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된 대구 평리별관 무료급식소 오늘 마지막 급식, “쪼매 더···”

1994년부터 운영된 무료급식소
대구시 민간위탁 지원 올해까지만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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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다는 이야길 듣고 눈물이 날라캤다. 여기 건물 당장 부술 것도 아니면 쪼매라도 더 하면 안 되나”

21일 오전 11시 30분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 1층 무료급식소 앞에 노인 수십 명이 줄 지어 섰다. 줄 사이에 있던 이옥희(87, 평리3동) 씨는 급식소가 문을 닫는 걸 아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 씨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속상하고, 아쉽다. 우리 같은 할매들은 갈 데가 없다”고 토로했다. (관련기사=29년 운영 평리별관 무료급식소 올해까지만···대구시, 민간위탁 종료 결정(‘23.12.22))

이 씨 뒤에 서 있던 박경자(79, 평리6동) 씨도 고개를 함께 끄덕였다. 박 씨는 “문을 안 닫을 방법이 없냐”며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허리가 안 좋아서 여기 위에 있는 물리치료실도 매일 오는데, 없어지면 어쩌냐”고 아쉬움을 표했다.

▲ 21일 오전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 1층 무료급식소 앞에 수십 명의 노인들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마지막 식사’를 앞두고 노인들은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이곳 무료급식소와 물리치료실은 26일 운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1994년부터 29년 간 사회복지법인 보림에서 운영해온 무료급식소는 대구시 민간위탁사업으로 연간 7,000만 원을 지원받고, 자부담과 후원 등을 더해 운영해왔다. 물치료실은 1993년부터 운영돼 올해로 30년차지만, 대구시가 민간위탁을 종료하기로 함에 따라 문을 닫게 됐다.

무료급식소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주 5일 운영하면서 하루 약 300명 가까운 노인들이 찾았고, 코로나 팬더믹 시기 주 2회(화·목) 대체식 등을 제공해 오며 취약계층에 손을 내밀었다. 팬더믹 이후에는 다시 급식으로 바꿔 150여 명의 노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해왔다.

식사를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인근 평리동에 사는 70~80대 노인이다. 이들은 대체로 급식소가 사라지는 것에 서운함을 내비치면서, 계속 운영할 방법이 없는지 묻기도 했다.

평리동으로 이사 온 이후 17년 간 밥을 먹으러 왔다는 윤진란(84, 평리3동) 씨는 “비산동에서 이 동네로 이사 온 이후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기에 밥을 먹으러 다녔다”며 “우리 나이가 되면 안 아픈 데가 없다. 매일 물리치료실도 오고, 할매들도 보고 했는데 여기 없어지면 어떡하나. 할매들 생각이 다 비슷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강순자(80, 평리6동) 씨도 “문을 닫지 않을 방법이 없겠냐. 다른 데로 장소를 옮겨서라도 계속하면 안 되냐”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멀리 가기도 어렵고, 여기 아니면 다른 데서 밥 먹으러 가긴 힘들다. 없어지면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 1층 무료급식소 문에 인근 무료급식소를 안내하는 게시글이 부착돼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80세 남성은 최근 몇 년 동안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날은 거의 이곳으로 밥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 재정이 그런 걸 어쩌겠냐. 내 마음대로 붙잡아 놓을 수 없지 않냐. 이제 집에서 먹거나, 복지관에 1,300원 주고 먹으러 가야지 어쩌겠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기도 했다.

복도 한편에는 급식소 운영 종료 후 기능을 대신할 만한 인근 무료급식소와 노인복지관 경로식당(유료)를 알리는 게시물이 부착됐다. 게시물에는 인근 무료 급식소 5개소 ▲양무리급식소(문화로 63길 19-1, 주 1회: 토) ▲천사급식소(국채보상로 365, 주2회: 화, 목) ▲청솔섬김의집(서구 옥산로 6길 9, 주3회 : 화수목, 서구 주민 중 60세 이상 기초생활보장수급자만 무료) ▲홍익경로급식소(서구 통학로20길 6, 주2회: 수, 금) ▲엄마의집 급식소(서대구로3길 29-4, 주2회: 화, 목) 등의 위치와 이용일 등이 안내됐다.

밥을 먹고 나오던 이들은 종종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가늠했다. 한 여성 노인은 게시물을 한참 쳐다보면서, “그래서 어···어디로 가야하노”라고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묻기도 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복도와 계단을 지나 별관 입구까지 줄어들듯 말듯 계속 이어진 줄은 배식이 끝나는 12시 30분까지 계속 이어졌다. 가득 찬 급식소는 약 1시간, 배식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는 무료급식소에는 하나, 둘 빈 자리가 늘어갔다.

홍윤미 종합복지회관 관리사무소장은 “종료를 앞두고 지난 10월에 이용자 현황을 살펴봤다. 대부분 그냥 집에서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고, 무료급식소 오시는 건 다른 분들과 얼굴보고 이런 재미로 오시는 것 같더라”며 “(급식소가 없어져서)식사가 진짜 어렵거나 하시는 분들은 따로 현황을 파악해서 어르신복지과에서 연계해서 인근 노인복지관에서 무료로 드실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21일 오전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 1층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어르신들. 약 1시간의 배식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무료급식소 내부에는 하나 둘 빈 자리가 늘어갔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