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1月호] 위기의 농촌에 뿌리를 뻗은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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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빼빼로보다는 ‘가래떡을 먹으며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농업인의 수는 점차 줄어가고, 농촌은 지방 소멸 및 기후 위기와 함께 존폐의 기로를 겪고 있다. 의식주 중 ‘식’을 지탱해 주는 농업이 위협받고 있지만, 대형마트에서 채소를 손쉽게 살 수 있는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청년 농업인 최소윤(22) 씨를 만나서 들어 본 농촌의 현실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윤 씨는 귀농한지 3년 차의 대학생으로, 평일에는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주말에는 농촌에서 농촌 생활을 하고 있다. 소윤 씨는 곧 대학을 졸업하고 완전히 농촌에 정착할 생각에 들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청년을 반기지만은 않는 것 같다. 일평생 일궈온 자신들의 터전을 외부인이 침범한다는 느낌 때문일까. 농촌을 살리고 싶은 청년, 소윤 씨가 말하는 ‘이상하고 행복한’ 농촌 생활에 대해 들어보자.

도시와 농촌의 삶을 동시에 살기 때문에 농촌 사람과 도시 사람 사이 정체화에 대한 혼동이 있을 것 같아요. 소윤 씨가 느끼는 두 공간의 차이점은 뭔가요?

엄청난 혼동이 있어요. 금요일 수업이 12시에 마치면 학교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시외버스 타고 1시간 10분, 다시 마을버스로 1시간 가야지 제가 사는 마을에 도착해요. 가는 동안 마음을 비워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도시 생활은 잊고 농촌의 마인드로 돌아가자’ 해요. 그러고 마을에 도착하면 뭔가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아요. 너무 달라요. 큰 빌딩들이 없고 넓고 광활하니 마음이 탁 트여요. 이러다 일요일 밤이 되면 다시 도시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져요.

도시에 살 때는 대형마트 가면 990원짜리 포장 채소를 사 먹었어요. 보통 질이 좋지 않고 신선도도 떨어지는데도 원래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사 먹었어요. 근데 귀농하고 나니까 맛뿐만 아니라 그냥 작물 자체가 너무 달라요. 그리고 대형 마트에는 모든 작물이 항상 있으니까 기후 위기를 체감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농촌에 가 보니까 그것들이 이상해 보이더라고요. 주로 비닐하우스로 재배하는 마트 납품 작물이랑은 다르게 농촌에서는 노지 재배를 많이 해요. 노지 재배는 자연환경에 예민한데, 이웃 할머니들이 ‘올해는 이상하다? 아직 이 농작물이 나오나?’ 하고 말씀하세요. 제철이 아닌 상품은 가격이 보통 내려가기 마련인데, 제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으니까, 가격도 요동쳐요. 이건 비닐하우스의 발달 때문이 아니라 기후 위기 때문이에요.

최근 사과 한 알이 만 원까지 치솟았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어요. 기후 위기와도 연결되는 걸까요?

올해 윗지방이 집중호우 때문에 흉년이었어요. 야채며 구황작물이며 과수며 다 말아먹었단 말이죠. 그래서 윗지방은 농산물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과값도 폭등한 건데, 제가 사는 남부 지방은 집중호우 피해가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사과값이 같이 올랐어요. 시세를 서울에서 결정해서 그래요. 서울에서 결정해서 그게 전국으로 내려오는 거죠. 작년과 재작년 2년 동안은 사과값이 폭락했었어요. 사과 농사를 많이 짓는 여기 남부 지역에 화상병이 돌고, 물난리가 났는데도요. 화상병은 뿌리에서 전염되는 병이라서 사과나무를 다 캐야 했어요. 나무를 솎아내면 사과 수량이 줄어서 값이 올랐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폭락했다니 이상하잖아요.

소비자들은 사과밭을 보는 게 아니라 사과만 보잖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은 사과가 어떻게 마트까지 가는지 전혀 몰라요. 농부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이상해진 날씨가 사과 농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보고 있어요. 이 영향은 사과의 맛이나 품질까지도 해칠 수 있거든요. 기후 위기 때문에 상품성 있는 과수가 나오기 힘들어졌어요. 농부들은 상품성이 없으니 사과값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죠. 가격을 정하는 쪽에서는 기후 위기로 인한 상품성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추수를 할 때 쓰는 농기계가 올해 유난히 고장이 많이 났어요. 열매가 잘 여물지 않거나 잘 마르지 않으면 열매가 기계에 걸려서 고장 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도 기후 변화 탓이 큰 것 같아요. 추수 시기에 날씨가 계속 따뜻했어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작물이 말라야 하거든요. 그런데 10월이 넘어가는데도 논이 촉촉했어요.

원래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던 열대 식물이 잘 자라는 거랑 비슷한 결이군요.

지금의 이상한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어요. 이제는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것을 방어적인 태도로 지켜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제철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 아닐까 해요.

물가가 안정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농촌의 직접적인 도움이 될까요? 쌀 같은 경우에도 국가에서 매입을 해 준다고 하는데, 그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들었어요.

국가에서 구매해 주는 건 한계가 있고, 쌀을 소비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밀 수입의 영향도 있어요. 밀값은 전쟁 영향으로 계속 치솟고 있어요. 이상하게 사람들은 밀값이 오르면 밀을 안 사 먹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오르기 전에 많이 사 먹어야지’ 하더라고요. 국내산 쌀 소비가 더뎌지면 결국 국내 쌀농사가 줄어들고 수입산에 의존해야 하는데, 전쟁 영향 받은 것을 보면 알겠지만, 수입산에 의존하는 형태가 되면 장기적으로 위험해져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비 패턴도 달라지잖아요. 음식에 그렇게 큰 투자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쌀을 구매할 때 국내산은 비싸고 수입산은 싸다고 말하는데, 그것보다는 국내산 쌀은 검증된 쌀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수입산 쌀은 들어온 경로나 재배된 상세 경위를 다 알 수 없거든요. 수입산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모르니까 싼 건데, 싼 걸 찾다 보면 정작 국내산은 소비가 안 되는 거죠. 그럼, 국내산은 남게 되는 거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이나 제도나 변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안적인 방법이나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실천이 있을까요?

상품성 없는 못난이 농산물을 농가에서 바로 집으로 배송해 주는 앱이나, 그 마을에서 나는 특산물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배송해 주는 사이트가 있어요. 이런 것처럼 지역의 특산물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들이 농촌을 막연하게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농산물을 배송할 때 농촌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함께 보내 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누구네 할머니 집에 강아지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더라’ 하면서 강아지 사진을 보내 주는 거예요. 별거 아닌데 재미있잖아요. 이런 플랫폼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자체나 국가가 플랫폼 관리자가 되면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는 있겠죠. 읍면동마다 행정복지센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편차가 클 것 같아요. 공무원들은 몇 년만 있다가 다른 곳에 가는 사람들이고, 농촌 센터는 그냥 쉬었다 가는 곳이거든요. 센터가 잘 돌아가는 지역이면 좋은데, 아닌 지역도 있을 수가 있으니까. 정부가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기후 위기와 전쟁 때문에 프랜차이즈 가게의 빵 수급이 어려워지고 토마토를 구할 수 없는 일도 생기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 농촌을 등한시하지 않고 살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도시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해요. 한 달 살기처럼 잠깐 살아 보면서 우리 마을을 직접 느끼게 해 주는 거죠.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팀을 꾸려서 플리마켓도 하고 복합 문화 공간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 일들을 추진하려고 할 때, 실질적인 일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안 들어 주셔요. 어리다고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에요. 모두 함께하면 참 좋겠지만 저는 혼자라도, 우리 팀이라도 힘을 합쳐서 마을에 행사와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농촌은 자립성이 좀 필요해요. 현재 농촌은 농산물 수익보다 정부의 지원 사업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남기는 구조예요. 정부 지원 사업은 우리 농산물을 살리겠다는 취지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농부들은 점점 자립심이 없어지고, 정부 지원 사업 없이는 농사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역 축제에는 외부 사람들의 유입이 필요한데,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만을 위해서 축제를 열어요. 마을 사람들은 돈을 안 쓰려고 하고, 외부인들을 배척해요. 이걸 개선하지 않으면 무한 적자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죠. 외부인들이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솔직히 이런 거 물어봐 줘서 좋아요. 아무도 저한테 의견을 묻지 않거든요.

글_표출지대 김지민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지역명은 익명으로 처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