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첫 시집 ‘유리구슬은 썩지 않는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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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어찌 생각할지
그건 당신의 일

나는 여기까지 와서
당신에 대한 내 마음만 생각합니다

봄바람에 일렁이는
저 순한 청보리밭 같기를

(「고창 청보리밭에서」 전문)

대구 10월문학회 이정연 시인이 지난 9월 첫 시집 『유리구슬은 썩지 않는다』(한티재, 2019)를 펴냈다. 마흔넷 이정연이 열일곱부터 품어온 시인의 꿈 53편을 1부 ‘가만가만 빛난다’, 2부 ‘하늘 학교에서 나는’, 3부 ‘유족의 나라’로 나눠 담았다.

▲지난 10월 1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10월항쟁 73주년 진실규명 정신계승 추모제 및 시민대회’에서 추모시를 읽고 있는 이정연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전학 온 지 한 달이 안 됐는데 세 번째 가출을 하고
부모한테 잡혀 온 아이
이 학교는 재미없다고
다니던 학교로 보내달란다
전학 온 첫날 아프다고 조퇴한 후
새로 사귄 친구랑 담배 한 대 나눠 폈는데
어느새 학생부 선생 귀에 들어가 선도위원회 열자는
믿을 놈 하나 없고 봐주는 것도 없는
답답한 학교란다

(「돌아와라」 부분)

나는 물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한테 묻다 확신이 안 생겨
다른 선생들한테도 물었다
2014년 4월 16일
병풍도 옆을 지나는 세월호에 탄 인솔교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늘 학교에서 나는」 부분)

시인 정대호는 발문에서 “시적 대상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우러난다. 사회나 국가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그 잘못을 고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개인이 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고 적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이정연의 시들은 세 개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하나의 중심을 향한다”며 “동심원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지점은 은폐된 역사의 비극이다. 그의 시들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지표 아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세 개의 동심원은 개인, 열성적인 교사, 역사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 사람으로서 이정연을 말한다.

1946년 10월, 쌀을 달라 친일경찰 처단하라고 외치던
군중의 무리 속 누군가와 내 발자국이 똑같이 포개졌을지 모르고
그 발자국의 주인이 멀지도 않은 가창골에서 학살되어
가창댐 아름다운 수변공원 아래 수장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든 세상」 부분)

어린아이 정강이뼈 아래서 발견된
유리구슬 하나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육십칠 년 동안 무얼 지켜보고 있었나

증언과 증거가 일치한다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유리구슬은 썩지 않는다」 부분)

이정연은 1976년 영천에서 태어났다. 20년째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보고 10월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세상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7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