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2月호] 각자도생 한국…발달장애인과 더불어 살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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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대구에서 35개월 된 발달장애(법적으로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통칭해 부르는 말) 자녀를 살해한 후 부 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녀가 서울의 병원에서 자폐 진단을 받은 당일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를 ‘동반자살’로 명명하기도 하지만, 자녀의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살해 후 자살’이라 칭해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가 부모만의 잘못이고 책임이라 할 수는 없다.

사건 발생 하루 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발달장애인 지원정책과 개선방향’ 보고서에는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에서 가족 돌봄이 높은 비율을 차지해 매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비극적 사건이 반복된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20일, 서울 은평구에서 8살 중증장애인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부모가 체포됐다.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에 따르면 올해 언론에 보도된 발달장애인 관련 유사한 사망사건만 8건 이상이다.

이러한 발달장애인 관련 참사를 막고 지원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11월 23일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장애인부모회의 사전 결의 대회와 오체투지가 벌어졌다. 11월 15일 제주를 시작으로 12월 7일 서울에까지 각 지역에서 이어진 오체투지의 일부다.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는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자립생활권, 통합교육권, 노동권 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당사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고통을 국가가 나눠 들어줘야 함을 피력했다.

현재는 필수적 정보 지원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성서림아동발달센터 장수정 원장은 대구에서 일어난 작년의 사건 이후 제도적으로 바뀐 점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여전히 가족들에겐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기 위한 양질의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장 원장은 “어떤 어머니들은 감기를 앓고 나면 완치가 되는 것처럼 내 아이도 완치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계신다”며 “아이들이 일생에 걸쳐서 꾸준히 치료해 나가야 된다는 걸 아이가 다 크고 나서야 아시는 것”이라 말했다. 장 원장은 “어머니들께 여쭤보면 병원에서는 무슨 치료를 해라 같은 교과서적인 부분 빼고는 (발달장애에 관해) 가르쳐주는 게 없다고 말한다”며 “대신 맘카페로 정보를 다 얻었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실제로 대구 내 자폐 진단을 하는 5곳의 대학병원에 문의해본 결과, 진단 이후 어떻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관련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등 밟아야 할 절차를 공식적으로 안내해주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장애 진단을 내려주고 인지치료, 감각통합치료 등 받아야 할 치료명을 알려줄 뿐이다. 공적 지원과 치료 방안을 찾는 것은 오로지 부모들의 몫이다.

장수정 원장은 “치료도 유행을 탄다”며 “특히 영유아 어머니들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으니 미국 치료 자격증 같은 광고에 많이 현혹되어 큰돈을 들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발성 수업이나 치료보다는 믿을만한 한 기관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며 치료하는 것이 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박정선 씨는 ‘원스톱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금의 장애인 복지는 당사자가 직접 정보를 알아보고 신청해서 혜택을 받는 ‘신청주의’이다. 정선 씨는 행복림 같은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회비가 있는 대구시 장애인 학부모회, 발달장애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정보를 얻는다. ‘직접’ 돈과 노력을 들여 연결해 놓아야 소식이 들려오는 형태다. 보호자의 생계가 어렵거나 본인도 장애 당사자인 경우 이런 연결이 어렵다.

따라서 ‘원스톱’으로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이들을 복지체계에 등록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77년 발달장애인 지원법(랜터만법)을 제정해 원스톱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 비영리 민간 단체 지역센터 21곳이 예산을 받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지원을 담당한다. 아이가 3살이 지나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 장애인 1명당 담당 코디네이터를 배정해 3년에 한 번씩 진단, 치료, 상담 등 개인별 프로그램 계획을 세워주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합된 환경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주거생활에 대한 지원 규정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발달장애인의 88.2%가 56세까지 평생 부모의 돌봄을 받고 생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활동지원서비스는 급여 한도가 있어 평균 하루 4시간을 이용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부모나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학령기 이후에도 꾸준한 재활, 직업교육, 취미 활동 등이 가능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는 24곳이 있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각 시도당 한두 곳에 불과하며, 정원이 30명 정도로 소수 대상이라 경쟁이 치열하고 최대 5년 동안만 다닐 수 있다는 제한점이 있다.

대구에는 만 명 정도의 발달장애인이 있지만 평생교육센터는 한 곳이고, 30명 정원에 3년만 다닐 수 있다. 부모회가 발달장애인들이 시설로 들어가지 않고 지역에서 살기 위한 주거 서비스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구시는 장기검토과제로 넘긴 상태다.

발달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전가되는 돌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통합사회 구축이 필요하다. 장애인지역공동체의 조민제 사무처장은 “예전보다는 공공 영역에서 상담이나 지원 계획을 수립하는 각각의 기관들이 설립된 편이지만, 여전히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공적 기관들은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발달장애인법에도 주거 지원 등의 규정이 없다. 따라서 발달장애인법을 강화하여 공적 기관의 역할과 책무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박정선 씨는 “진정한 선진국이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_김지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