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명박, 그리고 내용 없는 민주주의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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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2:36 | 최종 업데이트 2018-03-26 12:38

CNN뉴스에서 러시아 대선을 보도하고 있었다. 특파원이 한 젊은 러시아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푸틴 재선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여성은 “우리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겠다는데 뭐가 이상하냐?”고 반문했다. CNN을 비롯한 이른바 서방언론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푸틴의 당선을 탐탁지 않아 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내 귓가에 내내 “뭐가 이상하냐?”고 되받아치던 그 젊은 여성의 음성이 맴돌았다.

기시감일까, CNN뉴스의 장면은 나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국에서 나는 온갖 논란에도 아랑곳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나만 아니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엄청난 고민거리를 던지는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보수의 귀환을 부추겼다는 호사가들의 진단도 일견 맞는 말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서 이런 역사의 반동은 진보 정부의 실패에서 기인한다기보다, 이른바 글로벌 자본주의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국민의 반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22일 자정무렵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집행되어 동부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출현에 가장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당사자 중 한 명이 글로벌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파이낸셜 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던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면서 등장한 이명박 정부가 딱히 보수의 의제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조갑제의 인터뷰도 밝히고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맨 정권’이었고, 그래서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가 공유재를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낸 ‘사익집단’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시장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는 국내 자본가와 소자산가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정부에서 누구보다 돋보였던 이는 이 전 대통령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자신의 경력으로 간주했던 최초의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정치인은 대체로 정치인 취급을 받지 못했던 것이 한국의 정치문화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정치인답지 않은 점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정치적 자산이기도 했다.

그는 철저하게 시장의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의 정책은 국제금융자본에게 불리했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은 신자유주의적인 의미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해 자본화하려는 존재였다. 영문으로 출간한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그는 대통령직을 그만둔 뒤의 경력관리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기 집착은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당사자임에도 차기 정부의 출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점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문제를 간단하게 부도덕한 개인으로 인해 빚어진 일시적 퇴행으로 치부하고자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이 전 대통령은 쿠데타나 부정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의 당선을 놓고 개탄하는 많은 이들이 젊은 러시아 여성의 반론에 곤혹스러운 것처럼 나 역시 2007년 12월을 떠올려보면 표현이 궁색해진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상당 부분 진보를 자처한 이들의 자기모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본질로 착각하는 형식주의도 만연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는 아침 뉴스에 등장한 한 자영업자의 발언을 잊을 수 없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복지도 잘하고 우리 같은 서민들도 잘살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이명박’은 없었다. 사실상 있던 것은 이명박이라는 기표로 향하는 욕망을 다른 곳으로 이끌지 못했던 내용 없는 민주주의였다. 이 내용 없는 민주주의를 채워 넣을 다른 생각을 당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고작 그 역사적인 반동의 순간에 이명박을 지지하는 이들은 반민주세력이고 부패세력이라는 도덕적 판결문을 되풀이해서 읽고 있었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준동하는 극우의 반동은 바로 이런 무력한 진보의 내용 없음을 먹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촛불 이후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 역시 마냥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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