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통일운동가야성(野星) 강창덕 선생이 3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장례위원회’는 대구전문장례식장 201호에 빈소를 마련했고, 오는 6일 오전 8시 발인한다. 장지는 현대공원 제1묘원이다.
강창덕 선생은 1927년 11월 30일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통일과 민주주의 운동에 매진했다. 강창덕 선생은 1944년 8월 여운형 선생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에 참여했다가 ‘반일사상 유포’ 죄로 10일간 구류됐고, 이후 일제강점기, 미군정, 이승만 대통령, 장면 총리,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거치는 동안 7번 체포되면서도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나섰다.
1944년 11월 경북도청 공무원으로 합격했고, 대구상고 야간부와 조선정치대학을 다니다가 교사, 신문기자로 일했다. 1956년 교사직을 내려놓고 진보당 창당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조봉암 대통령 후보를 도왔다. 이후 1960년 사회대중당 활동, 19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도 했다.
특히 1974년에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구속과 고문을 받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5년 4월 8일 경북대 학생 여정남 등 8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9일 사형이 집행됐는데, 이때 강창덕 선생은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19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해당 사건은 재심 재판이 열렸고 2007년 무죄를 선고 받았다.
별세 전까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 4.9인혁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강창덕 선생은 그의 호인 ‘야성’처럼 재야에서 일생 동안 민주주의화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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