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잊을 수 없는 설날, 잊을 수 없는 전우

12:09
Voiced by Amazon Polly

2024년 설레는 맘으로 설날을 맞이한다.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설날이라 새벽부터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매사에 부족한데 34년 동안 군복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한 전우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근무하는 곳마다 전우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명절 때 당직근무를 자처했다. 20년 전 설날이었다. 2004년 이라크에 사단급 부대를 파병하기 위한 파병기획단에서 맞이한 설날에 근무를 자원했다. 이때 전우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보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기획단에는 전후방 각지에서 차출된 간부 40여명과 각급부대에서 온 행정지원 용사 20여명이 근무였다. 간부들은 파병사단을 창설하기 위한 준비요원이었고, 모두 이라크로 갈 자원이었다. 용사들은 이때까지 공식적으로 파병을 모집하지 않았다. 때문에 간부들만 설 연휴동안 특별휴가를 받았다. 당직 근무를 자원한 필자는 용사들과 함께 설날을 맞이했다.

군대에서 설날은 특별하다. 각급부대별로 지휘관이 중심이 되어 합동차례를 지낸다. 파병기획단은 긴급 편성된 특별조직이라 모든 것에 예외였다. 당시 군복무 17년차였던 필자는 졸지에 기획단장을 대신하여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놓고 합동차례를 지냈다. 그리고 축구를 하면서 함께 땀을 흘리니 어느새 모두 친해졌다. 각급부대에서 차출된지라 서로가 서먹서먹하여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용사들은 필자에게 함께 설을 보내 줘서 고맙다며 “위험한 파병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를 믿고 가족들을 만나고 오시라”고 했다. 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설을 쇠고 두 달 후,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이 창설되었다. 기획단장 운전병과 당번병을 제외하고 아무도 파병을 지원하지 않았기에 용사들은 소속부대로 복귀했다. 당시 용사들은 파병 지원경쟁률이 12:1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럼에도 2명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지원하지 않은 것은 생각해 볼이다. 아마도 이라크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을 알았고, 기획단 간부들이 밤늦도록 일하는 것을 옆에서 본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용사들은 필자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겼다. 부디 살아 돌아오라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파병부대의 선발대로 본대보다 5개월 먼저 이라크로 출국했다. 파병반대단체는 출국 당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주둔부대의 정문을 가로 막았다. 이 바람에 선발대는 가까운 서울공항까지 헬기로 이동했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파병 가는데 격려를 해야지 길을 막을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때 기획단에서 설을 함께 쇤 용사들의 넉넉한 마음이 떠올랐다. 이내 초심으로 돌아가 평정심을 찾았다. 우리 국민은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렇게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 졌다.

20년 전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설을 함께 쇠며 마음을 나눈 전우들이 보고 싶다. 파병기획단의 간부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모두 휴가 나가고 자신들만 부대에 남아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한 이라크로 파병 가는 간부들을 걱정하던 용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생각만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일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장 오늘부터 이 분들을 만나면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다. 전우들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