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화석이 될 결심 /김지효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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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나는 내가 화석이 될 줄은 몰랐다.

최근, 교내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에게 동아리 활동 더 하고 싶으면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는 어떠냐는 소리를 들었다. 동아리 때문에 대학원 가는 사람이 천지에 어디 있느냐고 웃었는데, 실제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한 학기를 더 다니며 회원 연장을 하는 사람도 주변에 있긴 하다. 그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이제 곧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대학교 4년 과정 다니며 1년 휴학에 1년 유예까지 했는데 여기서 최소 2년은 더 썩으란 말이냐.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차라리 학교 지박령이 되겠다고. 그 뒤 얼마 안 있어 나는 받게 된다. 두 곳의 면접장에서 같은 질문 하나를.

“학교를 되게 오래 다니셨네요?”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중간에 껴서 체감상 그렇게 오래 학교에 다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1년은 졸업유예를 한 거라 학교에 적만 둔 신분이었으니까. 주변에서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면 면접에서 공백 기간 뭘 했냐고 물어본대서, 어차피 학교에 매주 두 번씩은 나가 공부할 거니까 시설 이용이나 하려고 유예를 선택한 거였다. 하지만 공백 질문을 피하려 졸업을 미루니 면접관들은 늦게 졸업한 이유를 물어왔다. 어렸을 땐 고학번인 대학생들을 화석이라고 놀리는 게 미디어에서 과장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다들 한다는 1년 휴학에 유예까지 하고 나니, 내가 그 화석이 되어 있었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휴학경험자 비중은 45.8%로 조사됐다. 곧바로 졸업하지 않는 이들이 절반가량이라는 의미다. 남성의 경우 병역의무 이행이 휴학의 가장 큰 이유였고, 여성의 경우 취업 및 자격시험 준비, 어학연수, 인턴 등 ‘취준’이 76% 이상이었다. 1년의 휴학 기간 동안 나도 남들 다 한다는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편입 공부도 하면서 내 미래에 관한 생각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잠깐 방황은 했으나 방향을 찾았고, 따라서 단순한 쉼의 기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1년간 완전히 여행이나 휴식을 취했다고 해도 어떠하리. 100세 인생이라는데, 1년쯤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도 되는 것 아닌가. 개인은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사회는 ‘쉼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일명, ‘그럼 쉬는 동안 뭐 했니?’다.

청년들이 대학 졸업을 못하는 이유, 정규 교육기간보다 졸업까지 더 많은 기간이 소요되는 이유.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은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일자리다. 졸업했지만 취업을 못한 청년 백수가 126만 명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대졸자가 가장 많은 나라인데, 대졸자 4분의 1이 미취업 상태다. 게다가 취업을 해서도 근로여건 등에 실망해 평균적으로 1년 반 만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점에서 청년 일자리의 취약성을 확인할 수 있다. 출생률은 점점 낮아지는데 청년들이 갈 직장, 원하는 직장은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공무원도 연금개혁 등이 이뤄지면 이점이 없다며 갈수록 공시생이 줄어드는 추세고, 대기업은 삼중고와 같은 대내외적 악재로 공채 수를 줄인다. 공시도 공채도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이 되거나 배달업 같은 단기 일자리로 내몰린다. 안전하고 진득하게 제 자리를 유지할 만한 일자리가 없는 탓이다.

그 사이 정부는 의대 정원 대거 확대를 발표했다. 이른바 ‘의대 블랙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대학교를 졸업해 직장에 다니던 청년들까지 다시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의대가 가기 싫었기에 ‘SKY’의 일반 학부나 대기업 연계 학과에 들어갔으면서도 졸업을 목전에 두고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까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불안정한 일자리, 불안정한 미래.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직업을, 고임금이 보장된 직업을 갖기 위해(80대 이상이 되어도 여전할 수 있는 전문직은 몇 없다) 청년들은 수년의 시간을 더 들일 결심을 하고 있다.

이른바 ‘화석이 될 결심’. 정석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4년 뒤 칼같이 졸업해 바로 취업할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수년의 시간 투자로 내 미래를 더 풍요롭게 가꿔 나가 보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느라 청년들의 생애주기는 더욱 미뤄진다.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이도 계속 줄어들뿐더러 취업하고 나서도 의대나 약대 등을 꿈꾸며 다시 비생산인구로 돌아가 버리니, 사회 전체의 성장도 그만큼 미뤄지는 셈이다. 이들이 ‘다시 입시’와 상향평준화로 좁아지는 취업 관문을 넘기 위해 들이는 자원 부담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이런 살기 팍팍한 ‘치킨게임’의 사회를 만든 것은 이들이 아님에도. 결국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왜 쉬었냐, 왜 학교를 이리 오래 다녔냐는 질문이 아니다. 일자리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청년들이 자신의 청춘과 자본을 오롯이 투자해야만 양질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현실에 관한 논의와 개선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이러한 근본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마침내’ 청년들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