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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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내전이 벌어지는 중동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난민들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난다. 추종자들이 붙인 그의 이름은 알 마시히(메디 데비). 아랍어로 메시아를 뜻한다. 알 마시히는 알라의 뜻을 전한다며 기적을 말한다. “범죄테러단체 IS가 물러나고, 모래 폭풍도 사라진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난다. 알 마시히는 추종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국경까지 나아간다. 알 마시히는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지만, 감쪽같이 탈출해 종적을 감춘다. 며칠 뒤 알 마시히는 이슬람·유대교·기독교의 ‘공동 성지’ 예루살렘 성전산에 나타난다. 진위를 의심할 때쯤 눈앞에서 기적이 펼쳐진다. 알 마시히가 총상을 입은 아이를 어루만지자 순식간에 치유된 것이다. 이 모습을 찍은 스마트폰 영상은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바 겔러(미셸 모나한)은 사연이 많다. CIA 중동지역 담당 요원이었던 삼촌을 터키 폭탄 테러로 잃었고, 암 투병 중이던 남편과도 사별했다. 정자 은행에 보관돼 있는 남편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하려 하지만 임신에 실패한다. 그런 겔러는 CIA 임무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알 마시히를 추적한다. 군중을 현혹하는 알 마시히의 배후에 러시아가 끼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지는 못한다. 의심하는 족족 헛짚는다.

미국 텍사스의 딜리. 필릭스 이게로(존 오르티스)는 작은 마을에서 재정난에 허덕이는 개척교회의 목사다.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이게로는 보험금을 노리고 교회를 불태우려 마음먹는데, 마침 토네이도가 불어 닥친다.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킬 때, 예루살렘에서 사라진 알 마시히가 하루 만에 자신의 낡은 교회 앞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기적처럼 교회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진 것을 눈으로 확인한 이게로는 알 마시히를 구원자로 모신다.

‘예루살렘 메시아가 텍사스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SNS에 퍼지고, 전국에서 추종자들과 방송 중계차까지 몰려온다. 하지만 CIA를 비롯해 각국 정부는 알 마시히를 위험인물로 본다. 그가 일으킨 기적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간주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Messiah, 2020년)>는 공개 직후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로부터 일제히 항의를 받는 문제작이지만, 콘텐츠 평점 사이트에선 호평이 그득하다.

<메시아>는 쉽게 다루기 힘든 묵직한 소재인 정치와 종교, 문명의 충돌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알 마시히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기적을 연이어 선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정체를 의심할 법한 여러 단서들도 죽 늘어놓는다. 드라마가 알 마시히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니, 시청자는 그를 신으로 믿을 수도 있고, 사기꾼이나 무속인, 범죄테러단체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알 마시히를 따르면서 세속적 욕심을 기대했다가, 알 마시히가 자신이 추천한 방송에서 사라진 뒤 사기를 당했다고 여겨 교회를 불태우는 이게로가 될 수도, 교리처럼 따르던 CIA 임무를 수행하다 알 마시히를 경험하는 겔러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 측근의 공작으로 추락한 비행기에서 멀쩡한 알 마시히가 사망한 승무원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믿음이 깨진 아비람 다한(토머 시슬리)이 될 수도 있다.

<메시아>가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시국이 어지럽고 정세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난세를 수습하고 국민을 진두지휘해줄 구세주를 기다린다. 작고한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사람들은 구세주가 지평선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 사태를 수습해 주기를 기다리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져든다고 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메시아를 자청하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지지자들은 후보들을 앞세워 구원자로 떠받들고 있다. 그들에게 합리적 의심은 없다. 후보들의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뿐이다. 하지만 맹목적 믿음이 무색하게도 후보들은 완벽하지 않다. 정치인을 꿈꿨을 때는 순수했을지 몰라도 초심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이미 후보들의 곁에는 보은을 원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는 종교화되고, 성역화된 정치를 마주한다. 대선의 결말은 <메시아>처럼 열려 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