돈을 낸 만큼의 요구를 하는거죠. 친구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들은 동네에서 아무것도 안 해요. 담배뿐만 아니라 데이트도 못 하죠. 남자랑 같이 있다는 것 자체로 엄마들 사이에선 굉장히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설기: 맞아요. 보육 서비스는 사적인 재화로 이용해 왔는데, 이젠 공교육인 초등학교에도 요구되는 상황인 거잖아요. 같은 취학연령일 때 과거와 지금 아이들의 발달 정도가 다를 수도 있을 거고요. 1960년대만 해도 한 반에 아이들이 100명씩 있으니 모두를 신경 쓸 수도 없고, 그걸 요구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름에도 학교에 그에 맞는 고민과 예산이 투입되고 있나 물었을 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힘들다고 봐요.
소영: 초등학교는 잘 모르겠는데, 고등학교는 악성 민원인의 다수가 교사예요. 교육청 장학사도 많고요. 중·고등학교의 민원은 초등학교랑 좀 다른데, 최근 내신 성적이 중요하게 됐잖아요. 생기부에 교사가 기술하는 내용이 중요해지면서 관련 소송이 많아졌어요. 시험문제나 수행평가에 서술형이 많아지면서 거기에 승복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민원을 넣고 끝까지 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런 경우 ‘학부모가 교사’일 때가 많아요. 교사부터도 학부모와 분리된 게 아니라 중첩돼 있는 거죠. 내선 번호가 뜨는데 교육청 번호이거나 하는 경우도 많고요.
민아: 전 학교도 교육부도 바뀌었다고 봐요. 사회가 바뀌었잖아요. 모임 오기 전에 교직에 오래 계시다가 퇴직한 분께 자문을 구했어요. 그분이 말하길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점, 교육부라는 이름에 산업·과학 같은 이름이 들어간 시점에 학교 공문도 바뀌었대요. ‘교육’이 ‘교육서비스’라고 표기돼 교사들한테 내려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직 노동자가 된 거죠. 요새 ‘돈 받으면 프로’라는 말에 다들 열광하는데, 적어도 이 영역에선 그 말을 적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소영: 한 반에 100명 학생을 넣어놓던 시절은 군사 문화였잖아요. 그에 따라 교사의 말이 힘을 갖고 권위주의적이란 인식이 있었고요. 교육개혁이 이뤄진다면 민주적인 학교 문화가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계급을 나누기 위한, 수월성 교육의 방향으로 온 것 같아요. 지금은 수능 중심의 고부담 입시 체제가 모든 영역을 설정하죠.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인데, 계급 중심의 사회다 보니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모든 걸 휘두르고, 그러면서 교육에 대한 신뢰나 전문성이 완전히 훼손된 상황이라고 봐요.
이젠 교사가 거절할 수 없는, 서비스직의 위치에 서 있어요. 학부모가 초등학교에서 어린이집에서 요구하던 것과 같은 걸 요구한다는 사례만 봐도 그래요. 교사가 거절해도 되거든요. ‘어머니, 초등학교에선 사진을 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는 게 지금 교사의 위치 같아요. 사실은 우리나라 모든 서비스직 노동자의 처지인 거죠.
[씨부려대구 시즌2] 교권을 바라보는 학교 안팎의 이야기 (2)로 이어집니다.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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