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보복으로 임청각 관통 철도···” 근거 없다

2017년 광복절 경축사 기점으로 ‘민족정기 끊으려…’ 보도 확산
공사구간 확정은 이상룡 선생 사망 후 4년 후
“사실이라기보다는 민중들이 받아들인 정서로 보여”

18:49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으려고 임청각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했다.”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과 임청각 복원이 언급될 때마다 꾸준히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근거가 없습니다.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을 지낸 김희곤 전 안동대 교수는 “독립운동에 앙갚음을 한다고 일부러 철도선을 우회시켰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지만, 사실이라기보다는 민중이 받아들인 정서를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본의 네티즌 중에는 이와 관련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라면, 꽤 무서운 이야기다. 일제가 철도를 통해 맥을 끊는다는 비과학적 사고”라고 야유하기도 합니다.

▲99칸 임청각은 중앙선 철도 부설로 66칸이 됐다.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과 함께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2017년 광복절 경축사 기점으로 ‘민족정기 끊으려…’ 보도 확산

언제부터 “민족정기를 끊으려 임청각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했다”는 이야기가 확산되기 시작했을까요.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보면 중앙선데이에 이덕일 씨가 연재한 ‘이덕일의 事思史(사사사) 근대를 말하다 2011년 8월 7일자 기사인 ’“무릎 꿇고 종이 될 수 없다” … 이상룡 일가도 집단 망명‘에 등장했습니다. 이 글에서 이덕일 씨는 “이상룡 망명 후 일제가 독립운동의 정기를 끊는다며 그 앞을 철길로 갈라놓았다. 그만큼 그의 망명이 영남 유림에 준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고 썼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것은 1911년이고, 1932년 만주에서 병사했습니다. 중앙선 안동 구간에 대한 측량이 이뤄지던 시기가 1935년,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선로가 확정된 때는 1936년 8월, 중앙선 안동 구간 개통은 1942년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드문드문 임청각 일가의 독립운동 기사에 관련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0월 17일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면서 부터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임청각 복원 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제시하면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임청각을 가로질렀다’는 이야기를 보탰습니다.

국회의원 시절인 2016년 5월 27일 안동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임청각을 둘러보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보도가 이어진 것은 2017년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부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 정신을 강조해왔다. 2019년 2월 청와대가 공개한 영상. [사진=청와대 유튜브 갈무리]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경축사 이후 언론은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과 임청각 복원을 언급할 때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으려고 임청각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했다”는 내용을 기정사실처럼 반복합니다. 이 내용은 매체를 가리지 않았고, 보도 양도 엄청났습니다. 이후부터는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해가 바뀐 2021년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언급했다. 4일 ‘KTX-이음’ 탑승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도 “중앙선 기존 노선을 보면 얼마든지 직선으로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일제가 의도적으로 노선을 우회시켜 중앙선으로 하여금 임청각을 관통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제가 훼손한 ‘임청각’ 복원에 文 “민족 정기 흐르도록”(한국일보, ‘21.1.6))

공사구간 확정은 이상룡 선생 사망 후 4년 후
“사실이라기보다는 민중들이 받아들인 정서로 보여”
“임청각 일가는 독립운동만으로도 훌륭해”

임청각 훼손 연유는 구술 기록과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김희곤 교수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3호에 게재한 논문 ‘이준형의 독립운동과 임청각의 수난’에 훼손 경위가 나와 있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3집에 실린 김희곤 전 안동대 교수의 ‘이준형의 독립운동과 임청각의 수난’ 논문 중에서

1932년 아버지 이상룡 서거 이후 이준형은 1933년 가족을 이끌고 귀향합니다. 중앙선 부설로 임청각이 헐리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심려하는 이준형의 편지글이 남아 있습니다. 편지글에서 이준형은 “강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집은 장차 철도 때문에 부서질 터인데, 4백년 지켜온 유물이 빈 언덕이 된다면 어찌 마음이 절통하지 않겠습니까만, 운수가 기박하여 그런 것을 어찌할 수 없고, 다만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만 할 따름입니다”라고 썼습니다.

본채와 아래채는 남고 행랑채와 앞마당이 철도 부지로 들어가면서 피해는 생각보단 적었지만,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준형이 남긴 편지글에도 일제가 민족 정기를 끊으려고 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안동역은 1931년 김천-예천-안동을 잇는 경북선 종착역으로 세워졌습니다. 여기에 중앙선이 남북으로 지어지게 되면 기존 역을 활용할지, 새로운 역을 건설할지 몇 년 동안 결론 나지 않았습니다. 1936년 8월에서야 기존 안동역을 활용하고,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노선으로 확정됐고, 1942년 개통합니다.

▲1936년 8월 11일 동아일보 보도. 중앙선 선로가 기존 안동역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결론났다는 내용.

1936년 8월 11일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기존 안동역사를 활용하기로 확정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 이 보도에는 후보지로 거론되던 지역 땅을 비싼값에 사들였던 이들이 불평을 토로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김희곤 교수는 “안동에서는 일제가 석주일가의 독립운동에 앙갚음을 한다고 일부러 철도선을 우회시켰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지만, 사실이라기보다는 민중이 받아들인 정서를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공사구간이 확정될 때는 이미 석주가 사망한 지 4년이나 지났고, 가족들도 환국한 뒤였다”고 썼습니다.

김희곤 교수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과 임청각 일가는 독립운동만으로 훌륭하다. 1937년까지도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던 군대가 존재하고, 1935년 이후 임시정부, 광복군 등 전국 곳곳에 독립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있었다. 석주 선생을 두고 정기를 끊으려 철로를 놓았다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우익 평론가는 “비과학적 사고, 진심이라면 무서운 이야기”
잘못된 사실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독립운동사에도 도움 안 돼

임청각과 관련한 일본 사료를 찾다가 우익 성향의 일본 시사평론가의 글을 찾았습니다. 정치, 시사 평론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의 신주쿠 회계사는 2019년 6월 ‘이해가 어려운 한국의 기사들’이라는 글에서 임청각 관련 보도를 언급합니다.

신주쿠 씨는 “과학적 사고를 방해하고 강렬한 믿음으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2019년 5월 31일자 동아일보 보도(불발될 뻔한 거사 살려낸 1인 시위 후…자정에 2500명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언급합니다.

해당 기사는 “당연히 임청각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만행을 저지른다. 임청각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가 자신들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조선인을 지칭한 말)들이 다수 출생한 임청각의 맥을 끊겠다며 1941년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한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또,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김호태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통해 “1940년대는 일제가 전쟁을 할 때였다. 젊은이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집안이 망해가는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인용했습니다.

신주쿠 씨는 “조선 지배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통째로 철거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라면 무서운 이야기다. 비과학적 사고의 으뜸”이라고 평합니다.

‘민족정기를 끊으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징병을 위해 임청각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습니다. 조선인에 대해 지원병제를 유지하던 일제는 1943년 3월 1일자로 개정병역법을 시행하면서 1943년 학도병, 1944년 징병을 시행했습니다.

종합해보면 일제강점기 중앙선 부설로 임청각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운동을 벌인 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의 집을 일부러 훼손해 민족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일제에 대한 불만이 쌓인 민중들의 마음을 한 켠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사실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정립하는 데도 해가 될 뿐입니다. 특히, 근거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언론의 반성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