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 규정 없는 대구시 원폭 피해자 지원 조례, 실효성은···

2019년 피해 손·자녀 지원 가능하도록 개정했지만,
대구시 현재까지 현황 파악도 하지 않아

09:46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가 지난 17일 ‘대구광역시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수정가결했다. 애초 조례는 시장의 원폭 피해자 지원 계획 수립을 강행 규정으로 바꾸려 했지만, 집행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정됐다. 지난 2019년 피해자의 손·자녀 지원이 가능하도록 조례안이 개정됐지만, 임의 규정에 불과했고 그 결과 대구시가 손·자녀 현황 조차 파악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번 개정이 피해자들에게 실효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태손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비례)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기존에 임의 규정으로 있던 피해자 지원 계획 수립을 시장의 의무로 하고, 피해자들에게 요양생활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걸 골자로 한다.

5월 기준으로 대구 거주 원폭 피해자는 296명이다. 경남 합천과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대구시는 2019년부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에 1,000만 원 안팎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 별도 원폭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하는 건 없다. 때문에 요양수당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 통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순 있다.

하지만 임의 규정에 그쳐서 앞선 선례에 비춰 실효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화복지위원회 전문위원 검토 보고에서부터 “필요성이나 정당성은 타당하지만 요양수당 지급 관련하여 코로나19 등 제반 상황과 타 보조단체와 형평성 고려, 지자체 형평성을 감안하여 중앙정부에 수당 지급을 건의하는 등 시행에 앞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유보적 입장이 포함됐다.

지난 2019년 대구시는 피해자 지원을 손·자녀까지로 확대하도록 조례를 개정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특별히 이행한 사안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구시는 지원에 기본이 되는 손·자녀 현황 파악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조례안 자체가 강행 규정이 아니어서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사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실제로 17일 문화복지위 심사 과정에서 김재동 시민건강국장은 손·자녀 현황에 대한 물음에 “지금은 관리하지 않고 있다. 관리 근거가 생기면 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2세대, 3세대라고 전부 다는 아니지만, 피해를 입고 유전적 영향으로 피해가 몸에 나타난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어야 관리 대상으로 관리할 생각”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지난 5월 원폭 피해 2세대로서 피해를 증언하고 2005년 숨진 고 김형률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의 추모제가 합천에서 열렸다.

2019년 조례 개정 이후 현재까지 사례 수집도 되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행정력이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의무적으로 원폭 피해자와 손·자녀에 대한 지원 계획을 세우도록 한 개정안을 의회가 나서 수정한 건 의회 스스로 조례를 형해화하는 조치로 비판된다.

2019년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진련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조례를 만들었는데, 강제 규정 보다 대부분 임의 규정이지만 통상 예산을 수반하곤 한다”며 “조례 개정 뿐 아니라 이후 상황도 챙겨야 했는데, 집행부가 조례를 실효성 없도록 만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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