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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이뤄진 대통령 특별사면 횟수다. 74년 동안 103회, 한 해에 1.4회꼴로 아무런 견제 없이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형사처벌 받은 범죄자들이 그 책임을 벗었다. <뉴스민>은 견제 없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 사회로 가느냐 아니냐의 ‘갈림길’ 위에 서게 한다고 판단했다. 갈림길 위에서, 더 나은 사면권, 더 민주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면, 갈림길] ① “대통령 사면권한이요? 글쎄요···어렵네요”
[사면, 갈림길] ② 74년 동안 103회, 특사의 역사
[사면, 갈림길] ③ 김우중은 세 번 했지만 이건희는 두 번만
[사면, 갈림길] ④ 기준 없이 ‘관행’ 따르는 특사? 사면회의록 분석해보니···.
[사면, 갈림길] ⑤ 법조계 중심 사면심사위원회 다양성 확보 관건
[사면, 갈림길] ⑥ 더 나은 특별사면 가능할까?

“저는 찬성하지 않아요”
“저도 비슷해요”
“와닿지 않아서 관심이 없어요. 하든, 말든”

구미 산동읍 물빛공원에서 만난 30대 여성들은 제각각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뉴스민>이 준비한 ‘향후 10년 더 나은 대구경북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묻는 판넬에서 각각 인구소멸 문제와 공공의료 확충 문제를 선택했다. 인구소멸 문제를 걱정하고,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중요해진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을 강조한 이들은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커 보였다.

다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를 언급하자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반대한다고 밝힌 한 여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사실 나온다면 반대로 이 대통령이 나왔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을 완전히 다 속인 거지 않나. 죄질이 다르다”고 힘줘 말했다. 국정을 농단한 박 전 대통령의 죄가 더 크다는 거다.

‘국정농단’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한 그도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땐, 큰 고민을 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건 생각을 못 해봤다”고 말했고, 옆의 다른 여성은 “필요하니까 있는 걸 텐데, 사면권을 다음 대통령에게 안준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까요?”라고 되물어왔다.

▲구미 산동읍에서 만난 30대 여성 3명은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선 분명한 의견을 보였지만, 사면권한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뉴스민>이 지난 1월 대구와 경북 경주, 구미, 군위, 의성에서 시민들과 만나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여부에 대한 의견과 함께 대통령이 행사하는 사면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뉴스민>이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개별 사면 문제에 대해선 분명한 찬/반 의견을 피력했다. 온도 차를 보이긴 했지만 대체로 사면에 찬성했고 이유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찬성의 주요 근거는 ‘여성’, ‘고령’, ‘대통령’, ‘관행(?)’ 정도로 요약됐다. 반면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한 물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사면 찬성 시민 다수
박근혜 사면 찬성해도 이명박은 반대하기도
“박근혜는 묵인, 이명박은 직접 범죄”
도시 거주, 젊을수록 반대 의견

<뉴스민>이 방문한 곳 중 의성에서 상대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의견이 많이 확인됐다. 대구경북이 대체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지만, 의성은 유독 더 높다는 걸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는 반응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의성은 박 전 대통령에게 86.1%의 지지를 보였다. 군위(87.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의성에서 만난 시민 다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의성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김민아(65, 여) 씨는 “여자니까, 나이도 있고 불쌍찮아”라고 사면에 동의했고, 의성군 단촌면에 거주한다는 59세 남성은 “여자, 남자를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거기 들어가면 여자는 생활이 불편하다. 한 2년 살았으면 봐줄 만도 하다”고 말했다. 의성에서 만난 73세 여성도 “잘한 결정”이라며 “비슷한 또래고 여자여서 마음이 간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는 시민 중 일부는 구미에서 만난 여성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죄가 없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이른바 ‘최순실(최서원) 게이트’로 알려진 일련의 비위는 최서원 씨의 죄고, 박 전 대통령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거다. 일부 죄를 인정하더라도 정치 보복 차원에서 과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대구 칠성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해온 한순분(77, 여) 씨는 “정치 이런 걸 떠나서 좋지 않나? 여자인데, 아무 그거(잘못)도 없이 그랬는데(구속됐는데)”라고 말했다. 의성읍에 청과상을 하는 김태선(70, 여) 씨는 “여자 몸으로, 돈을 하나 해먹었나? 깨끗한 사람이고, 잡아넣을 사람도 아니”라며 사면은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의성에서 만난 정남이(68, 여) 씨도 “박근혜는 별거 아닌데 감옥에 간 것 같다. 잘못은 맞지만, 박근혜가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의성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반대하는 이는 있다. 의성읍에 거주하는 배분옥(74, 여) 씨는 “사면을 왜 하느냐, 죄인은 죄를 받아야 한다”며 “처벌이 20년이면 10년 정도면 이해도 가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러면 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배 씨와 같은 반대 의견은 상대적으로 의성이나 군위 같은 농촌 지역보다 도시 지역,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인됐다.

구미 산동읍에서 만난 정소연(38, 여) 씨는 “명분 없는 사면”이라며 “죗값을 다 치르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고, 같은 곳에서 만난 임건희(35, 여) 씨도 “사면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대통령 수행에 문제가 있었고, 재판을 통해 죄가 확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만난 성영기(29, 남) 씨는 “큰 생각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며 “죄지은 사람은 벌 받는 게 맞다”고 말했고, 침산동에서 거주하는 남성 최(26) 씨는 “자기가 저질러 놓은 일, 짊어지고 사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시 지역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반대 의견이 더 확인됐다는 점도 있지만, ‘여성’, ‘고령’이 주로 언급된 시골 지역과 달리 찬성 이유도 다양했다. 대구 칠성시장 상인 장일수(40, 남) 씨는 “처음 뉴스를 봤을 땐 솔직히 화가 좀 났는데, 관짝이 나가면 그게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시기를 봐서 그런대로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상인인 이미영(60, 여) 씨는 “허경영 얘기 그대로”라며 “대통령은 누구라도 우리가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사면에 찬성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사면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과반 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에 비해선 적었다. 이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는 이는 박 전 대통령 사면에도 찬성했지만, 반대로 박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는 이들 중에는 이 전 대통령 사면에는 반대하는 이가 여럿 보였다. 이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는 이들은 ‘고령’이라는 점을 주요하게 꼽았고, 반대하는 이는 ‘개인 비리’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여성은 감옥 생활이 불편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긍정했던 의성 단촌면 거주 남성은 “그 사람은 좀 더 고생해야죠”라고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반대했다. 이 남성은 “박근혜는 뭣도 모르고 묵인했을 뿐인데, 이명박은 자기가 직접 다 했다”고 지적했다. 역시 박 전 대통령 사면에는 찬성한 의성시장 상인 김민아 씨는 “그분(이명박)은 정이 별로 안 갔다”고 말했다.

칠성시장 상인 장일수 씨도 “본인 범죄니까, 뭐”라며 잘라 말했고, 대구 대명시장 상인이라는 40대 남성은 “우리나라 대통령들 원래 끝나면 다 갔다 오는 거 아니냐”며 “박 대통령은 몇 년 있었고, 이 대통령은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냐. 조금 더 있다 나오면 된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 사면권? “글쎄요, 어려운 문제네요”
장년층일수록 긍정하는 의견 많아
청년층은 유보하거나 반대 의견

거주지의 차이, 대통령 사면에 대한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 사면권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뉴스민>이 만난 시민 70명 중 사면권에 대한 의견을 분명히 밝힌 이는 8명에 그쳤다. 많은 경우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하거나,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침산동 거주 최 씨는 박 전 대통령 사면에는 분명한 반대 뜻을 보였지만, 사면권에 대해서 물을 때는 “글쎄요. 저는 잘···”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사면에 반대 뜻을 보인 성영기 씨는 “그 부분은 글쎄요. 조금 어려운 부분이네요”라고 말했다. 최문국(구미, 34, 남) 씨는 “그거를 특별히 가질 수 있는 권한인가 싶기도 한데, 그건 좀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역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이었던 임건희 씨는 “어려운 문제다. 양날의 검 같다”고 답했다. 임 씨는 “국민 입장에서 사면권 자체가 없어야 된다, 있어야 된다보다는 그걸 쓰는 사람이 여론을 참고해서 잘 결정할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대적으로 장년층에선 사면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답변이 나왔다면, 청년층에선 답변을 유보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이 여럿 확인됐다는 점이다. 유병찬(군위, 63, 남) 씨는 “큰일을 하다보면 법에 위반되는 일도 있다”며 “사면권을 가진 것도 좋다”고 말했다.

김태호(대구, 65, 남) 씨는 “대통령이 통치권자로서 전체의 단합을 위해 한 번씩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안외준(대구, 66, 남) 씨도 “대통령이 사면권을 갖는 것에 찬성한다”며 “앞으로 대통령이 수감되는 일이 없도록 조금 더 나은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김숙현(구미, 43, 남) 씨는 “없애는 것보다 있는 게 낫죠”라며 “아무래도 여당이나 대통령이 되면은 권한이 많아져야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겠나. 지지율 확보라든지 그런 면에서도 사면해주면 지지율이 조금 올라간다든가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배분옥 씨는 60% 정도만 인정한다고 말했다. 배 씨는 “국민이 주인인데 대통령이 멋대로 사면권을 행사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조금은 인정된다. 그러니 권력 사회에 죽기 살기로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 건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고 말했다.

반면 임지혁(구미, 23, 남) 씨는 “대통령한테 사면권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법치국가인데, 한 사람 생각으로 하는 건···”이라고 말했다. 장일수 씨는 “앞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될 것”이라며 “위원회 형식으로 해서 외부 인사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결정하는 방향으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청년층과 장년층의 정의와 공정에 대한 관점 차이가 사면을 바라보는 차이로도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승 연구위원은 “MZ세대가 생각하는 게 공정이라 그렇다. MZ세대들이 봤을 때 사면은 법원 판결보다 덜 정의롭다는 것”이라며 “4, 50대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그 정도 권한은 행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총론적, 정의론적 접근이 아니라 각론적인 접근. 그 행사의 대상이 나와 호불호가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경우엔 최근 이뤄진 특별사면이 대구·경북 시민 지지도가 높은 박 전 대통령이기 때문일 가능성을 높게 봤다. 채 교수는 “사안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사면했다’이니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정치적 비호감자를 했다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이상원, 천용길, 박중엽, 장은미 기자
기사=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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