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강제추방의 비극, 반복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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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을 피해 도망치다 출입국 공무원을 다치게 한 김민수(가명)의 사연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 마음 아파했다. 보도 이후 탄원과 후원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뒷맛이 씁쓸하다. 김민수의 형기와 무관하게 김민수는 다시 공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때 그 공장은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곳일테니.

체류자격이 없으면 경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강제추방 하는 한국의 출입국 제도가 이번 사건의 요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출국 문제는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래 지금까지 개선 없이 이어지면서, 이주노동자와 단속하는 출입국 공무원마저 다치거나 죽게 한다.

한국의 저임금 고위험 산업이 이주노동자를 필요로하고, 인구감소에 허덕이는 지역이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농업, 어업, 임업은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인권을 논하기는커녕, 강제추방 제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들이는 방도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 현실에 눈감고 국가가 인권을 말하고 정치인이 정의를 논할 수 있나.

단속 과정의 위험성은 물론, 강제추방 제도는 위헌성도 짙은 제도다. 시민을 체포하거나 증거를 압수할 때도 한국은 영장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만큼은 이 헌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강제출국시 출입국의 조처 외에 다른 중립적 기관의 개입이나 통제 절차는 없으며, 행정청의 불이익처분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청문 절차 또한 없다. 이 조건 아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출근하다가, 일하던 도중에, 거주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에, 주말에 예배를 보는 도중에 단지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출국 되어 왔다.

제도를 바꿀 책임이 있는 우리 국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무관심하다. 각 정당이 선관위 홈페이지 22대 총선 정당 정책란에 발표한 공약을 살펴보면 강제출국 관련 정책은커녕, 이주민 일반에 대한 언급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연합의 이주민 정책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힘은 중소기업 정책으로 “외국인 고용한도에 대한 탄력성 강화“를, 국민의미래는 “다문화가정의 안정적 정착“과 관련한 정책을 짤막하게 실었다. 녹색정의당과 새진보연합이 비교적 비중 있게 이주배경시민청, 노동비자 영주제도, 고용허가제 개선 등 정책을 제안했다.

보수정당에서도 이민청 설립 화두가 제시되는 시대다. 우리는 이주민 유입뿐만 아니라 유입된 이주민이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또한 고민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미등록으로 전락시키는 체류 제도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강제추방 제도 개선부터 시작해 보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형사사범에 대해서는 강제추방을 적용하더라도, 단지 체류 자격 문제로 단속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강제추방이 아닌 다른 제재 방법을 찾는 건 어떨까. 어떤 정책이 되든, 22대 국회에서는 현실에 맞지 않는 강제추방 제도를 한 뼘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