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경북민심번역기] 율곡동, 김천 변화의 씨앗 될까?

데이터는 이곳이 김천 변화의 씨앗이라 말하지만
율곡동은 평일엔 살아있고, 주말엔 죽은 도시?
“여긴 유령 도시야”, “변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사드, 선거에 이용하는 사람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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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7 17:13 | 최종 업데이트 2018-04-30 18:50

멀리 김천구미역이 보였다. 김천 율곡동과 농소면을 가르는 경계선처럼 경부선이 이곳을 지나 서울로, 부산으로 달려간다. 경계를 인식하고 율곡동과 농소면을 바라보면 그 차이는 더 또렷해 보인다.

역사 남쪽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고층 아파트 여러 채가 나란히 서 있다. 전형적인 회색빛 도시다. 반면 북쪽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푸른색이 8할 이상을 차지하는 녹색 도시가 펼쳐진다. 율곡동과 농소면은 역사와 철도로 지리적 경계가 구분되고, 회색과 녹색으로 빛깔이 나뉜다. 그리고 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 서로 다른 색깔로 구분될 테다.

<뉴스민>이 6.13 지방선거 기획 보도 ‘경북민심번역기’ 두 번째 방문지로 찾은 곳은 김천이다. 그중에서도 율곡동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으로 일찌감치 골라뒀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됐지만, 율곡동은 지난 대선에서 332개 경북 읍·면·동 중 문재인 대통령이 과반 득표율(50.4%) 획득에 성공한 유일한 동네다. 보수 정당을 줄곧 지지해온 김천이 변한다면 이곳에서부터 시작될 거라 추정했다.

데이터는 이곳이 김천 변화의 씨앗이라 말하지만
율곡동은 평일엔 살아있고, 주말엔 죽은 도시?

“여긴 유령 도시야”, “변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25일 김천구미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율곡동이 유령도시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평일까지 있다가 금요일 되면 다 빠져요. 금, 토 되면 한산해요”

“여긴 유령 도시야”

“완전 유령도시지”

“저기 XX아파트는 900세대인데 10%도 안 나갔어”

“여기 상가는 울고불고 난리 났어요. 한 칸에 몇 억하는데 다 비었잖아”

현장에서 마주한 신도시의 모습은 추정과 달랐다. 김천구미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율곡동은 평일엔 살아있고, 주말엔 죽은 도시라고 했다. 손님을 기다리던 50대 택시기사들은 ‘유령도시’라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입에 올렸다. 택시기사들 너머로 보이는 상가는 실제로 텅텅 비어 있었다.

역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의 설명도 비슷했다. 역사 앞에서 선거운동 많이 하냐는 물음에 그는 “여기가 사람이 많긴 한데, 대부분 외지인이어서 선거운동은 구도심 김천역에서 많이들 해요. 여기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답했다. 이들의 말처럼 율곡동이 유령도시라면, ‘유령’들을 직접 만나야 ‘유령’들이 만든 반전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무현으로부터 비롯된 신도시, ‘율곡동’
“혁신도시 때문에 바뀐다는 말 있는데···글쎄”
“사드, 선거에 이용하는 사람들 있어”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 있는 율곡초등학교로 장소를 옮겨갔다. 저녁 무렵 찾은 학교 주변은 분주했다. 율곡천을 가운데 끼고 학교와 마주 보는 건물에선 학원 수업을 마친 듯 학생들이 빠져나왔다. 주부들은 찬거리를 사서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무리 속에 어린 딸과 함께 율곡천 한켠 벤치에 앉은 주부를 발견했다.

40대 중반인 나 씨는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김천으로 온 지 10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윗지방에서 내려왔는데, 정치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더라. 좀 바뀌었으면 해요. 혁신도시 때문에 바뀐다는 말도 하는데, 저는 체감은 못 하겠어요. 혁신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도 그런 거(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거) 같아요”라고 혁신도시에서 변화가 시작될 거란 추측을 조심스럽게 부정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사드 반대 투쟁은 성주 뿐 아니라 김천도 흔들었다. 율곡동은 성주 사드 기지와 직선거리로 8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지역 주부들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날도 율곡초 앞 도로변에는 ‘사드 뽑고 평화 심자’라고 쓴 현수막이 펄럭였다. 6.13선거에는 이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서도 출마하는 후보들이 있다. 하지만 율곡동 주민 일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율곡동에서 만난 중년 남성들은 사드 반대 운동을 선거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봤다.

율곡초 앞에서 만난 중년 남성 둘은 ‘사드 뽑고 평화 심자’ 현수막 앞을 지나 걸으면서도 “사드를 선거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운동한 걸로 자길 나타내고(홍보하고) 이런 거지”라거나, “자기 사익을 챙긴거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치를 냉소했고, 정치인을 불신하는 모습도 여실히 드러냈다. “깨끗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다 거기서 거기다. 나쁘게 말하면 사기꾼이다. 우리 같은 사람이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치를 냉소하는 사람들에게서 문재인 과반 득표의 원인을 찾기란 가능하지 않았다.

아파트 인근 수요장터에서 만난 50대 주부에게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쪽으로 갈수록 당보단 지역민에게 필요한 사람을 선택한다”며 율곡동에서 문 대통령이 과반 득표를 한 것에 대해 “젊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추정했다. 2015년 기준 김천 평균 연령은 44.3세인데, 율곡동은 31.3세로 13살이나 젊다. 김천 22개 읍·면·동 중에서 가장 젊은 동네다.

율곡동을 설명하는 덴 ‘젊음’만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율곡동 역사를 살펴보면 문 대통령 과반 득표 의미가 남달라지기 때문이다. 율곡동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으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했고, 율곡동은 그 정책의 가장 선두에서 만들어진 신도시다.

▲2007년 9월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천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재단)

2007년 9월 20일 노 전 대통령은 직접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4년 율곡동이 탄생했다. 2016년에는 인구 1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대비 2015년의 인구 변동을 보면 김천시 전체 인구는 8,550명이 늘었는데, 율곡동에서만 8,271명이 늘어났다. 김천 내에서 율곡동으로 옮겨간 시민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공공기관 이전으로 직장을 따라 이주해온 외지인들이다. 단순히 젊기 때문이 아니라 외지인이 늘면서 기존 김천 정주민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천구미역, 경계로 확연하게 바뀌는 분위기
“사위나, 시동생이 한국당 찍는다고 난리···그래도 고정관념”

김천구미역을 경계로 초록빛 동네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현저하게 바뀌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김천구미역에서 차로 약 6~7분 거리에 있는 농소면 월곡1리에서 만난 고령층은 여전한 한국당 지지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땅콩밭에서 밭일을 하고 있던 72세 여성은 가족들 타박을 들으면서도 한국당 지지를 거두는 걸 주저했다. 그는 “인천에 있는 사위나, 사촌 시동생들도 오면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찍는다고 난리다. 그래도 고정관념이 있으니까 내 알아서 찍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농소면에서 만난 72세 할머니는 가족들의 타박에도 자유한국당 지지를 거두는걸 주저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령의 할머니들은 선거와 관련해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벽면으로 둘러앉은 할머니들은 지방선거 관련 질문을 하자 저들마다 앉아 이야길 나눴다.

“이름도 아직 안 써 붙여 났재(벽보 안 붙었지)?”
“나와야지 알지, 그전엔 잘 몰라요”
“아래께(그저께), 그 사람도 이제 공천받았다고 하더만”
“백성철”
“어제 왔어, 인사하러 왔어”
“이 동네 출신이라”
“똑똑해요. 한동네라서 그런 게 아니고 잘해요”
“먼저도(지난번에도) (군의원) 했지”

10여 명 할머니들이 쏟아내는 말 속에 등장하는 백성철 김천시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김천시의원에 당선했고, 이번에도 자유한국당으로 출마한다. 은연중에 “이 동네 출신”이라고 말하곤, 곧바로 “똑똑하다, 한동네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잘한다”고 따라붙은 해명은 선거 시기 마을에 번질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어쩌면 월곡1리는 작은 김천, 작은 농소면이다. 지도를 보면 율곡동은 작은 김천, 작은 농소면들에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보인다. 면적만 놓고 보면 율곡동을 둘러싸고 있는 농소면과 남면이 3,630만평에 달한다. 120만평 정도인 율곡동은 농소면과 남면 한가운데 심어진 작은 씨앗인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씨앗은 어떤 모습으로 발아할지 예측을 불허했다. 문재인을 선택한 50.4%는 정말 ‘유령’으로 남아 떠돌지, 김천에 단단히 뿌리 박은 새싹으로 피어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천구미역에서 ‘혁신도시는 유령도시’라 말한 택시기사 역시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선택했다. 그는 “문재인을 찍었는데···문재인도 똑같은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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