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달라지지 않은 언론, 메스를 들어야 한다

1987년 6.29선언과 3김의 분열로 정권을 잡은 노태우 정부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많은 국민들을 탄압했다. 그 가운데 전두환 군부독재가 통제하던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신입생이던 강경대 씨가 학원 민주화와 총학생회장 연행 규탄 교내 시위를 벌이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태우 정권이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위기가 다가오고 있던 때였다.

강경대 열사 추모와 살인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4월 29일 전남대에서 박승희 열사의 분신을 시작으로 안동대 김영균, 경원대 천세용 열사가 잇따라 분신해 목숨을 잃었다. 대학생분신뿐 아니라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김기설 열사 분신으로 이어졌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었던 민심은 분노했고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으로 이어졌다.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사진=네이버라이브러리)

국민들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언론이었다. <조선일보>는 그해 5월 5일 김지하 시인이 기고한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을 3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으면서 국민들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지하 시인은 기고문에서 “운동권 세력이 조직적으로 분신을 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당시 민주화 세력을 향해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고문이 나온 후 노태우 정권은 ‘운동권들은 제비뽑기를 하면서 누가 먼저 분신할지를 결정한다’라거나 ‘이미 자살 특공대가 결성돼 있고 죽는 순서도 결정돼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김지하의 기고문이 나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5월 8일 오후에는 스물여섯의 젊은 청년이었던 김기설 열사가 서강대에서 분신했다.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열사는 유서를 통해 “민자당을 해체하라”,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고 외쳤다. 그해 모두 10명이 넘는 열사가 분신으로 정권타도를 외쳤다.

그러자 노태우 정권은 열사들의 분신을 이용해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김기설 열사가 분신한 당일 박홍 서강대 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분신의 배후를 언급했다.

김지하의 기고문과 박홍 총장의 기자회견은 공안정국이 의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 언론은 맞장구치며 운동권 세력이 조직적으로 분신을 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절정은 강기훈 씨 유서 대필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며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강 씨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1992년 7월 구속했다. 결국 강씨는 복역 후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23년이 지난 2015년 5월 대법원은 강기훈 씨에 대한 재심에서 자살 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1894년 프랑스 군부가 가짜 필적을 증거로 유대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간첩으로 몰아 종신형을 선고했던 사건에 비유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검찰이나 검찰이 제공한 정보를 그대로 내보냈던 언론은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사과한 적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서거나 특정 정치권에 노골적으로 편들기를 하면서 국민들을 갈라치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 지역 대표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지난 3월 19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만평을 게재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사진을 패러디해 논란을 일으켰다.

시민 비난이 쇄도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자 <매일신문>은 입장문을 통해 “매일신문이 일관되게 현 정부에 대해 너무 뼈아픈 비판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만평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했다는)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날 만평이 광주시민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소환할 수도 있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했다”며 “저희의 보도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광주시민들의 아픈 생채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들춰낸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의 만평을 내보내고 오히려 당당하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매일신문>은 “(만평을 그린) 화백의 비판은 현 정부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 시절 너무나 강하게 비판을 했다”고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는 비단 <매일신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1등 신문이라고 하는 <조선일보>는 주요 매체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범죄기사에 문재인 대통령 삽화를 재사용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녀 삽화를 사용해 비난을 받았다.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그 어느 때보다 하락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여전히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 30년 전 언론의 모습이나 지금의 언론 모습이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21년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고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되었지만 언론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권과 반칙, 차별과 배제, 혐오와 왜곡을 일삼는 언론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언론에 책임을 묻고 시민으로부터 외면 받으면 폐간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도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마침 언론개혁이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언론개혁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 기존언론이 아닌 우리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도 더욱 필요하다. 1991년 그리고 30년이 지난 2021년, 이제는 언론에 메스를 들어야 한다.

조정훈 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