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의미는 완전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100일, 박문진·송영숙 인터뷰
'제3자 사적조정'은 흐지부지···"그래,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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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8 14:58 | 최종 업데이트 2019-10-09 15:52

8일 대구시 남구 영남대의료원, 70m 옥상 위 천막은 다섯 번째 보수공사를 마쳤다. 옥상 아래로 늘어진 빨간 대형 현수막은 너덜너덜해졌다. 기상청이 태풍을 관측한 이래 올해 가장 많은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다. 박문진(58, 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송영숙(42, 현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두 해고노동자는 다섯 번의 태풍을 70m 고공에서 100일을 맞았다.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송영숙 부지부장과 박문진 지도위원.

오전 9시, 김진경 영남대의료원지부장이 아침 식사와 생필품을 들고 고공농성장으로 향했다. 아침 메뉴는 빵과 커피, 사과즙이다. 소식을 알려줄 종이 신문 한 부와 오후에 열릴 집회 피켓도 담겼다. 13층에서 보안 요원이 문을 열어주기를 잠깐 기다렸다. 보안 요원도 이제 일상인 듯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주러 왔다.

옥상에 도착하자 김 지부장은 박 지도위원과 송 부지부장을 크게 불렀다. 천막 사이로 두 해고노동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농성장에서 내려준 끈으로 김 지부장이 아침을 위로 올리고, 송 부지부장이 전날 먹은 빈 그릇을 내려보냈다. 농성장으로 이어진 계단에 둘렀던 뾰족한 철조망도 이제 없다. 기자는 지난 8월 농성 50일째 방문 때보다 수월하게 두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관련 기사=영남대의료원 70m 고공에서 만난 박문진, 송영숙 “노조파괴 단죄”('19.8.19))

농성장 천막은 50일 전보다 튼튼해졌다. 태풍 다나스, 프란시스코, 링링, 미탁을 겪고, 찢어지고 뜯긴 천막을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본부장이 새로 수리해 준 것이다. 박 지도위원은 건설노조 출신인 이 본부장이 설계한 농성장을 마음에 들어 했다. 박 지도위원은 "태풍 때문에 집다운 집을 갖게 됐다. 이 본부장님이 진짜 탁월한 설계를 하셨다. 비가와도 새지 않는다. '타파' 때도 견뎠다. 이렇게 집이 쳐지니까 마음이 아늑해지더라"고 말했다.

탄탄한 설계에도 천막 위로 물이 고이는 것은 막기 힘들었다. 송 부지부장은 장대 우산을 들고 천막을 쿡쿡 찔러 고인 물을 빼냈다. 천막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최근 계속된 태풍과 폭우로 바닥이 마를 틈이 없다. 천막을 걷고 말리고 싶어도 바람이 강해 천막을 걷어 놓기 힘들다. 인터뷰하는 한 시간가량 동안 옥상 한쪽에 놔둔 기자의 가방은 바람이 옮겨다 놓은 모래투성이가 됐다.

▲빗물에 내려 앉은 천막에 장대 우산으로 물을 빼내는 송영숙 부지부장.

100일을 고공에서 보낸 두 해고노동자의 얼굴은 조금 부어 있었다. 입술과 입 주변이 자주 부르터 고생이다. 박 지도위원은 새까맣게 탔다. 숏컷이던 머리도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노란 염색 머리 송 부지부장도 까만 머리 뿌리가 한 뼘이나 자랐다. 모자는 '자존심'이라며 절대 벗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찬 바람에 벌써 뚜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송 : 100일을 견뎠다는 게 사실 믿어지지 않고, '잘 견뎌왔구나' 이렇게 혼자 대견해하고 있어요.

박 : 100일의 의미는 완전체잖아요. 이제부터 몸을 풀어야겠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100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노사 모두 기대를 걸었던 '제3자 사적조정'은 흐지부지됐다. 투쟁이 다시 시작인 이유다. 조정위원 합의하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려 마련된 자리였다. 노사간 입장 차이가 커서 결국 조정위원들은 조정안을 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송 부지부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일단 자리가 마련된 건 이렇게까지 (농성을) 해서 열렸구나 생각했다"며 "사실 내용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13년 동안 봐왔던 병원의 행태가 있었기 때문에 결렬됐을 때도 뭐랄까. 그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다.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노무사도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영남대의료원 사건은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심종두는 2007년 영남대의료원 해고 문제가 불거질 당시 의료원 측 자문 노무사였다.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창조컨설팅 컨설팅 수행대상은 영남대의료원,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 등 대구·경북 지역 사업장 3곳을 포함해 모두 12곳이다. 두 해고노동자는 노조파괴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입을 모았다.

송 : 사필귀정이죠. 그런데 처벌이 너무 약해요.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망가지게 하고 힘들게 했는데, 겨우 징역 1년 2개월? 창조컨설팅은 겨우 벌금 1천만 원 ? 이렇게 처벌하면 이후에 또다시  (노조 파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박 : 우리 투쟁도 노조파괴 때문이에요. 그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는데, 옛날 87년부터도 심종두 같은 악마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지금도 법이라고 있는 것이 다 지켜지고 있진 않지만, 중범죄에 해당하는 이런 것들은 진짜 엄벌에 처해야 해요.

▲왼쪽부터 송영숙 부지부장, 박문진 지도위원. 인터뷰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현수막이 농성장까지 올라왔다.

농성장에서 하루는 매일 똑같다. 비바람에 망가진 농성장을 보수하고, 기자회견이나 집회, 촛불문화제가 열리면 난간으로 나가 손을 흔들어 보이는 일이 대부분이다. 두 해고노동자에게 농성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농성 50일째를 맞던 날이다. 그날 지역 연대단체가 의료원 앞 네거리에서 집회 후, 의료원 안으로 들어왔다.

박 지도위원은 "50일 집회하고 들어올 때 출렁이던 그 깃발에 울컥했다. 100일 동안 지역 동지들이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며 "로비 농성, 저녁 촛불문화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가는 게 굉장히 감동적이고 고맙다. 매일 문자를 보내고 안부를 묻는 분도 있다. 너무 많은 축복 받는 거 같다"고 말했다.

고비도 있었다. 송 부지부장의 집에서 고공농성 소식을 알게 됐을 때, 송 부지부장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송 부지부장은 "농성하러 간다고 하니까, 맨날 뭐 하러 가는 건 아는데 이곳에 올라온 건 몰랐다. 나중에 뉴스 보고 아셨다"며 "처음에는 '왜 올라갔냐', '죽으려고 올라갔냐' 그러셨다. 지금은 저를 믿고 잘 기다려주고 계신다. 통화로는 (부모님을) 다독거렸지만, 통화가 끝나고 나서 괜히 혼자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 두 해고노동자

이들이 다시 땅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의료원이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를 파괴한 의혹을 풀고, 책임자 처벌, 노조 원상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노조 파괴로 해고된 이들이 복직해야 한다. 해고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노조를 되살리겠다고 고공에 올라간 이들에게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이란 어떤 의미일까.

송 : 저의 희로애락이 있는 곳. 저는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노동조합 전임하다가 해고돼서 쭉 이렇게 왔으니까 (함께한) 세월이 되게 길었죠. 그 안에서 동지들과 기쁜 일도 있었고, 사측 탄압에 분노도 하고, 조합원들이 떠나갈 때는 슬퍼했고. 모든 게 희로애락 같은 생각이 드네요.

박 : 저는 20대 후반부터 민주노조를 시작했어요. 저의 삶이라고 감히 표현해도 마땅해요. 조합원들과 함께했던 모든 고비고비가 삶을 윤기 나게 하고, 삶의 방향을 만들어 줬던 거 같아요. 청춘을 바쳤던 이곳에서 민주노조 깃발이 꺾이는 것은 내 삶이 꺾이는 것 같죠. 이 깃발은 꺾여서도 안 되고, 멈춰서도 안 되고, 굳건하게 힘차게 펄럭여야지만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새벽안개에 몸을 맡기면서 여기 올라오게 된 거죠.

100일째 하루 일정이 빠듯하다. 오전 내내 기자들을 맞이했고, 오후에는 연대단체들이 찾아온다. 이날 오후 2시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장은 영남대의료원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대의료원 투쟁을 민주노총 전체 투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또, 오후 4시 민주노총 대구본부, 보건의료노조는 영남대의료원 정문 앞에서 1천여 명이 모여 영남권 노동자대회를 연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영남대의료원노동조합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가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100일 투쟁승리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박 지도위원은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마음 아파하고 있다. 100일 동안 힘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의료원은 답답할 정도로 안 움직인다. 그런 마음과 철학으로 환자를 돌본다는 게 정말 슬프다"고 심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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