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1月호] ‘100인 클럽’ 침묵으로 외치다!–왜 이인성 미술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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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대구미술관에 침묵의 오렌지빛 스카프가 휘날렸다. ‘LD 100인클럽’이라는 대구의 행동주의 클럽이 이인성 미술상 시상식 현장에 나타나 침묵의 퍼포먼스를 펼쳐보였다. 스카프에는 ‘왜 이인성 미술상인가? 민족주의 미술가 이쾌대는? 항일투쟁 미술가 이상춘은? 포럼을 통해 미술상을 다시 제정하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십 명의 클럽 멤버들은 일제히 시상식을 등지고 서서 오렌지빛 스카프를 높이 펼쳐 드는 침묵의 퍼포먼스를 실연했던 것이다. 대구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 이인성기념사업회 관계자를 포함해 지역의 여러 행정가의 긴 연설 내내 스카프를 펼쳐 보인 뒤 이인성 유가족 이채원 씨의 연설 도중 일렬로 시상식장을 빠져나갔다.

이 퍼포먼스는 권위주의, 환경파괴, 다양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100인 클럽’이 주도한 일종의 미술행동이다. 우리에게 낯선 미술행동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다. 행동으로서의 미술(art as action)을 의미하는 미술 행동주의는 전통적인 미술의 개념이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난 실천적 미술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다양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리게끔 한다. 이 과정에서 미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으며, 이들의 정치적 개입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 혹은 참여 민주주의를 확대하기도 한다.

‘LD 100인 클럽’이 문제 제기한 ‘대구광역시 이인성미술상’은 1999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23회를 맞았다. 그 주인공인 이인성은 일제 식민주의에 순응하고, 그 체제 속에서 안락하고 안온한 삶을 유지하며 미술가로 이름을 떨쳤다. 대구시는 그런 이인성을 ‘천재 화가’라고 칭하며 아무런 미술사적 검증 없이 이인성미술상을 제정 및 시상하고 있다. 그간 ‘이인성미술상’의 수상자로는 이강소(2002), 김구림(2006), 이건용(2007), 김차섭(2008) 등의 실험미술가들과 안창홍(2009), 최민화(2017), 강요배(2021), 윤석남(2022) 등의 민중미술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그들의 실험적, 저항적 예술과는 배치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이인성 미술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상한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인성미술상을 제정한 이유 중 하나로 ‘한국미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을 꼽았지만 일관된 높은 평가기준 없이 시상하는 제도는 미술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인성과 예술관이 전혀 다른 미술가들이 기쁘게 상을 받는 것을 보면 그렇다. 대구시는 위대한 미술가가 없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일제강점기의 모순을 외면한 모더니스트 이인성을 제외하고도 민족주의 미술을 지향한 이쾌대와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려 했던 전위미술가 이상춘이 있다.

민족주의 미술가 이쾌대는 일제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의 아카데미즘 미술, 즉 식민지 미술을 거부하며 표현주의와 사실주의 경향의 전람회에 꾸준히 출품했다. 그는 스스로 ‘인민 작가’로서 자기 자신을 칭하며 향토적 민족주의 미술을 지향했다. 미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그의 뜻은 해방 후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미국 독도폭격 등을 형상화한 <군상> 연작에 특히 잘 나타나 있다. 전위미술가 이상춘은 동요와 시가 등을 포함한 융복합적인 전시 ‘영과회’를 주도한 인물로, 일제관전의 조선미술전람회뿐 아니라 전통 미술을 거부하고 민족 독립과 노동자 및 농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잡지 발행, 극평, 연극 무대장치, 교육 신문 삽화 등의 일상적 매체를 통해 미술이 식민 현실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으며 미술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카프(KAPF) 미술부 일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단체를 주도하다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하면서 현재 작품과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미술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이인성보다는 이쾌대 혹은 이상춘이 높이 평가할만한 만큼 대구시는 이들을 최소한 동등한 비중을 두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해방 이후 역사학자들은 식민 지배에 충성하거나 순응해 온 인물은 그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평가 절하해 왔다. 그런데 대구시는 왜 아무런 미술사적 검증 없이 시비와 국비를 투입해 한 인물을 이렇게 우상화하는가? 대구시는 정당한 평가 없이 ‘이인성 밀어주기’를 계속한다면 이쾌대나 이상춘 같이 진정으로 위대한 근대미술가를 기록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대구시는 다양한 근대 미술가를 발굴하고 전시한 뒤, 관련 전문가와 시민들을 초대하는 공개포럼 같은 절차를 거쳐 우리 모두가 기념할 만한 역사적 교훈과 미술사적 업적을 남긴 근대미술가를 선정해 그의 이름을 딴 미술상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_표출지대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