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동물권단체에도 노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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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포항에서 연달아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해 재판 방청 취재에 나섰다. 해당 사안을 고발하고 이슈화에 힘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활동가들은 서울과 포항을 오가며 계속 재판 방청에 나섰다. 피켓팅과 기자회견, 재판기록 등을 공유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사안이 알려져 엄벌 사례를 남길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기소는커녕 제대로 된 수사도 손꼽히는 동물학대 사건에서 역대 최고형이라는 실형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과 역량 있는 활동가가 있는, 동물권단체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다.

카라는 최근 노동조합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카라 노조는 사용자 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며칠 뒤인 13일 사측은 노조 회계감사와 사무장을 맡은 팀장급 활동가 2명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했고, 당사자 소명을 거쳐 12월 6일 징계를 의결했다. 징계 이유는 지시불이행과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업무 태만 등이었고, 정직 3개월의 중징계였다. 노조는 “표적 징계”라고 반발했다. 지난 1월 카라 사측도 반박 입장문을 내고,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며 “징계는 노조 설립 이전부터 문제가 됐던 부분이고, 노조 조합원인지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22년 9월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서 열린 길고양이 연쇄 학대범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동물학대범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되기도 됐다. (뉴스민 자료사진)

동물권 활동가들은 노조를 왜 만들게 됐을까. 노조 설립 입장문을 보면 “동물이 존엄한 생명으로서 본연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투쟁을 펼쳐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이들은 “활동가는 노동자”로, “지속가능한 동물권 운동을 위해서는 활동가의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평등하고 안전한 근로 환경”을 바랐다. 그리고 ‘동물권 운동은 다양한 존재의 권리가 촘촘히 연결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노조는 “보복 우려 때문에 조합원들이 누구인지 보안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성’을 따지기 어렵고, 공적 인프라가 사실상 없는 동물권 문제에서는 특정인의 개인기에 기대거나 드라마틱한 구조에만 몰입하는 패착에 빠질 위험이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동물권 단체가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된다. 카라와 같은 동물권 단체가 후원과 제보 등으로 지금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던 배경엔 그동안 활동에서 보여준 신뢰가 있어서다. 민주적 조직 운영과 투명성의 가치, 다양한 존재의 권리가 동물권단체에도 필요한 이유다.

올해 카라 노조가 내세운 3대 목표는 비정규직 철폐와 구조된 동물의 복지 향상, 민주적인 조직 운영이라고 한다. 뜻있는 시민들, 후원자들의 연대와 지지가 필요하다. 동물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동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약자들에게 다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동물권단체에도 노조가 필요하다. 동물권단체의 노조 설립을 응원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