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경북민심번역기] 의성, 투표장에서 습관이 발동하는 이유는?

“새댁이요, 누구 찍으면 될노?” 물어오는 할머니들
“선거권, 내 손에 있지만 자유롭지 못한 경북 사람”
“자기 마음 못 정한 사람들, 찍던 델 찍는거지”

0
2018-04-30 14:37 | 최종 업데이트 2018-04-30 18:48

신광진(60) 의성군 농민회장 말을 빌리면, 의성은 “자유한국당 한복판”인 도시다.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1995년 1회 지방선거 이후 2014년 6회까지 당선자들의 면면은 한국당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당장 지난 대선 결과를 보면 의성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지지(14.3%)를 보냈다.

<뉴스민>이 6.13 지방선거 기획 보도 ‘경북민심번역기’ 세 번째 방문지로 찾은 도시는 의성이다. 의성에서 처음 민주당 군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한 임미애(52) 전 군의원과 3년 전 의성으로 귀농해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최경하(36) 씨, 신광진 의성군 농민회장을 만나 이야길 나눴다. ‘한국당 한복판’의 도시에서 한국당이 아닌 정당으로 정치를 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을 빌려 의성을 바라봤다.

“새댁이요, 누구 찍으면 될노?” 묻어오는 할머니들
강한 정치적 신념, 소신 보다 마을을 위한 ‘선의’
“선거권, 내 손에 있지만 자유롭지 못한 경북 사람”

임미애 전 군의원은 4, 5회 군의원 선거에서 당선했다. 경북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당적을 갖고 재선에 성공했다. 임 전 군의원이 경험한 의성의 정치적 선택은 ‘선의’에서 비롯된다. 고령층 주민들은 선거 기간이 되면 누굴 선택해야 할지 주변의 ‘젊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지역 정치 권력을 독점해온 한국당과 크고 작게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귀납된다.

▲임미애 전 군의원은 자주 동네 할머니들에게 누굴 찍어야 하냐는 물음을 받는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저희 동네 할머니들이 선거 때마다 저한테 물어보세요. ‘새댁이요, 누구 찍으면 될노?’ 이렇게 물어봐요. 저야 뭐 몇 번이지요. 이렇게 이야길 하면, 이분들이 ‘우리가 뭘 아나’ 그래요. 투표하는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차에서도 물어보는 거예요. 동네에서 태워주는 분들이 있잖아요. ‘누구 찍으면 될노?’ 이렇게 물으면 누구 찍으라고 이야길 해준대요. 그럼 그렇게 찍는대요”

할머니들이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좇는다는 건 그들의 선택이 어떤 소신이나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정의하거나, 강경한 한국당 지지자라는 자의식 없이 이뤄지는 행위다. 어쩌면 그건 습관이고, 익숙함이다. 신광진 농민회장이 “표는 습관”이라고 자신있게 정의내리는데도 그런 연유가 있다.

신 회장은 20년 전 경험으로 “표는 습관”이라는 정의를 설명했다. 신 회장은 20년 전 한 선거에서 동네 선배 몇 명에게 보수 정당 후보가 아니라 다른 후보를 선택하면 막걸리를 사겠다고 제안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좋다, 내가 이번엔 다른 후보를 찍겠다’고 호언했던 선배들은 투표를 마치고 돌아온 후 신 회장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고 한다.

▲신광진 의성군 농민회장은 ‘표는 습관’이라고 단호하게 정의내렸다.

“선거권이 내 손에 있으니 내가 자유로워야 하잖아. 그게 안 된다는 거지, 우리 경북사람들은. 이분이 뭐라고 그러냐면 자기는 작정하고 갔는데, 표를 내주는 아가씨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하얀 함(기표소) 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글자는 눈에 안 들어오고 안에서 누가 보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은 거예요. 자기가 생각했던 건 간 곳이 없고, (보수정당) 찍고 나온 거예요”

습관을 만드는 요소, 레드콤플렉스와 지리·지역적 한계
‘정서적’이라고 반복하며 한국당 지지 못 거둔 60대 남성
“자기 마음 못 정한 사람들, 찍던 델 찍는 거지”

습관을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다. 신 회장은 동네 선배들의 습관을 레드콤플렉스에서 찾았다. 신 회장은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걸 상실했어. 살아남아야 해. 해방되고 전쟁 이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이 영남 지역에. 레드콤플렉스가 꽉 박혔어. 그거는 내면화되어 있어서 자기도 몰라. 자기는 자기대로 판단한다지만 아니에요”라고 내면화된 공포를 언급했다.

앞서 임 전 군의원 설명에선 생활 조건에서 오는 요소가 숨어있다. 넓은 지역과 불편한 교통은 의성을 넘어 경북의 정치적 ‘습관’을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다. 최경하 씨는 “지금은 많은 여성이 직접 운전해 다니는데, 촌에 와보면 알겠지만 도시와 이동의 자유가 달라요. 운전을 못 하면 그냥 집에 갇혀 있어요”라고 말했다.

▲의성 생활을 3년차인 최경하 씨는 여성 농민의 입장에서 의성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연장선상에서 임 전 군의원은 “할머니들에게 차를 제공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면서 “하지만 사람들(차량 제공하는 사람) 대다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당과 연결돼 있는 사람이 많다. 지역선거든 뭐든 선거가 오랜 시간 한쪽 정당이 장악해오다 보면 조직이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의성읍 한 농기계 점포에서 만난 60대 김태원 씨와 나눈 대화는 이들 3명이 말하는 표준화된 의성군민의 태도를 잘 드러내줬다. 김 씨는 ‘정서적’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한국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특별하게 뛰어난 인물이 없으면 한국당을 찍는 습관은 이어질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번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뭐 그렇게···”라면서 말끝을 흐렸고, “그럼 찍던 대로 또 찍겠다?”라는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여긴 아무래도 이런 이야길 해도 어떨지 모르지만, 경상도 정서는 아직 자유한국당이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옛날부터 지역적인 감정이 있잖아? 그게 쌓여 내려오는 거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론 좀 바뀌진 않았을까요?”

“그래도, 정서적으로 아직은 떨치기가 힘들지”

“너무 오래 지지한 당이라서요?”

“그렇지”

“한국당이 잘하는 건 뭐예요?”

“잘하는 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뭐랄까, 애매한 것도 있지만 뭔가 정서적으로는”

“정이 남은 거죠?”

“그렇지”

“다른 사람 찍어야지 하고 투표장 들어갔다가도 한국당으로 손이 움직인다고도 하잖아요?”

“그런 거 있지요. 같은 값이면. 자기 마음 못 정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투표지 받아들고 어디 할까 하다 보면, 찍던 델 찍는 거지”

“잘하는 당이 나오면 바꿀 의향은 있어요?”

“그렇지. 정책 대결 하라 이거야. 싸우지 말고,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잖아요, 자기들끼리 중앙에서 싸우면”

“도드라지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찍던 대로 찍겠네요?”

“그렇지”

“이번엔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요?”

“뭐 그렇게···”

“그럼 또 찍던 대로 찍겠네요?”

“···하하하”

월등하게 나은 인물이란 확신 줘야 변화 가능하지만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농민 노동 조건이 갖는 한계
학력-경력 같은 수준에서 후보 검증할 수밖에

습관을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은 정당을 넘어서 ‘월등하게 나은 인물’이라는 확신이다. 하지만 지리적, 지역적 한계가 ‘월등하게 나은 인물’을 검증할 방법까지도 현저하게 축소시킨다. 신광진 회장은 “인물이 괜찮은지 아닌지 뭘 보고 아나? 후보자가 떠들어야 아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최경하 씨는 “거의 매일, 각자의 밭에서 일을 하는 농민들이 선거에 관심 갖기 쉽지 않다”며 지방선거가 한창 농번기인 6월에 있다는 언급에 “정확하다. 그게 정말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인물을 검증하는 척도로 학력이나 경력 같은 낮은 수준의 조건을 살피거나, 지역의 정치적 패권을 가진 정당 공천을 받은 것으로 갈음해버린다. 김태원 씨는 “정당보다는 인물이지, 군의원 민주당 출신이 두 번이나 됐어요. 그런 사람들은 결국 인물이잖아요. 그 사람은 그래도 그런대로 학력도 가진 사람이고”라며 “명함 돌리는데, 우리가 보면 뒤에 그것(학력, 경력)부터 보잖아요. 전혀 없으면 안 되죠. 이게 좀 있어야지”라고 자기 머리를 두드려 보였다.

[의성=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취재팀]
영상: 박중엽 기자, 김서현 공공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취재: 김규현 기자, 이상원 기자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