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해결 국제세미나··‘인권 법원’, ‘샌프란시스코 조약 극복’

22:11
Voiced by Amazon Polly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위상에 비해 매우 부끄러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지난 9일 확정됐다. 지난달 우리 법원(서울고법 민사33부)은 “국제관습법상 일본 정부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1심 재판부가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이유(주권면제)로 사건을 각하 처리한 것을 뒤집은 결과지만, 실제로 배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가 상고를 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지만, 일본 정부의 상고 포기는 판결을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시’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법원 확정판결 이후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국제 세미나에선 이러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고,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이 모색됐다. 세미나는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동북아평화센터가 공동 주최했다.

세미나에는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교수 등이 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정치·외교·법률적 측면에서 살폈다.

▲16일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법원 확정 판결 이후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아시아 인권 법원 만들어야

백태웅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와 태평양 전쟁기의 강제 실종, 일제하 반인도 범죄 피해와 1965년 한일청구협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한국고등법원 판결의 국제적 의미’를 주제로 발표에 나서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이나 비정부기구가 해당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인권 법원을 아시아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교수는 “오늘날 국제법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반인도 범죄나 전쟁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은 진실규명, 배상과 보상, 재발 방지 등의 조치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라며 “가해자는 합당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인권침해에 대한 피해 배상과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을 모르는 무지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아시아 각국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인권 보호에 기여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군국주의를 강화하는 대신 전쟁범죄와 인권침해의 상처부터 치유해야 한다. 일본은 인권을 진정 문제 해결의 중심에 놓고 새로운 방식으로 과거의 문제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넘어 시스템 모색

김영호 이사장,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알렉시스 더든 교수 등은 일본의 전쟁 범죄에 일종의 면죄부가 부여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재평가하면서 샌프란시스코조약 시스템을 대체할 시스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 주요 기념일을 통해 본 주권에 관한 질문’을 주제로 나서 “1945년 이후 동북아시아 지형 구도는 공산주의를 축출하고 팍스 아메리카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기인한다”며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적대심과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절차가 아닌 미국 이익을 위해 벌인 영원한 전쟁의 법적 뒷받침”이라고 평했다.

김영호 이사장은 ‘한일지식인 1,000인 공동선언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 평화회의 종결까지’를 주제로 나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조약 전문에 UN 헌장 존중과 세계인권선언 존중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식민지주의 범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어 스스로 밝힌 UN 원칙 존중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나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처음부터 불완전한 조약”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951년 9월 8일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6개국, 인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5개국 등이 서명했지만 소련은 서명을 거부했고, 중국과 중화민국, 남한과 북한은 초대도 받지 못했다”고 짚었다.

와다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일본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면서 “납북문제로 인한 현재의 대화 단절이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납치된 일본인이 모두 생존하고 있으며 이들을 모두 일본에 돌려보내어야 한다는 소위 ‘아베 원칙’을 공식적으로 폐지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석학들과 이용수, 박필근 할머니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편, 세미나에는 소송에 직접 참여한 이용수(96) 할머니와 박필근(96) 할머니가 참석했고,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건 함께 소송을 진행한 다른 할머니들”이라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이젠 견디기가 힘들다. 일본과 한국의 청년, 청소년들이 교류하며 위안부 역사를 길이길이 공부해야 한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 정부는 가만 있지 않냐. 외교부가 나서든 해야지 않냐.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상원, 김보현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