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혐오세력 반발에 상임위 통과 조례까지 철회 촌극

대구교육청 성별영향평가 조례안, 본회의 의결 직전 철회
“특정 집단이 대구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13:35

대구시의회가 상임위원회에서도 별 이견 없이 통과된 조례안을 혐오세력의 반발에 밀려 본회의 의결 직전에 철회하는 촌극을 보였다. 284회 대구시의회 임시회가 폐회하는 21일 3차 본회의에서 교육위원회를 만장일치 통과한 ‘대구광역시교육청 성별영향평가 조례안’이 발의 의원 전원의 요청으로 철회됐다.

황순자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달서구4)을 포함한 의원 12명이 발의한 성별영향평가 조례안은 대구교육청 정책 수립 시행 과정에서 성평등 실현을 위해 성별영향평가법에서 위임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내용의 조례는 7월 기준으로 서울과 대구를 제외한 전국 15개 교육청이 제정 운영 중이다.

지난 15일 대구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조례안을 질의도, 토론도 없이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상위법에 위임된 내용을 담는 평범한 수준의 조례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는 의미다.

교육위원회 전문위원실은 “본 제정 조례안은 성별영향평가에서 위임한 특정성별영향평가의 절차와 방법, 성별영향평가위원회의 기능, 구성과 운영 등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제정함으로써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조례 제정에 이견이 없다”고 검토보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임위 통과 후 의원들은 혐오세력으로부터 문자 폭탄과 전화 항의를 받아야 했다. 황순자 의원도 일부 조례안 반대 단체로부터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황 의원은 “반대 단체에서 문자가 많이 왔다. 성평등이란 표현에 대해 문제제기를 많이들 하셨고, 어제(20일)는 의장실로도 전화가 많이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의원이 받은 문자를 보면 “성별영향평가법은 양성평등, 성평등이라고 그럴듯하게 말하며 국민을 속이고 실시하는 국가 페미니즘의 법제화”라면서 일부 혐오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해당 문자에선 “페미니즘이 여자한테 좋을 것 같죠? 아니다. 낙태를 강요하고, 모성을 파괴하고, 가정에서 남편을 찍어 누르고 이혼을 종용하고, 애들한테 상처준다”며 “남녀간 DNA, 체형, 성향 등을 완전 무시하고 남녀 자체를 아예 없애려고 하는 미친 정신병”이라고 의원들을 압박했다.

대구시의회는 8대 의회에 들어서 여러 차례 ‘성평등’이나 ‘인권’을 키워드로 하는 조례안 제정을 혐오세력 반발을 이유로 물러서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대구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이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이보다 앞서 무산된 ‘대구광역시교육청 성평등 교육환경 조성 및 활성화 조례안’, ‘대구광역시 청소년의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대구광역시 민주시민교육 조례안’ 등도 마찬가지 이유로 철회되거나 유보됐다.

혐오세력 반발에 부딪힐 때마다 시의회가 조례 제정을 포기하는 일이 잦아지면 ‘하니까 되더라’하는 효용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별영향평가조례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이진련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특정 집단이 대구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성평등’이나 ‘인권’을 언급하는 조례를 제정하려고 할 때마다, 특정 집단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의회도 반성해야한다. 어떤 집단인지 알고 있고, 조례가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는 건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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