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대상화되지 않은 소녀들의 욕망 ‘워터 릴리스’

17:25

프랑스 퀴어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국내 누적 관람객 수는 14만 8,719명이다. 예술영화로는 괄목할 만한 기록이다. 이에 힘입어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가 줄줄이 국내에서 정식 개봉하고 있다. 지난 5월 <톰보이(누적 관람객 3만 1,214명)>가 9년 만에 개봉하더니, 그의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년)>도 상영하고 있다. 시아마 감독은 줄곧 여성의 정체성과 욕망을 이야기해왔다.

<워터 릴리스>는 성장기 여성의 사랑과 성장통에 관한 영화다. 또래보다 왜소한 체격의 마리(폴린 아콰르)는 단짝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를 따라 수중 발레 경기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수중 발레팀 주장인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매혹적인 외모의 플로리안은 또래 남자친구의 관심과 여자친구들의 질투를 받는 존재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마리는 플로리안의 곁을 그저 맴돈다. 플로리안은 수영장에만 들여보내 주면 뭐든 하겠다는 마리를 이용해 집에서 허락을 받고 마리를 길에 세워둔 채 남자를 만나러 간다. 통통한 몸을 부끄러워하는 안나는 플로리안과 사귀는 잘생긴 남학생 프랑수아를 첫 키스 상대로 점찍고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마리는 플로리안과 친구가 됐지만 자유분방한 관계를 추구하는 플로리안에게 상처를 받는다. 플로리안은 자신을 헤프다고 욕하는 친구들과 다른 마리에게 조금씩 호기심을 느끼고 그와 친해진 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소문과 달리 플로리안은 남자와 한 번도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 자신을 향한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경험도 털어놓는다. 자유분방한 겉모습과 달리 자신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을 경계한다. 첫 경험을 두려워하면서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 숙제로 생각한다. 마리를 이용하는 것 같던 플로리안은 마리와 친구가 되는 듯하지만, 둘의 마음은 다시 엇갈린다.

첫 키스를 경험해보고 싶은 안나는 상대를 찾아 파티장을 배회한다. 그는 플로리안에게 차이고 자신에게 찾아온 프랑수아와 성관계를 맺지만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자신을 만나는 프랑수아를 끝내 외면한다. 10대 소녀들의 성장통을 그린 <워터 릴리스>는 소녀들의 몸을 가까이에서 비춘다. 그 시선은 보는 이의 욕망이 아니라 소녀들의 것이다. 작고 말랐든, 조금 뚱뚱하든, 각기 다른 자신의 욕망을 찾아 나간다. 영화는 이들의 감정 묘사를 물의 변주를 통해 섬세하게 나타낸다. 시아마 감독은 10대 때 수중 발레 경기를 보러 갔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또래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에 매혹됐던 기억이 바탕이다.

영화는 소녀들의 성장통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첫사랑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흥미로운 점은 세 소녀의 성장통은 수중 발레에 빗대어진다는 것이다. 수중 발레는 물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수들의 팔과 다리는 쉼 없이 움직이며 수면 위의 아름다움을 위해 고통을 감내한다.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플로리안 앞에서는 티를 내지 못하는 마리도, 프랑수아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면서도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그를 밀쳐내는 안나도, 헤픈 척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플로리안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에선 각각의 이유로 아파하고 절망한다. 수중 발레의 은유는 수영장 밖에서 연습을 지켜보던 마리가 “물속에서 더 잘 보인다”는 플로리안의 말에 물속으로 들어가 수중 발레 연습하는 소녀들의 다리를 보게 되는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워터 릴리스>는 제60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황금 카메라 부문에 초청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엘로이즈를 연기한 아델 에넬의 10대 시절 풋풋한 모습이 나온다. 35㎜ 프린트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는 개봉과 이후 해외 영화제, 기획전에서 필름으로 상영됐으나,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버전으로 상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