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경북민심번역기] 경북 상주에서 보수란? ‘뿌리’ 또는 ‘반공’

‘믿을 수 없는 김정은과 그를 믿는 문재인’···“불안해”
“보수는 어떤 것?”, “뿌리라고 생각 안 할까? 마음속에 내재”
‘보수’ 자의식 뿌리 부끄럽게 만드는 홍준표의 막말
“박근혜 천막당사는 불쌍”해도 “김성태 단식 꼴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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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15:59 | 최종 업데이트 2018-05-08 16:10

경북 상주중앙시장 한켠, 낡은 의류 점포. 일명 ‘몸빼바지’라고 불리는 일 바지가 점포 밖 매대에 진열돼 있다. 농꾼들이 일할 때 입기 좋을 옷들이 빨주노초파남보 색깔 별로 매달렸다. 점포 안에선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님을 기다렸다. 안경을 쓴 반백의 노인이었다. TV는 뉴스 채널에 멈춰 있고, TV 맞은편에 매달린 직사각형 거울 틀에는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후보 명함이 꽂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지방선거 다가와서 민심 들으러 다니고 있어요.
잠깐 이야기 좀 괜찮으세요?”

“어디서 왔는데요?”

대구에서 왔다. 인터넷 뉴스인데 경북을 돌면서 민심을 듣고 있다. 선거 언제인지 아냐. 투표는 할 거냐. 물어도 ‘허허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시원치 않다. “젊은 사람들 왔다 갔다 하길래 누가 왔나 했는데, 시장에 사람이 안 다니잖아”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슬쩍 “요즘 어르신들 뿌리가 흔들려서 걱정들 많으시죠?” 보수적인 여느 경북의 노인들을 생각하며 낚시성 질문을 던졌다.

“잘하고 있잖아. 지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만치 하면 잘하는 거지, 얼마나 잘해 그래? 지금까지 대통령 나온 중에는 젤 잘 하는 거 같애” 연이어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졌다. “어떤 부분을 잘하는 것 같으세요?” “일단 전쟁을 막았잖아요” 말문이 한 번 열리기 시작하자 노인은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다섯 번째 방문지는 경북 상주다.

“요즘 어르신들 뿌리가 흔들려서 걱정 많으시죠?” 질문에
“이만치 하면 잘하는 거지, 지금까지 대통령 중 젤 잘하는 거 같애”
18대 대선, 박근혜 득표율 전국 상위 여섯 번째 도시 상주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다섯 번째 방문 도시 경북 상주도 보수성이 짙은 도시다. 앞서 찾은 구미나 김천처럼 ‘변화의 씨앗’이라고 볼만한 요소도 찾기 힘들다. 선거 연혁을 살펴보면 오히려 보수성만 짙게 도드라진다. 상주는 전국에서 유일한 ‘미래연합’ 단체장(2010년, 성백영)을 배출했고, ‘친박연대’ 국회의원(2008년, 성윤환)을 만든 도시다. 18대 대선 박근혜 득표율은 전국 상위 여섯번째(84.4%)다.

하지만 지난 4일 현장에서 만난 상주 주민들의 이야기는 예상과 달랐다. 역대 대통령 중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반백의 노인은 올해 73살이라고 했다. 그 역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뽑았다. 그는 “박근혜는 찍어줬죠. 아(애)새끼들도 없고, 나라만 위한다고 해서 찍어줬는데 워낙 나쁜 짓을 했으니 돌이킬 수 없잖아요”라고 말에서 체념이 느껴졌다.

“상주에 박근혜 지지가 꽤 많잖아요?”

“상주 사람들이 박근혜는 많이 지지들 해요, 저그 아부지 때문에.
여기 사람들 전부 이야기하는 게 박정희 때문에 먹고 살게 됐다고 하거든.
지금도 박근혜는 불쌍하다고 하지. 그래도 역시 지가 잘못 선택한 거고. 뭣 때문에 그랬는고.
짱짱한 참모 몇 명만 골랐으면 됐는데,
문고리 3인방 카는 거, 가들(그 사람들) 붙잡고. 최순실이 붙잡고.
아!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잠자고 있었다는 게 말이 돼요?
가서 깨워도 안 일어나고 그게 무슨 짓이야.
만약에 그때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면 박근혜는 잠자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

“수학여행 누가 대통령이 보내라 그랬나 카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옆에서 커피 믹스를 타던 노인의 부인도 혀를 차며 말을 보탰다. “상주에서 이렇게 인터뷰하면 저놈 미쳤다 캐요. 상주에서는 열 놈 중에 아홉 놈이 그래 칸다니까(박근혜 잘못 없다고). 상주에 살기 때문에 알고 있지” 노인은 본인의 생각이 상주에서도 예외적인 경우라고 자신했다.

“우리는 보수” 자의식···근거는 ‘반공’ 그리고 ‘체화’된 무의식
‘믿을 수 없는 김정은과 그를 믿는 문재인’···“불안해”
“보수는 어떤 것?”, “뿌리라고 생각 안 할까? 마음속에 내재”

노인의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상주중앙시장에서 만난 주민 중 박근혜를 향해 노인만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찾긴 힘들었다. 시장 중앙 통에서 과일 점포를 운영하는 60대 여성은 “우리가 암만 보수지만, 담뱃값 올렸지, 그리고 김영란법 그거는 진짜로요. 선물 문화를 다 죽였어요”라며 박근혜의 실정은 비판하면서도 “1년만 있으면 나갈 대통령을 세계적으로 창피를 주고, 그렇잖아요?”라고 박근혜를 옹호했다.

여성이 스스로 말한 ‘보수’라는 정체성은 반공 의식에서 비롯되는 거로 보였다. 여성은 남북 평화 체제가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은에 대한 불신은 문 대통령을 향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퍼주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과연 김정은이가 생각을 바꾸고 핵을 포기할까요. 김정은은 계속 정권을 잡고 있지만 문재인은 5년 있으면 끝나요. 민주당에서 정권을 안 잡고 다른 세력이 들어오면 또 다르단 말이에요. 김정은이는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걸 보자’ 그럴 가능성도 있잖아요. 사실 우리 딸들이 엄마가 박근혜 뽑을지 몰랐다고 했는데요. 우리 시대엔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배웠기 때문에 애들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배웠고, 얘길 해보니까 완전히 편이 갈라지는 거예요. ‘야,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솔직히 실제 겪은 게 있잖아요? 문재인 이미지는 노무현, 김대중 정권을 보거든요. 그때 북한에 퍼주고 그런 게 있잖아요”

▲“보수라는 건 어떤 거예요?” “뿌리라고 생각 안 할까? 내려오는 뿌리가 있나 봐. 우리 마음속에 내재돼 있는 거 같아요.” 상주중앙시장 한 옷가게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보수’를 마음속에 내재된 뿌리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수’도 있었다. 성인 여성복을 취급하는 옷가게에서 점심 먹던 60대 여성들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불렀다. “보수라는 건 어떤 거예요?” “뿌리라고 생각 안 할까? 내려오는 뿌리가 있나 봐. 우리 마음속에 내재돼 있는 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그래요. (투표장)갈 때는 다른 사람 찍으려고 생각하다가 거(거기) 가면, 맹(여전히) 그 답이 나온다니까”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에 내재한 어떤 것. 이들에게 ‘보수’는 그렇게 자리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성에 차는 보수 정치인은 아니었다. 홍 대표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은 “홍준표 때문에 한국당 찍기 싫어”라는 투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이 ‘점잖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보수’ 자의식 뿌리 부끄럽게 만드는 홍준표의 막말
“박근혜 천막당사는 불쌍”해도 “김성태 단식 꼴불견”

보수는 뿌리라고 말하던 여성은 “홍준표 때문에 (한국당) 찍기 싫어. 진짜라. 오늘도 나와서 너무 막말 많이 하잖아. 사람이 좀 점잖아야지”라고 말했다. 밥그릇, 반찬 그릇을 가운데 두고 사선으로 앉은 또 다른 여성이 “자유(한국)당 좋아하는데, 진짜 일 잘하는 사람 뽑고 싶고, 열심히 하는 사람 뽑고 싶죠”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 근데. 홍준표 씨가 막말 안 하면 좋겠어. 아니 위에 있는 사람이 점잖아야지. 말을 그렇게 쌍말을 하면 되는가. 빨갱이니, 자꾸 이상한 소릴 하니까. 경북 얼굴인데”라고 다시 홍 대표를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경북이 텃밭이니까. (홍준표가) 얼굴인데. 말을 마구하고. 진실성이 없잖아. 저만 카는 게(하는 게) 아니고 여(기) 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그래요”라고 덧붙였다. ‘경북 얼굴’. 그에겐 보수 정치인은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는 얼굴인 셈이었다. 보수 정치인에게 투영하며 살아온 삶은 상스러운 언행으로 ‘뿌리’채 흔들렸다.

옆에서 다시 “자유(한국)당 좋아하는 사람 많은데”라고 말해도 그는 “아, 좋아하는데, 당을 떠나서 당 대표가. 솔직하게 이야기할 건 해야 한다니까. 솔직히 나는 홍준표 나갔으면 좋겠어. 나는 진짜라”라고 주장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비난의 화살은 김성태 원내대표로까지 이어졌다.

“단식하잖아요. 투쟁하잖아요. 진짜 그거 하는 거 참 꼴불견이야.
아, 할 말 있으면 하고. 똑똑하게 행동하면 (되지). 왜. 말라고(뭐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고 우리가 동정심 가나요? 안 갑니다”

“전혀 안 간다?”

“안 가지요”

“옛날에는 지지를 해줬는데?”

“옛날에는 불쌍했지. 박근혜 할 때, 천막당사 할 때는 참 마음이 아팠어.
그때는 완전 보수로 들어가니까, 이제 그런 게 안 통해요.
저거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바른 정치하고, 바른 생각하고.
지금 여당이 잘 하는 건 협조 해주면 좋겠고.
좀 이렇게 합의하면 안 될까. 그게 안 될까? 저 사람들은. 난 참 이해가 안 가요”

그래도 대안은 없다
“시간이 답인 것 같아요”

▲상주문화원 앞에서 만난 40세 남성 이 씨는 상주가 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공 의식과 오래된 무의식으로 점철된 선택은 울분과 후회로 대안을 찾아 나서지만, 상주에서도 한국당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없다. 시장을 조금 벗어나 상주문화원 앞에서 만난 40세 남성 이 씨는 “여기 나오는 분(출마자)들 다 비슷해서 선택의 폭이 좁다”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7일 현재까지 상주에서 6.13지방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는 전체 40명(단체장+도의원+시의원)이다. 이중 한국당은 24명이다. 한국당 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만 5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시의원 후보만 2명 등록했고, 나머지는 모두 무소속이다.

“거진(거의) 자유한국강 분들이 많고 무소속 나오는 분들도 거진 (당선)되면 그쪽(자유한국당)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봐야 하거든요. 예전에 (미래연합 시장 후보가) 나오셔서 됐는데, 그땐 어떻게 보면 그게 (한국당 공천이) 안 되니까, 그리로 간 거고. 큰 틀에서 보면 같죠”라고 말하던 이 씨는 “(다른 정당) 선거운동을 열심히 해도, 박혀 있는 인식이 있어서 안 바뀔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땐 시간이 답인 것 같아요”라고 상주가 정치적으로 변할 실마리를 ‘시간’에서 찾았다.

[상주=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취재팀]
영상: 박중엽 기자, 김서현 공공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취재: 김규현 기자,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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