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 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바미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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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가진 이들이 중동땅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글동글한 얼굴, 납작한 코와 까만 눈동자를 가진 민족인 하자라(Hazara)족이 살고 있는 땅 바미얀(Bamyan)입니다. 칼럼을 시작하면서, 다녀온 도시를 톺아보며 인간의 존엄한 권리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녀오지 못했지만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들도 있습니다. 그곳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중 한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바미얀(Bamyan)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자체가 거대한 아시아 대륙을 이어주고 있는 중심지역인데 그중 바미얀은 아프가니스탄의 중앙 고원에 위치하면서 중국상업과 지중해의 유럽국가를 연결했던 말 그대로 고대 실크로드의 심장부쯤 되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동서양의 모든 문화가 오고 가며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예술을 빚어 놓은 아름다운 계곡의 도시가 됩니다. 햇빛을 받으면 빛나는 계곡의 붉은 절벽에는 수천 개의 인공 동굴이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승려들이 기도를 드리던 곳이었거나, 이슬람 상인들이 잠시 쉬어가던 거처일 수도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빛나는 계곡의 붉은 절벽에는 수천 개의 인공 동굴이 있습니다. (사진=Wikimedia Commons)

백미는 바미얀 석불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한 아름다운 석불입니다. 나란히 선 두 개의 석불은 그 높이만 35m, 55m에 이릅니다. 6세기경 만들어진 이 석불은 바미얀의 햇살을 받아 그 곱고 인자한 기운으로 순례자들에게 평안함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앞서 말했듯 반짝이는 햇살이 담긴 눈동자와 붉은 대지를 닮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하자라족이 터전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아름다운 땅에 언제부터 머무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몽골인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을 장악한 파슈툰족 중심의 이슬람 수니파 세력으로부터 끔찍한 탄압과 학살을 당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바미얀에서 태어나서 바미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아프가니스탄 독립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을 하는 친구를 어느 국제세미나에서 만났습니다. 흔히 ‘아랍’스럽지 않은 외모였고, 함께 온 다른 아프가니스탄 친구는 전형적인 ‘아랍인’의 외모였던지라 그의 출신국가를 한 번 더 되물어본 기억이 납니다. 나의 무례에도 그는 친절하게 본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이며, 같이 온 친구는 파슈툰족이며 이슬람 수니파이지만, 자신은 시아파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어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짧은 출장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먼저 바미얀에 도착한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앞서 제가 가보지 않고 서술했던 수많은 아름다운 계곡과 바람, 2001년 탈레반에 의해 잔혹하게 파괴되어버린 바미얀 석불의 흔적, 어색한 포즈를 한 그의 배경이 된 반디아미르 호수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그의 도시를 담은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바미얀으로 저를 초대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찬란한 아름다운 풍경 속에 파괴되어버린 바미얀 석불이 수 세기 동안 탄압당한 하자라족의 모습인 것 같아 그에게 질문해보았습니다.

“넌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세력인 파슈툰, 수니파에게 학대받고 탄압받은 하자라족인데도 너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할거야? 계속 거기 머무를 거야?”

“난 하자라족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야. 난 내 조국을 위해서 일을 할 뿐이야”

탈레반에 의해 형제를 잃고 친구를 잃는 것은 그들의 일상과 같았고, 교육과 의료에서도 혐오와 차별은 여전한 그들의 삶이었지만 그가 말한 대답처럼 하나의 아프가니스탄 속에선 다 같은 시민일 뿐이겠지요.

며칠 전 안부를 묻는 저의 메시지에 그가 울먹이며 회신을 주었습니다. “I have lost my Afghanistan(내 아프가니스탄을 잃었어).” 그가 잃어버린 건 하자라족에 대한 잔혹한 혐오와 차별과 학살을 자행한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시아가 되었든 수니가 되었든, 파슈툰족이든 하자라족이든 구별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꿨던 아프가니스탄이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싶습니다. 바미얀의 그 아름다움을 직접 담아오고 싶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