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슬럼化’라는 표현 뒤에 숨은 인종주의 / 이소훈

09:40

지난 주말, 대구시 북구 대현동에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여러 장이 걸렸다. 불법 현수막이라는 이유로 구청에서 현수막을 다량 철거한 지 2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새로운 현수막 중 하나는 ‘유럽의 사례처럼 무슬림 밀집 지역이 되어 치안 불안·슬럼화된다’라고 쓰여 있다. 이 현수막 문구는 무슬림, 유럽, 치안 불안, 슬럼에 대한 짐작과 상상을 담고 있어 이주 문제를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다. 과연 이슬람 사원이 건축되면 ‘무슬림 밀집 지역’이 될까? ‘무슬림 밀집 지역’이 되면 치안이 불안해지고 슬럼화가 되는 것일까?

필자는 경북대민주화교수협의회의 일원으로 지난 3월부터 대현동 이슬람 사원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해 왔다. 대현동이슬람 사원(정식명칭:다룰이만경북이슬라믹센터)은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과 연구자로 구성되었으며 9년 전 경북대 서문 앞 건물 임대공간에서 첫 문을 열었다. 2년 후 임대차 계약이 끝나고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현재 새 사원을 건축 중인 부지를 매입하고 둥지를 틀었다.

서문 지역의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여서 경북대 유학생이 입주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슬람 사원과 할랄슈퍼마켓 등이 자리 잡은 탓에 경북대 무슬림 유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사원은 라마단을 비롯한 이슬람 명절 때마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나라 출신 유학생과 연구자가 모이는 중요한 종교·문화적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공간 덕에 무슬림 학생들은 한국을 친절하고 관용적인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슬럼화’에 대한 우려가 표면화된 것은 새 이슬람 사원을 건축 중이라는 사실이 주변 주민에게 알려진 후였다. 낡은 주택에 사원 간판을 걸고 여러 해 예배드리던 지역에 단지 새 건물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무슬림 유학생들은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부 주민은 그동안 외모, 문화, 종교와 언어가 완전히 다른 타자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을 애써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종교의 표상이 건축된다는 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딱한 유학생’에게 가졌던 관용적이고 시혜적인 시선이 ‘괘씸함’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자신의 문화를 가시화시킴으로 그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에서 대책위원회가 세워지고 몇백 장의 탄원서가 모였다. 이슬람 사원을 지으면 대구시에 있는 모든 무슬림이 모여든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졌다. 탄원서를 접수한 구청은 매우 이례적으로 공사허가를 일시 중지하였다. 공사 중지 통보서에는 ‘주민들의 정서불안 및 재산권 침해, 슬럼화 우려 등’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유가 중지 사유로 명시되었다.

▲공사중지 통보서에는 ‘주민들의 정서불안 및 재산권 침해, 슬럼화 우려 등’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유가 중지사유로 명시되었다.

일부 주민이 이슬람 사원 건축을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슬럼화’에 대한 우려이다. 놀랍게도 북구청 고위관계자 또한 시민사회와 만난 자리에서 ‘슬럼화’에 대한 주민 우려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주민과 북구청 관계자는 이슬람 사원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인종 및 종교차별이 아니며 단지 ‘슬럼화’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슬럼화에 대한 우려는 인종차별이 아닐까?

‘슬럼’이란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을 뜻하는 영어표현 ‘slum’에서 유래한 외래어이다.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은 경북대 대학원생과 박사급 연구자 등 높은 문화 교육자본을 가진 고학력자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으니 이들을 빈민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 대부분이 SCI 논문 몇 편을 쓴 이공계 전공자라는 것을 볼 때 한국 정부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소위 ‘글로벌 인재’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건축이 중단된 이슬람 사원은 낙후된 주택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중이었으니 ‘슬럼화’의 사전적 의미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슬럼화’라는 다소 이상한 표현은 ‘게토화’라는 다른 이상한 표현과 자주 혼용되는데 슬럼은 계급적인 성격이 강한 데 비해 게토는 계급적이면서 인종적인 뜻을 내포한다. ‘ghetto’라는 표현은 현대 영미권 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낮은 이민자 등이 다수 주거하는 지역을 뜻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유럽의 유대인 수용지구를 뜻했다.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이주민이 밀집된 공간을 ‘슬럼’ 혹은 ‘게토’라고 부르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공간이 보여주는 문화적 다양성을 임의적으로 가치화하는 것뿐 만 아니라 특정 집단의 문화적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 사원 반대 집회에서 배포된 유인물에는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이유로 서울 이태원의 ‘게토화’와 ‘슬럼화’에 대해 얘기했다. 유인물은 이태원이 ‘게토화’된 증거로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이슬람 신자(무슬림) 다수 유입’되었고 ‘용산구 내 거주 무슬림은 대부분 이슬람 사원 중심으로 거주 중’인 것을 말했다. 또한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바 등 유흥업소가 다수 영업 중이라며 이슬람 사원이 지역을 ‘슬럼, 낙후화’ 시켰다고 적혀있다.

이러한 시각은 일본제국의 군사기지와 미군 기지촌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현재는 성 소수자,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가진 외국인, 문화적 영감을 찾는 예술가 등이 모여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이태원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우는 것뿐 만 아니라, 특정 집단의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여 다양성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이같은 시각으로 볼 때 이태원은 미군이 떠난 자리를 무슬림과 성 소수자가 채웠기 때문에 ‘슬럼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문화, 인종, 민족에 대한 사회적 상상이 ‘슬럼’을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의 문화적 자본이나 교육, 임금 수준에 대한 ‘팩트’는 중요하지 않거나 부차적이다.

또한 ‘슬럼’이란 표현은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게 된 공간의 역사적 맥락을 지우고 이주민 집단을 타자화함으로 마치 ‘그들’이 ‘우리’의 공간을 침범하여 점유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진부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대림동과 가리봉동 주변을 ‘우범지대’로 표현하며 법이 통하지 않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이 가득한 공포의 장소로 대상화 하는 것은 그 장소에 이주민 밀집 지역이 생성된 과정과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가리봉동은 구로공단 근접 지역으로서 20세기 중후반 ‘벌집’이라는 독특한 쪽방촌 주거문화가 생성되었고 구로공단의 쇠퇴와 함께 빈 주거공간을 새로 유입된 중국 동포 이주노동자가 채우면서 근처 대림동까지 주거지를 확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동포타운’이란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의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고유적인 공간이다.

이처럼 공간의 역사성을 통해 대현동 이슬람 사원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대현동은 1975년 행정구역으로 생성될 때에 경북대의 양현을 기원하는 뜻으로 명명되었다. 이슬람 사원 주변 지역은 30년 전 경북대 서문의 차량 통행이 허용되지 않게 되면서 주변 다른 지역보다 다소 낙후되었다.

지역개발에 대한 갈망은 2020년 12월 대구 엑스코선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되어 엑스코선 건설에 대한 기대가 충만해 진 데다가 올해 봄 정부합동부처사업 경북대 캠퍼스혁신파크가 서문 인근에 조성될 것으로 확정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소위 말하는 ‘호재’가 연달아 터지자 개발에 대한 기대와 조바심이 이슬람 사원이 건축되면 ‘슬럼화’가 될 것이라는 걱정을 키웠다. (관련기사=[“한국 헌법 믿어요”] ② 개발 호재 물 흐릴까···“반대 주민 혐오세력 매도론 해결 안 돼”(‘21.3.9))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슬람 사원 구성원이 대현동을 찾은 ‘개발 호재’와 관련이 있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동대구역과 엑스코 컨벤션센터를 잇는 엑스코선과 경북대 캠퍼스혁신파크는 첨단기술산업개발, 혁신, 국제화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경북대 무슬림 유학생의 많은 수가 이와 같은 키워드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다시 말해 경북대가 국제학술사회와 소통하며 혁신을 이루는 대학으로 성장함과 학교와 주변에서 문화·종교적 다양성을 보호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대현동 이슬람 사원 문제를 해결하는 첫 발걸음은 피부색이 다른 이슬람 신도가 모여 사는 지역이 ‘슬럼’이 아니라는 당연한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정부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깊이 내재된 이슬람 혐오와 인종주의적인 시각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행정을 해야 할 것이다. 경북대는 유학생을 유치하고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에 지역사회에 미치는 학교의 영향을 인지하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현동 주민께서 세계화의 다양한 모습을 존중하며 낯선 이웃과 대화로 타협점을 찾기 위한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시기를 희망하며 응원한다.

이소훈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