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28기념사업 주도세력’이 빼앗은 ‘2.28민주운동’ /권상구

고등학교 학력이 지배하는 사회
2.28을 고립시킨 사람들이 바로 2.28기념사업 주도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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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4:43 | 최종 업데이트 2018-02-26 15:30

고등학교 학력이 지배하는 사회

올해로 2.28민주운동은 58주년을 맞이하였다. 해가 늘어가면서 신기한 일은 2.28기념사업에서 새로운 뉴스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난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좀비 같다고 했다. 영혼 없는 신체, 즉 좀비가 해온 일들이라고.

난 2.28을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자랑해본적이 없다. 현재 ‘2.28’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동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들(주도하는 자들)이 살아온 삶과 현재를 살아가는 삶에 동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20년간 2.28기념사업을 주도해온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바로 그분들이 개혁이 대상이었다.

그들은 문희갑, 홍종흠, 김정길, 김범일로 이어지는 ‘K고’를 상징하며 대구의 수구를 상징해온 분들이다. 2.28 당시 자유당에 저항했던 학생들이 이제 늙어 버렸다.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있다.

‘2.28기념 주도세력’이 누구일까 정의를 내려야 나의 의견이 분명해질 것이다. ‘2.28세력’과 ‘2.28기념 주도세력’은 조금 다르다. 우리 지역에서 아직 정의가 내려진 적은 없다. 일단 무식한 방법이고 재미는 없지만 2.28기념주도세력으로 사업회 역대 회장 리스트를 살펴보자.

난 위의 리스트에 언급된 역대 의장들의 개인사에 대해선 폄하하거나 비난할 마음이 없다. 의장단 리스트를 통해 어떤 세력이었는지 엿보고 싶을 뿐이다. 초대 의장 대구고 장주효 선생 이후 사대부고, 경북고, 대구공고, 대구상고 등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대구에서 ‘K고’로 불리는 경북고등학교 출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희갑 시장 이후 선출직인 대구시장이 당연직처럼 2.28기념사업회의 공동의장을 수행해온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K고 카르텔’이 동창회를 열면 그들은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들에겐 당연하나 나에겐 정말 어색한 풍경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커뮤니티에 민간과 대구시장이 공동의장을 한다는 것은 사실 그 커뮤니티의 수준을 보여주며 명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비극의 시작은 이때부터다.

대구시장이 임명직에서 민선시장으로 바뀌던 문희갑 시장 이후로 당시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경북고등학교 동창회에서 회자되던 이야기라고 한다. ‘이번에 시장은 누구를 뽑지?’와 같은 표현들이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이 ‘고등학교 학력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대구시장을 뽑는 일에 대학, 대학원도 아닌 고졸학력 ‘K고 출신’이 대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주효 선생을 초대 의장으로 세웠던, 2.28 학생의거를 기념하는 순수하고 치기 어린 열정이 있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 후 ‘대구시장’이라는 기득권과 만나는 순간 오염이 되기 시작한다. 열정과 역사를 이야기하던 모임에서 ‘치적’을 내세우고 ‘표징’사업에 과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2.28기념사업에서 가장 이상한 풍경은 중앙초등학교 부지 공원화 계획에 숟가락을 얹었던 일이다. 중앙공원은 중앙초등학교에 다녔던 졸업생 수만 명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이 기억을 지우고 2.28기념세력은 자신들의 기억으로 세탁하게 된다. 공원 조성 비용도 시민모금이 아닌 대현프리몰의 로비자금에 기반을 뒀다. 정당한 돈이 아니니 괴상한 이름의 공원이 탄생한다. 이른바 ‘2.28기념중앙공원’. 중앙초등학교와 2.28은 아무 연관이 없다. 이런 행위를 바로 장소세탁이라고 한다. 정당한 예산에 기반한 표징사업도 아니었던 것이다.

2.28기념사업 주도세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기념사업의 변화

사건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사건을 기념하고 싶을 때 우린 적절한 장소를 선택하게 되며 이야기는 지속가능성을 얻게 된다. 기억되고 재현되는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2.28주도세력의 장소표징사업을 지난 몇십년간 추이를 보면 ‘일단 세우고 보자’주의로 보인다.

명덕네거리에서 두류공원으로 옮겨간 것도 모자라 계속 자신들이 한 일들을 자랑하고 뽐내는 것에 집착한다. 원래 ‘자랑’은 스스로 하지 않는다. 남들이 해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2.28기념 주도세력은 ‘소인배(小人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60년 2.28일 대구에서 있었던 일은 학생, 교수를 비롯해 많은 대구시민의 노력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뜻과 정신을 한낱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탑을 세우는 일에 연연하고, 타인의 기억이 있는 장소를 뺏어 이름을 세탁하고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명덕초등학교 부지까지 굳이 뺏어서 어른들의 기념회관을 짓고...한마디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2.28을 고립시킨 사람들이 바로 2.28기념사업 주도세력들이다

그래서 난 대구의 2.28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바로 당신들 때문에 말이다. 늙은 좀비들 말이다. 신체는 죽어서 영혼은 날아가고 시체는 썩는다. 시체가 썩지 않으면 바로 좀비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영혼이다. 깨어있는 시민정신, 그 2.28정신말이다.

정권의 부패에 저항한 학생들이 성장해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늙으니 부패세력이 됐고, 대구의 수구를 상징하고 있다. 그들은 2.28의거와 촛불광장이 같은 것이라고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2.28을 고립시킨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나는 어제의 2.28을 폄하하거나 격하시킬 의도가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제의 2.28이 오늘의 2.28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 없이 백날 제사상에 산해진미를 올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초등학교 땅까지 뺏으면서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 세우는데 급급해하면서 지난 정부의 부패에 대항했던 촛불광장에 양초 하나 들고 나간 적이 있냐는 말이다.

2018년 2월 26일 현재 내가 오늘의 2.28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며 당신들이 2.28기념사업에 실패한 이유인 것이다. 나는 주장한다. 사실 당신들은 어제의 2.28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어제의 2.28을 이용해온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필자는 1960년 7월 10일 경북상공안내소에서 발행된 ‘4월혁명-승리의 기록’에 담긴 2.28민주운동 사진을 함께 공개합니다. 필자가 모 경매사이트에서 구입하였고, 편집자 이준철씨의 서문에 1960년 7월 10일이라고 적혀 있어 4.19혁명 이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출간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하야의 도화선이 되었던 2.28학생의거부터 하야 이후의 과정까지 대구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들이 70여장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대구 2.28을 시작으로 수원궐기, 마산 김주열학생 사망사건, 서울, 부산, 대구의 4.19 데모 및 행진을 소개하고 있다. 4.26 이승만 대통령 하야 이후 상황까지 다루고 있다. 당시 난장판이 된 도시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활동 및 모금활동이 소개되었으며 희생학도들의 합동위령제 장면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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