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2月호] ‘과잠 시위’로 표출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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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표출의 방식도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달라진다. 586세대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의 의지를 표명했다면, 현시대의 청년들은 얼핏 보기엔 온건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온건한 방식을 비웃기도 하는데, 이러한 여론은 최근 경북대학교 – 금오공과대학교 통합 논의에 반발하며 일어난 일명 ‘과잠 시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해당 시위는 소리치는 학생들 없이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본관 앞 금오공대와 통합을 반대하는 경북대생들이 벗어둔 학과 점퍼(과잠)가 나흘째 계단 가득 놓여있는 모습으로 진행됐다. 이에 관하여 ‘그래도 시위인데 몇 명은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추우니까 옷만 두는 거냐’ ‘투쟁을 글로 배웠느냐’는 식의 반응은 물론, ‘경상도 민주주의’ ‘MZ 시위’ 등 특정 지역과 세대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진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은 정치에 무심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치는 단순히 여야의 대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민이 일상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모든 시민은 저마다의 정치적 입장과 그것을 관철할 자유를 지니고, 청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청년의 정치적 무관심이 일견 사실처럼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봤을 때조차 그 원인은 청년이 아니라 이 시대에 있다.

현시점에서 재고해 봤을 때, 과거 586세대에게는 맞서 싸워야 할 ‘절대 악’이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가졌다 한들 명백히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태를 보였던 독재자 등 권력층이 바로 그 절대 악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에 맞서고자 하는 이들 또한 그들만큼이나 과격한 방식을 택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어떤가. 악한 행보를 보이는 권력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분명 권력은 과거와 비교해 파편화되어 교묘하게 행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투쟁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경북대-금오공대 통합 논의에 화염병과 같은 수준의 대응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과잠 시위에 대한 비판적인 톺아보기 또한 중요하다. 이번 시위에 찬동하는 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가장 큰 시위의 동력이 된 의견은 경북대 홍원화 총장이 통합 논의에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고, 이러한 절차상의 문제가 학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입시 결과 차이를 사실상 수준 차이라주장하며, 이러한 두 학교의 통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는 금오공대에 대한 비난일 뿐 아니라 경북대에도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는 자학이다.

입시 결과라는 한 가지의 기준으로만 따져본다면 경북대 위에도 수도권 혹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명문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오직 1등,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단 하나의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전부 존중받을 자격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배경 가운데 과잠을 시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 과잠은 같은 대학의 학생들이 서로 소속감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벌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 또한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닌다. 경북대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민주적인 논의 후 학생·교수·직원의 의견 반영 비율을 적절히 조정해 통합 관련 투표를 진행했을 때 통합 찬성 여론이 우세인 것으로 파악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다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글로컬 대학이 되기 위한 방법이 통폐합뿐인 듯 구는 홍 총장의 의지박약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글로컬 대학 선정은 중요하다. 선정된 학교에 대해 주어지는 총 1,000억 원의 지원금은 그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컬 대학으로 본 선정된 총 10개 학교의 목록을 보라. 그중 6개의 대학은 단독으로, 4개의 대학은 통합의 과정을 거쳐 선정됐다. 확률적으로도 통합만이 정답은 아닌 것이다. 또한 저명한 IT대, 농업생명과학대 등을 지닌 경북대가 IT, 바이오산업 연구 중심의 혁신 등 조금의 노력도 없이 통합을 논하는 것은 크나큰 손실만 초래한다. 이는 단과대 중복, 학교 간 물리적 거리로 경북대, 금오공대 내부에서는 물론 첨단 산업 육성과 지역 자체의 발전을 원하는 대구시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비효율적인 조치일 테다.

그러나 이 모든 반성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과잠 시위 등 요즘 청년 세대가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 자체를 비웃는 이들에게는 동의할 수 없다. 게다가 지난 11일,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경북대생이 함께 했던 총궐기는 청년 세대의 방식에 대한 폄하조차도 불식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청년들을 포함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자유를 갖는다.

그것은 비단 과잠 시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구 청년의 시각으로 대구의 의제를 바라보는 독립 매체의 필요성을 느껴 만든 『표출지대』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다. 대구미술관의 이인성 미술상에 반대하며 침묵의 오렌지빛 스카프를 휘날린 ‘100인 LD클럽’과 같은 모습일 수도 있다. 시민참여자로서 지역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는 어디든 표출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청년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본이나 권력은 물론, 각자에게 쏟아지는 편견에도 휩쓸리지 않고 개개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우리들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제껏 표출해 왔고, 표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표출할 수 있다.

글_조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