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2月호] 불편한 일상을 치우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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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반성매매 남성 모임 ‘불일치’를 만났다. 모임명 불편한 일상을 치우자는 남성 문화라고 하는 일상이 불편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남성으로서 가지는 고민에서부터 나왔다. 이 모임은 대구여성인권센터와 함께하고 있으며 여러 활동가와 직장인이 참여하고 있다. 초등교사 벽돌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끼를 만나서 불편한 일상을 들어 봤다.

어떻게 이 모임을 만들게 되셨나요?

이끼

제가 혼자서 한 달 가까이 라오스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남성 혼자 돌아다니면 오토바이가 다가와서 성매매 제안을 해요. 한국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딱 성매매 알선에 필요한 단어만 알아요. 하루는 아침부터 숙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6번이나 같은 사람한테 잡혔어요. 같이 얘기 나눠 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 사람이 들려준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라오스가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지만 성매매 시장의 큰손은 한국 사람이래요. 라오스 수도 경찰 중에 성매매를 단속하는 경찰은 3명인데 다 뒷돈을 받는대요. 단속이 잘 안되니까 그걸 알고 와서 성매매해요.

라오스 여행을 다녀와서 남성들한테 남성들이 설득해야 할 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반성매매에 대한 고민이 나름대로 있었는데 선뜻 남성으로 뭔가를 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들이 하나둘 생겼고, 여성인권센터와 고민을 나눌 자리를 마련하다가 별도로 남성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게 벌써 4년 전이네요.

여성인권센터 소식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독서 모임, 간담회 같은 활동을 하면서 4년 동안 모임을 유지했다고 들었어요. 이 밖에도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여러 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인식이 변화된 일이 있을까요?

벽돌

사실 모임에 와서 인식의 변화는 크게 없었어요. 여성인권센터에서 같이 했던 현장 방문 업무를 하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은 많아요. 현장 방문은 업소를 가서 물티슈 같은 거 드리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달라고 하는 일이에요. 센터에서 자주 ‘대한민국에는 커피숍보다 성매매 업소가 많다’라고 하는 걸 체감했어요. 현장 방문을 나가는 곳 중에 제 중학교 등굣길도 있더라고요. 어릴 때는 그냥 술에 취하신 분들이 토하는 곳으로만 알았는데 밤이면 성매매하는 곳으로 완전히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남성 문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지점에서 주로 불편함을 느끼시나요? 예를 들면 남중, 남고, 공고, 군대 간 남자는 여자랑 말하기를 힘들어한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이끼

제가 말씀하신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왔어요. 제가 군대 가기 이전에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는데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여성분들이 들어오시는 거예요. 방에 잘못 들어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래요. 저를 빼고 모두가 낯설어하지 않았어요. 이분들을 안 내보내면 나는 같이 안 놀겠다고 했고, 그렇게 말다툼하다가 저만 나왔어요. 그때 막지 못했고 나만 튕겨나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하게 남성 문화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감각이 달라서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일들이 20대 내내 쌓이면서 패배감이 들더라고요.

벽돌

저는 이끼 님과 세대가 다른 것 같아요. 이끼 님이 군대 갈 때만해도 남자는 총각 딱지를 떼고 간다는 게 통용됐던 시대였고 저는 21년에 전역해서 그렇지는 않았어요. 물론 군대 중에 소수인 공군이어서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제가 경험했던 사회는 그렇지 않았어요. 다만 남중, 남고, 공대를 나온 친구들이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여초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동료를 성애적인 방식으로 대하냐는 질문이 들어올 때 저한테는 그냥 사람이고 동료인데 다르게 해석하는 친구들을 보면 당황스럽죠.

그러면은 20대에 특히 군대나 학교에서 만났던 남자 동료들이랑 지금 사회에서 만나는 동료들 사이의 괴리는 정말 말도 못 하게 크겠네요. 그렇지도 않은가요?

이끼

이 모임 안에서의 6명은 뭔가 확인되고 서로가 더 편안하게 느낄거예요. 그전에는 시민단체나 노조 혹은 정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여성 억압 문제나 성 착취 문제에 다 공감하고 저랑 비슷한 수준의 고민을 할 거로 생각했어요. 한번은 어느 노동조합에서 청년 활동가들을 모여서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마침 그날 한 명 있던 여성 조합원이 일정상 못 오면서 남성만 20명이 모였어요. 물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흔히 남성들과 술 마셨을 때 그 불편한 지점들이 많이 안 생기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업소 정보를 공유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마음의 문이 확 닫힌 거죠. ‘동지’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그 표현을 즐겨 썼는데 더 이상 못 쓰겠고 뜻도 안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때문에 아직도 닫혀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성매매한다는 것이 점점 나쁜 일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사회 통념상 이런 얘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긴 걸까요?

벽돌

저는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매매는 안 된다고 하는 인식은 확장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들은 전부 일반적인 집단이 아니라서 편향적일 수 있어요.

이끼

2004년에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됐었거든요.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간판만 계속 바뀌지 유흥가는 변함없는 것 같아요. 대구 뉴스에서도 성매매 특별법으로 단속되었다는 기사도 없고, 오히려 여성 범죄들 기사만 계속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성매매 특별법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많은 사람이 특히나 남성들이 그 특별법으로 인해서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경각심에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여러 자료를 보면 더 음지화되고 있어요.

뭔가를 하면 할수록 이 젠더 갈등이라는 게 심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지금의 20대는 서로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이럴수록 남성 인식 변화가 중요하고 필요한데 한쪽에서는 남자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해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세요?

이끼

2016년 강남역 이후에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가 구성되는 때였는데, 새로운 페미니즘의 동력이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남성이 나서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부터 페미니즘에 대해서 얘기해 왔지만,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그 시기 운동에는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발 뒤로 떨어져서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11회 대구퀴어축제에서 ‘엘라이 선언’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퀴어뿐만 아니라 퀴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인 엘라이와도 함께하는 축제라고 선언한 거죠. 이걸 보고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남성들이 엘라이가 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엘라이라는 말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용기 혹은 가능성을 봤던것 같아요.

벽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건 당연히 부담스러워요. 제가 0세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도 그건 기만적이죠.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무엇이라도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저한테도 좋고요. 제가 어디 가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닙니다’라고 부정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성폭력은 윤리적으로 하면 안 되는 행동으로 여겨왔는데, 성폭력 사건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면서 이건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 계기로 페미니즘을 정식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여러 모임도 나갔어요.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나는 어쩔 수 없는 남성이야’ 하는 삶의 태도보다는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중에 하나가 직접적으로 성 구매는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주변 친구들한테 ‘니 회식하더라도 거기는 가지 말래이’ 이런 얘기 정도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건 하나의 권력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인 것 같아요. 이게 정말 권력의 문제라면 어느 정도 법이나 제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법이나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요?

벽돌

노르딕 모델. 여성인권센터에서 정말 많이 이야기한 거예요. 노르웨이나 스웨덴 지역에서는 비범죄화하는 건, 맥락이 있는 정책을 펼친 거예요.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상황과 문화에 맞춰야 하는데 한국 같은 경우에는 성매매는 나쁜 행동이니 관련된 모두를 처벌하는 게 오히려 더 음지화하는 것 같아요.

이끼

성을 구매하려는 욕구는 계속 법망을 피해 가는 방식으로 변형될테고 성매매 현장에서도 성 노동을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성매매를 한큐에 해결할 만한 제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노르딕 모델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그래서 성매매에 국한되는 제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혐오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혐오에 대해서 이런 것들도 대응하면 반성매매에 영향을 충분히 줄 수 있어서 그런 기반이 되어 줄 제도에 대한 고민이 커요.

대구 지역 안에서 남성 문화에 관해 반성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다는 건 의미 있고 상징적인 것 같아요. 이 모임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이끼

이 모임은 거리 캠페인으로 모집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충원이 안 되는 게 제일 문제예요. 한두 명씩 지역을 떠나면서 지금은 4명이 남았어요. 각자 활동을 하면서 만난 괜찮은 대화를 주고받던 남성들에게 제안은 하지만 쉽게 모임까지 오지 않더라고요. 한국 남성 평균 독서 권수가 1년에 3.6권이라는데 그 안에 혹시 82년생 김지영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책장에 3권이 꽂혀 있으면 그중에 하나가 페미니즘 정도면 함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모임이 남성 모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쉽지는 않겠지만 동료를 늘려야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점부터가 찾기 쉽지는 않겠네요. 사람들이 많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늘게나마 모임이 4년 동안 이어진 동력이 있을까요?

벽돌

원동력은 사실 없어요. 그럼에도 이 운동을 하는 의미는 있죠. 저는 교사이기도 하면서 노동조합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데,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없으면 또 다른 강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책에서 봤듯이 또다시 그런 권력의 생명이 순환되게 하는 거죠. 모임을 통해 저를 조금 더 다듬고 경계하려는 마음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요.

이끼

제가 반성매매 남성 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SNS에 올리거나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가 긴장감을 가지는 것 같아요. 많은 분이 모임에 대해 묻기만 하고 선뜻 함께 하겠다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모임에 대해 대화하는 게 제 주변과 이 그룹 안에서의 큰 변화를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계속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 지점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지점을 가장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 동료들이 원동력이에요. 주변에 잘 없는 사람들이에요.

글_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