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1月호] 독립영화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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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대구 동성로 인근에는 유독 영화관이 많다. 다수의 상영관이 한 건물에 모여 있는 극장, ‘멀티플렉스’ 영화관만 5곳이 있다. 롯데시네마 두 곳과 CGV 세 곳이다. 지난 10월 평일 오후 낮 시간대에 멀티플렉스 영화관 5곳을 찾았다. 영화관은 코로나19 유행으로 매출이 직격타를 맞았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한산했다.

팝콘 통을 들고 수다를 떠는 교복 입은 학생부터 안마의자에 앉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에게 물었다. “무슨 영화 보러 오셨어요? 평소에 어떤 영화 주로 보시나요?” 한결같이 답은 ‘유명한 영화’, 즉 흔히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상업영화’였다. 이어진 질문, “혹시 독립영화에는 관심 없으신가요?”에 돌아온 답은 “그게 뭐예요?” 혹은 “관심 없어요”였다.

‘독립영화’. 1990년 한국독립영화협의회가 결성되며 공식적으로 쓰이게 된 명칭으로, 일반 상업영화와는 달리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작가 정신에 충실한 작품을 추구하여 만들어지는 영화를 뜻한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와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국내에서 200만 관객을 넘은 유명한 독립영화의 예시다.

<벌새>나 <윤희에게>, <메기> 같은 입소문을 탄 여성 영화들도 독립영화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립영화는 관객 수 1만 명을 넘으면 대흥행이라 칭해질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이 어렵다. 흥행이 어렵지만 제작비는 많이 들어 대부분 영화제작자 개인이 ‘피칭(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를 드러내고, 투자 혹은 제작 지원을 받는 일)’을 통해 영화진흥위원회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영화인들 사이에선 “관객으로부터만 독립된” 독립영화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정부 감액 기조의 영향으로 내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역영화 활성화 사업’이 전액 삭감됐다는 점이다. 지역의 독립영화 생태계는 이 지원금으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삭감된 내역은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8억원과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4억원 등이다. 이외에도 영진위의 영화제 육성 사업 예산이 절반으로 삭감됐고, 지원 영화제 수도 줄었다. 영진위에 ‘방만 경영’ 딱지를 붙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의 압박 탓이다.

대구 유일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의 홍보팀장 노혜진 씨는 “당장 내년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진위의 지역 영화 예산 삭감으로 지역에서 창작하던 영화인들이 내년부터 활동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노혜진 씨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지역의 창작자들을 키우는 게 영화계 전체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고, 그렇게 뿌리가 단단해져야 이들이 상업영화로 넘어가든 OTT로 가든 확장성이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노혜진 씨는 “현재의 지역 영화 활성화 사업 전액 삭감과 같은 기조는 지역 영화 생태계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역 독립영화를 향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독립영화 생태계 내부에도 지금의 예산 삭감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영화비평지 마테리알의 편집인 금동현 씨는 “대안 없는 예산 삭감이라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금을 계기로 현재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 씨는 “코로나 유행 시기에 영화관이 전염이 쉬운 공간으로 표상되면서 그 자리를 캠핑이나 클라이밍 등 새로운 취미들이 채워버렸다”며 “영화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배적 문화의 위치를 잃었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금 씨는 “이런 상황에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독립영화계가 예산 삭감 앞에서야 다 죽는다고 성명서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독립영화가 ‘K무비’ 산업의 하부구조, 커리어 패스가 되어줄 소위 ‘업계’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발언(”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으로, 그간 중성화됐던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현재의 독립영화가 90년대 등장 당시 가졌던 변혁적인 가치에 충실한지, 공적 예산이 투여되는 것에 시민적 정당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가 시민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적이고 대안적인 문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장애인, 생태 등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큐레이팅 된 지역 영화제가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대구에서 ‘제12회 대구여성영화제’와 배리어프리 영화제인 ‘제3회 장벽파괴영화제’, 동물권과 생태를 주제로 한 ‘제3회 공존을꿈꾸는모두의영화제’가 열렸다. 그중 대구여성영화제는 영화를 매개로 지역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영화제다.

지역 여성단체 ‘대구풀뿌리 여성연대’에서 11년간 운영을 해오다 재정 악화 등으로 영화제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계명대학교 여성학 연구소가 이어받으며 재개됐다. 대구여성영화제의 개막식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 싶어 하는 행사들이다 어려운 것 같다”며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랑해 주시고 즐겨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면 그렇게 모인 횟수만큼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제12회 대구여성영화제의 상영작 <점핑클럽>의 채지희 감독은 대구시가 주최하고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주관하는 다양성영화지원사업으로 데뷔작을 찍었다. 그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영화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많은 이들의 ‘처음’이 사라질 것”이라며 “나처럼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거나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이 줄 것”이라 말했다. 채 감독은 상업영화에서 의제로 나오기 힘든 ‘의미 있는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거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독립영화라는 입장이다.

그는 “여성 영화제나 독립 영화제에서 여성 영화인이 만든 영화를 많이 봤다”며 “그런 영화들을 보고 공부하며 여성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많겠다는 확신이 생길 수 있었다”고 했다. 독립영화가 이러한 담론적 요소들을 잘 살려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민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채 감독은 “지역의 독립영화 생태계가 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나리오를 궁금해하는 식으로 흘러간다면 좋을 것”이라며 “젊고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당겨 이들이 좋은 영화를 즐기고 취향을 넓힐 수 있다면 영화의 다양성과 개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금동현 씨는 “독립영화 제작비나 성적을 앞에 들이밀어도 시민들이 지원금 공적 출연에 찬성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영화를 자기 삶의 일부, 문화의 일부가 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 씨는 그 방안의 일부로 ‘독립영화’라는 단어 대신 일본에서 상업영화가 아닌 영화를 지칭하는 ‘자주自主영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제작자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영화와 영화제를 만들자는 의미”라며 “외부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조금씩 관객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변방’에서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끌어오는 문화다. 그는 “이것이 축적되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이 문화가 시민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토대 위에 국가 세금이 튼튼하게 투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 씨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취향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서두르려고 하면 그르칠 것”이라 조언했다.

글_표출지대 김지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