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삼성의 ‘반올림’ 죽이기…도대체 왜?

반올림 고립전략은 조정위원회 무력화 전략...또 시간 끌기 하나

18:52

지난 8년간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왔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또 한 번 마타도어의 대상이 됐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반올림 흠집 내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각하다. 삼성 백혈병 문제가 8년간이나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삼성의 불성실한 대응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익집단’인 반올림이 유족들을 볼모로 문제 해결에 딴죽을 걸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반올림을 전면에 내세워 가해자인 ‘삼성’의 책임을 지워나가는 동시에, 삼성 직업병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셈이다.

시작은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원회)’가 9개월 만에 최초로 조정권고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권고안 발표 후 반올림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삼성은 사실상 권고안 거부 입장을 피력했다. 가족대책위는 권고안을 기반으로 한 삼성과의 직접교섭을 들고 나왔다. 언론은 삼성과 가대위가 조정안을 거부하는 반면, 반올림만 조정안을 고집하며 문제 해결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지난 8일, 반올림 교섭단에 참여하고 있는 피해자 황상기, 김시녀 씨가 ‘조정위원회의 보상권고안을 거부한다’는 글을 반올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를 빌미로 반올림이 분열사태를 맞았다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상기, 김시녀 씨가 ‘불화는 없다’는 해명글을 올렸음에도 이미 왜곡된 내용은 확대, 재생산됐다.

▲ 지난 7월 23일 조정위원회가 서대문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삼성전자-가족대책위-반올림 3자가 참여한 가운데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왜곡, 추측기사 쏟아내는 언론…“피해자 이간질시키지 말아달라”

고 황유미 씨의 부친이자 반올림 교섭단장인 황상기 씨는 울분을 터뜨렸다. 삼성이 조정권고안조차 거부해 분통이 터진 나머지 올린 글인데,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토로였다. 간간이 자책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엉뚱하게 해석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글을 잘못 쓴 것 같네요.” 그렇다면 조정권고안에 ‘환영’의 뜻을 밝힌 반올림과 달리, 왜 두 피해자 가족은 조정권고안을 비판한 내용의 글을 올린 걸까.

사실 황상기 씨가 작성한 글은 조정권고안을 원천 부정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가 작성한 글 중 ‘황상기 김시녀는 7월 23일 조정위원회에서 보상권고안 낸 것을 거부합니다’라는 문장을 보더라도, 권고안 중 ‘보상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반올림 내부에서 공유된 내용이기도 했다. 권고안 발표 후 반올림은 입장문을 통해, ‘보상, 대책, 사과’라는 의제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비쳤다. 다만 보상안과 관련해 ‘일부 피해 노동자들이 배제될 우려가 있다. 보상액의 수준이 피해 노동자들의 치료와 생계를 위해 충분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올림은 이를 토대로 내부 회의를 거쳐 조정위원회에 수정안을 제출했다. 물론 삼성과 가대위도 조정위원회에 각각 수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황상기 씨는 “(내가 쓴 글은) 반올림과 합의된 내용”이라며 “조정권고안에 따른 보상금이 너무 낮다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권고안에는 질병을 1군, 2군, 3군으로 분류해 놨는데. 3군 같은 경우 유족이 350일분의 평균임금만 받을 수 있어요. 반도체 공장의 오너는 1년에 몇 십 억씩 연봉을 가져가는데,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당 6~7만 원 정도로 매우 낮아요. 350일이라고 해봤자 목숨 값이 2천만 원 조금 넘는 거예요. 이게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노동자가 병에 걸려 죽었으면 적어도 유족에게 노동력 상실분은 충분히 보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황씨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뒤, 언론은 반올림이 분열됐다는 식의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보수언론사 <뉴데일리>의 경우 속초에 있는 황 씨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기사에는 황 씨의 어려운 환경을 묘사하며 황 씨가 반올림에 ‘끌려 다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반올림이 황 씨를 볼모로 잡고 있다며, 이제 유가족을 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족도 달았다. 황 씨는 “(기자에게) 피해자 가족들 이간질하는 이야기는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도 그런 식의 기사가 나왔다”며 “내가 반올림을 만든 사람인데 무슨 반올림에 회유를 당하고 분열을 하나”고 울분을 토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피해자들을 이간질하고 반올림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문제를 일으킨 삼성이 더 적극적으로 조정위와 협력해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죽은 우리 유미가 처음 병을 얻은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 중에서도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접 나서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고, 우리는 그 목소리를 대변해 왔어요. 그런데 보수 언론과 삼성은 시간을 질질 끌고 이간질하며 피해자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반올림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삼성도 언론도 제발 피해자 이간질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힘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반올림 고립전략은 조정위원회 무력화 전략…또 시간 끌기 하나

삼성과 언론의 반올림 고립전략은 조정위원회 무력화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애초 조정위원회 설치를 합의한 것은 삼성과 가족대책위였다. 지난해 10월 3주체 교섭에서 삼성과 가대위는 조정기구 설치에 합의했고, 반올림은 직접교섭을 요구하며 교섭에서 퇴장했다. 조정위의 설득 끝에 결국 반올림은 조정위 설치에 합의키로 했고, 조정위 구성 9개월 만인 올해 7월 첫 권고안이 도출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또 다시 조정위 권고안을 거부하고 나섰다. 자신들이 직접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에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약 1년을 끌어온 조정위 설립 및 권고안 도출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삼성은 우선 권고안의 핵심 내용인 ‘공익법인 설립’조차도 사실상 거부했다. 애초 조정위가 권고한 공익법인은 독립성이 담보된 공익 목적의 사회적 기구다. 대표적인 변호사, 법률가, 시민, 보건 단체에서 추천받은 인사들이 이사회를 구성해 삼성이 내놓은 기부금 1천억 원으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등을 시행하는 곳이다. 하지만 삼성은 공익법인 설립이 아닌, 1천억 원의 사내기금으로 독자적인 보상, 예방, 연구활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보상 내용도 조정위원회의 규정이 아닌, 자체적으로 구성한 보상위원회에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발방지대책 역시 조정권고안의 ‘옴부즈맨 제도에 의한 외부감시’가 아닌 내부적인 재해관리 시스템 강화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상 외부 기관의 어떠한 감시나 공조 활동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보상을 확대한다고 밝히는 반면, 보상대상 범위와 보상액을 축소시켰다. 이들은 유산, 불임 등 생식독성 피해자와 퇴직 후 10년 이후 발병자, 1년 미만 근무자를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유산의 피해를 겪어 확실히 몇 명이 해당되는지 집계되지 않는다”며 “퇴직 후 10년 이후 발병자 등이 보상대상에서 제외되면 폐암 피해자, 갑상선 암 피해자 등 일부가 보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하청노동자도 포함돼 있다.

삼성의 조정위 무력화 시도는 조정위 권고안에 환영 입장을 밝힌 반올림에 대한 공격으로 가시화됐다. 일부 언론은 반올림이 공익법인 설립 기금을 시민운동가 활동비로 쓰려는 의도라고 추측했고, 또 다른 언론은 반올림에 포함된 유족은 황상기, 김시녀 2명 뿐이라며 반올림의 대표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상기, 김시녀 씨는 피해자들을 대표해 교섭에 참여하는 교섭 위원이다. 현재까지 삼성전자 등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67명의 노동자들이 반올림을 통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테크윈, SDS 등 삼성 계열사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반올림에 제보한 노동자는 올해 8월 기준 286명이다. 하이닉스, LG전자 등 타 기업 제보자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354명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조정위 권고안의 핵심 내용에 난색을 표하고, 가족대책위가 삼성 측과의 직접 협상을 요구함에 따라 향후 삼성 직업병 문제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가족대책위는 삼성과의 직접 협상을 위해 조정위 측에 9월 말까지 조정기일을 보류할 것을 요청해 놓았다. 삼성 측에는 아직 공식 협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조정위는 조만간 회의를 통해 이와 관련한 내용 공유 및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가대위 관계자는 “조정 과정에서 다른 주체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권고안이 도출된 만큼 직접 협상할 기반이 마련됐다고 판단한다”며 “협상이 다시 난항을 겪으면 조정위에 추가 조정을 받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반올림 관계자는 “조정위 권고안은 무노조 사업장이 삼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예방대책, 보상대책 등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이다. 지금 시점에서의 직접협상은 조정위의 힘을 빼는 것”이라며 “삼성이 조정권고안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직접협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정권고안보다 좋은 내용의 협상결과가 나올 수 없다. 피해자 보상 기준에 국한해 보더라도 삼성의 안은 조정위 권고안보다 후퇴한 내용이라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기사제휴=참세상/윤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