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0) 녹색당 도지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이자르강에서 강수욕을 즐긴 녹색의 시간
성장지상주의 정치, 생태적인 성찰과 전환의 녹색정치
영풍석포제련소 폐쇄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
독일녹색당이 집권중인 슈투트가르트
독일녹색당의 난감한 프로젝트 ‘슈투트가르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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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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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8)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다짐한 소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9) 재자연화 이자르강 생태탐방과 4대강 사업

▲이자르강에서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이자르강에서 뉴스타파 취재팀과 인터뷰 중인 기행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이자르강에서 강수욕을 즐긴 녹색의 시간

생명평화기행단은 뮌헨 도심을 벗어나 숙소 근처 시골 마을의 이자르강 구간으로 이동했다. 오랫동안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취재해온 최승호 PD를 포함한 뉴스타파 취재팀도 동행했다. 뮌헨 도심 이자르강에서도, 시골 마을 이자르강에서도 독일 시민들은 자유롭게 강수욕을 즐겼다. 한국 도심의 한강, 낙동강에서 강수욕을 하는 장면은 쉽게 보기 어렵다. 재자연화된 이자르강은 시민들은 물론 강아지와 오리떼의 놀이터였다. 이자르강의 생태 복원을 통해 이자르강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기행단도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이자르강에서 강수욕을 즐기며 물아일체가 되었다. 자연과 내가, 강과 내가 하나되어 경계가 사라진 시간은 녹색과 생태의 시간이다.

성장지상주의 정치, 생태적인 성찰과 전환의 녹색정치

정치철학으로서 생태주의는 산업화 이후 심화된 생태 파괴가 결국 우리 인간들의 실존을 위협한다고 인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한 기술적 해법을 넘어 인간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자연 그 자체, 뭇 생명 그 자체도 소중한 존재이지만, 자연과 뭇 생명은 인간들이 지구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다. 인간과 자연, 뭇생명들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며,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개별적 존재인 소아(小我)를 넘어 우주적 존재인 대아(大我)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태 파괴는 우리네 삶의 근간을 흔들면서, 우리 스스로를 위협하는 일이다.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녹색정치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 뭇생명들과의 관계를 계속 질문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인식하는 정치다.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주류 이데올로기인 ‘성장지상주의’는 상호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GDP(국내총생산)의 성장’은 최선의 국정과제이자, 국가 발전의 가장 중요한 전제다. 인간 바깥의 자연과 생명들은 성장을 위한 최우선 수단이 된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인간들도 물론이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된다.

녹색정치는 ‘성장지상주의’가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삶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중독에 맞서 순환과 연결을, 성찰과 전환을 말한다. 녹색정치는 성장이 우선시 되어야 복지와 평등도 가능하다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에도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으로 소수파인 녹색정치의 과제는 성장지상주의 모델이 아닌 녹색전환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상과 생활정치에서 구현하면서, 동시에 시민적 지지를 확장해야 하는 일이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이 얻은 득표율 0.2%만으론 녹색정치를 구현하긴 어려울 것이다. 뮌헨 시의회는 시민들과 함께 20년 동안 이자르강의 도심 구간을 재자연화했다. 0.2%가 2%가 되고 20%가 되는데 20년이면 가능할까? 20년 뒤면 기후위기 문제는 얼마나 심각해졌을까?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 녹색전환을 바라는 시민들이 더 많이 조직하고, 이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이 녹색당의 소명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우선은 강수욕에 집중하며 이자르강을 온몸으로 느꼈다.

▲영풍석포제련소 [사진=안동환경운동연합]

영풍석포제련소 폐쇄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

강수욕 중간 중간 뉴스타파 취재팀은 몇몇 기행단원을 인터뷰했다. 나는 낙동강 최상단의 아연제련소인 영풍석포제련소 문제를 이야기했다. 낙동강 최상단,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위치한 영풍석포제련소는 1970년 준공 및 가동을 시작했다. 영풍그룹은 현재 아연 생산 세계 1위 그룹으로 2023년 기준 재계서열 28위의 대기업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운영되면서 산업과 경제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낙동강 1300만 명의 식수원 최상단에 위치한 영풍석포제련소는 중금속 유출로 인해 각종 환경오염 문제를 초래했고, 주민들의 건강권을 위협했다.

특히, 수많은 환경관련법 위반으로 환경부와 지자체의 행정처분을 수차례 받았다. 그럼에도 문제가 반복되어 최근 몇 년 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의 단골손님이었다. 논란의 영풍석포제련소는 2022년 연말에 환경부의 조건부 통합환경허가를 받았고, 허가조건으로 시설, 공정개선 등 100여 개의 조건을 3년 이내 이행해야 한다.

그동안 영풍석포제련소의 존속과 폐쇄를 둘러싼 문제에서 경상북도를 비롯한 지역정치권은 미온적이었다. 나는 영풍석포제련소 폐쇄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 특히 지역 정치권의 역할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이철우 경북도지사조차 영풍석포제련소 이전 필요성을 밝힌바 있다.

물론 영풍석포제련소의 폐쇄는 간단한 일은 아니다. 폐쇄 이후 석포제련소 인근 지역 복구 작업을 포함해서 제련소 인근 주민들,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폐쇄 계획에 담아야 한다. 정치권의 역할은 어려운 논의를 열어가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이자르강 재자연화를 두고 20년을 토론하고 준비한 뮌헨처럼, 낙동강 최상단에 위치한 영풍석포제련소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폐쇄한다면 어떤 절차와 계획을 거쳐야 하는지, 영풍석포제련소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노동자들과 주민들을 위한 대책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논의를 정치권에서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가 사라진 공간일수록 사법적인 쟁점이 부각되고 제도권 바깥의 저항과 갈등이 심화된다. 정치권이 역할을 게을리 할수록 사회적 갈등 비용은 커질 뿐더러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이자르강 재자연화를 이끈 정치 과정을 낙동강 최상단의 영풍석포제련소 문제 해결에 참고해보자.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만 끄는 것은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이자르강에 충분히 강수욕을 마친 기행단은 바이에른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에 강수욕으로 체력을 소진한 기행단은 평소보다 일찍 뒤풀이를 마쳤고, 일찍 잠에 들었다. 바이에른 시골 마을의 일요일 밤이여, 안녕. 이자르강 일정을 마치면 어느덧 기행 일정 절반이 지난다. 귀국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했다.

독일녹색당이 집권중인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도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의 위치 [출처=TUBS,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다음날 기행단은 녹색당 지방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주도 슈투트가르트로 향했다. 녹색당 도지사(주총리)가 집권하고 있는 지역이라니 감회가 남달랐다. 2011년 3월 27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불과 16일 전에 일본 후쿠시마 참사가 발생했고, 전국적인 반핵운동의 열풍 속에서 선거는 진행되었다. 선거 결과 58년째 장기집권중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은 39%를 얻었고, 녹색당은 24%, 사회민주당(사민당)은 23%를 얻었다.

녹색당과 사민당 연립 정권은 과반 이상 의석확보로 58년 만에 기민련 집권을 교체했다. 독일녹색당은 창당 최초로 주총리를 배출했다. 2011년 독일녹색당 최초로 주정부 수반이 된 빈프리트 크레치만은 무려 3연임에 성공했고 2023년 10월, 현재도 주총리다. 보수정당 기민련의 아성인 지역에서 녹색당은 12년간 집권 중이다.

▲Winfried Kretschmann [사진=flick.com @Bündnis 90/Die Grünen Baden-Württemberg]

정치는 생물과 같다. 지역 패권 정당도 영원불멸하지는 않다. 과거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미국의 남부 지역 주는 반공화당·친민주당 성향이었으나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 민주당 행정부의 뉴딜시대를 겪고, 1960년대 민권운동의 확산 이후 공화당 지지 기반으로 변한다. 한국의 충청 지역은 1990년대 중후반 자유민주연합, 2000년대 후반 자유선진당 등의 지역 기반 정당에 힘을 실었지만, 현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1995년 민선 도지사 선거 부활 이후 28년째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경북도지사가 임기는 4년이 아니라 12년이란 말처럼, 1995년 당선된 이의근 전 지사도 3선, 2006년 당선된 김관용 전 지사도 3선을 채웠다. 2018년에 당선된 이철우 지사는 재선이다.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은 3선 연임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다만 3번 연달아 하지 않고, 중간에 1번 쉬면 일명 징검다리 4선은 가능하다. 2011년, 서울시장 사퇴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오세훈 시장은 4선이다.)

지금부터 30년 후인 2053년이 되면 기민련이 바덴주에서 집권한 시간처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경북에서 집권한지 58년째가 된다. 날로 심화되는 기후위기 시대, 바덴 주보다 경상북도가 더 빨리 정치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53년 이전에 녹색당 경북도정이 출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독일녹색당의 난감한 프로젝트 ‘슈투트가르트 21’

▲슈투트가르트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에선 1980년대부터 뜨거운 쟁점이었던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와 단체 간담회 일정이 있다. 이어서 바덴뷔르템부르크 녹색당 주의원 및 당직자들과의 간담회도 잡혔다.

‘슈투트가르트 21’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포함한 철도 및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1994년에 공식 발표되었고, 2010년에 건설 작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슈투트가르트 21’에 유서 깊은 중앙역 역사를 철거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앙역사의 문화재로서의 가치, 역사적 의미, 개발과 보존의 문제, 막대한 비용 문제, 도시 계획에 대한 관점 등 수많은 쟁점이 있었고, 반대하는 시민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녹색당 또한 ‘슈투트가르트 21’ 반대에 앞장섰다.

2010년대 전후로 슈투트가르트와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녹색당 소속의 시장과 주총리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반대 운동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녹색당이 집권한 이후 주민 투표 결과 근소한 차이로 ‘슈투트가르트 21’ 찬성이 앞섰다. 주민투표 당시에 제공된 정보가 정확했는지 등 주민투표 자체도 논란이 있었지만, 여하튼 집권당인 녹색당은 주민 투표 결과에 승복했다.

2023년 현재, 공사는 진행 중이고 여전히 반대 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반대하는 시민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슈투트가르트 21’을 반대했던 녹색당은 집권 이후 주민 투표에 지는 바람에 공사를 집행하는 주체가 되었다. 자신들이 괴거에 반대했던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집권 여당의 숙명이리라.

기행단은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반대 단체와 간담회를 한다. 한편 참으로 난감한(?) 바덴뷔르템베르크 녹색당과도 만난다. 미래에 한국녹색당이 국회에 진출하고, 지방정부를 운영할 때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을 머나먼 독일에서 직접 마주하게 된다. 흥미로운 1박 2일간의 슈투트가르트 일정을 기대하며 숙소 체크인을 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