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대구경장] 행복은 0에 수렴하는 거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행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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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고 걱정을 하고, 사람과 관계가 직업인 사람은 한 시간 만이라도 조용히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호소한다.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가는 사람의 기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부모님은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100권도 더 쓸 수 있다”고 하시며 파란만장한 과거를 회상하곤 하셨다. 모든 삶이 0에 수렴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불고 눈도 오고, 햇살이 반갑다 싶으면 먹구름도 만나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독하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삶도 있다.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가족과 떨어져 산 시절이 있었다. 처가에서 곁불을 쬐며 아내와 아들이 눈칫밥을 먹는 동안에 난 전국의 공사 현장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나에겐 아들의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저장공간이 텅 비어있다.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단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프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가족으로 만나면서 웬만하면 잔소리하지 않고, 웬만하면 의견을 존중해 주며 살았다. ‘아들과 함께 사는 시간이 1주일만 허락되었다면 지금 무엇을 해줄까?’ 이렇게 생각하면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부모 말 잘 안 듣고 말썽을 일으켜 학교에 불려가도 아주 행복한 일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한집에서 잠을 자고, 눈이 마주쳐 스치듯 주고받는 미소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자식 참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소박한 곳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면서 사회인으로 뿌리내리기를 원하는 작은 바람조차 실망으로 돌아왔을 때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듯한 절망을 긴 한숨으로 털어버려야 하는 자식에 대한 원망, 자식 참 내 마음처럼 안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자식도 이런 걱정을 하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테고, 속상한 나머지 ‘자식 참 마음처럼 안된다’며 쓴 소주 한잔으로 서운함을 툭툭 털어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행복은 0에 수렴하는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행복이야” 아들은 몸과 마음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줬다.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아르바이트 해서 용돈 벌고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도 하면서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1주일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이 아직도 가정으로 남아있으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왕이면 좀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에 이것저것 요구도 하게 된다. 이 몹쓸 가정이 현실이 되어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단 한 번만이라도, 아니 꿈에서라도 얼굴 한번 보고 싶어 가슴을 쥐어짜고 있을 텐데.

가끔씩 얼굴 마주보고 가끔씩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새삼 느끼면서 오늘 하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행복은 0에 수렴하리라는 기대로 버티자.

▲김동식 대구시의원

김동식 대구시의원 / 김부겸 전 국회의원 보좌관

<김동식의 대구경장>은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대구시의회에 첫 입성한 시의원으로서 첫 경험들을 ‘초보시의원 의회적응기’로 풀어냈던 김동식 대구시의원이 지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대구를 위한 제언을 격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