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정체불명 ‘야채계란말이’가 식탁에 나온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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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온 그녀를 방이며, 화장실이며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 있다.

“고등어는 그냥 구우면 돼?”
“어 기름 많이 두르지 말고”
“그럼 안 타?”
“약불에 구우면 돼. 모든 생선구이는 약불이라고 생각해”
“아! 그래서 계란후라이도 약불이구만”

▲그가 야채계란말이라고 주장하며 만든 요리. [사진=박민경]

그는 무엇인가 큰 이치를 깨달은 듯 자신 있게 화답하더니, “알았어. 굽는 건 다 약불이구나. 근데 볶음밥은 왜 센불이야?”라고 되물었다. 학습의 길이 험난함을 일깨워 준다. 사실 이미 알려준 내용인데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질문은 늘 비슷한 유형으로 반복된다. 머리로만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좀 적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7년 전쯤 직장을 바꾸었다. 가장 큰 변화는 출퇴근 시간과 업무 강도였다. 집이 있는 일산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출퇴근 시간은 3시간 내외였다. 출장과 야근의 반복, 대학원 수업까지 병행하면서 가사 업무를 부담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함께 작성한 맞벌이용 가사분담서에 기재된 그녀의 여러 영역들 중 일부는 수행하기가 곤란해졌다.

그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성인남성은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하늘이 정해준 것이므로 감히 침범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는 그때부터 그녀가 출장을 가거나 야근하는 날이면 아이들을 씻기고 유치원 용품을 챙기는 부분을 대신 담당해주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가 도전하기 어려워한 부분은 요리였다. 언젠가 그녀가 15일 국외 출장을 다녀왔던 때였다.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본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15일 전 마련해 놓은 반찬거리들이 10%도 줄어들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녀가 없는 집에서 남은 가족들의 식단은 라면, 피자, 치킨, 햄버거, 즉석밥의 순환이었다.

미취학 아동들의 균형 잡힌 영양식단을 위해 그나마 여러 식단으로 순환시켜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쌀과 반찬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해가 안 될 노릇이었다.

그는 뒤늦게 고백했다. 사실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노라고. 국을 끓여본 적이 있는데 도저히 싱거워 먹을 수가 없었노라고.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사람처럼 그날 밤 고백하며 이제 요리를 배워보겠노라 선언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고등어를 어떻게 굽는 것인지,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는 재료가 무엇인지, 간장은 언제 쓰는 것인지를 그녀에게 듬성듬성 묻기 시작했다.

사실 정규학제가 끝난 후에 무엇인가 학습을 시작하겠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이미 머릿속에 가득찬 편견덩어리들은 새로운 지식을 저장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생존과 관련된 교육은 학제 중에 이루어져야 했다.

고등어를 굽는 방법을 알려준 다음날 갈치를 굽는 방법을 다시 물어오는 그에게 “이래서 왜 가정·가사를 남학생들한테도 가르쳤어야지! 거기 다 나온다고 시험도 보고”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우리는 기술 배웠잖아”라고 한다.

“살면서 라디오 만들어서 썼냐?”
“다른 것도 많이 배워. 생활에 필요한 것들”
“우리집 전구도 내가 갈고 몰딩도 내가 다 했다”

그는 오늘도 아마 저녁에 그녀 몰래 김치찌개에 인공감미료를 살짝 넣어 아이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남녀를 구분하고 성역할을 고정화해 놓은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 교과서에서 가사와 기술은 남녀를 이유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성역할 구분은 교과서를 벗어나더라도 학교 교육에는 잔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학교에서 그녀에게는 여성다워야 하고 결혼을 잘하는 것이 좋으며 얌전하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남성다워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며 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이야기하는데, 정규학제를 벗어난 연령이면 재학습의 길은 너무나 멀고 험난하다. 남성이 남성답고 여성이 여성답기를 말하기보다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방법과 생각을 학교에서 이야기해주기 바라는 바이다. 그와 그녀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